아카데미는 어떤 영화를 선택할까?

 

by. Jacinta

 

 

시상식 시즌이 돌아왔다.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골든 글로브를 비롯해 각종 협회에서 주관하는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문라이트]가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면 올해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의 선전이 눈에 띈다. 특히 하비 와인스타인에서 비롯된 할리우드 성 추문 사태는 ‘미투 운동’과 ‘타임스 업’으로 번지며 여성 영화의 힘을 더욱 실어주고 있다. 연말연시 시상식 시즌을 거쳐 오는 3월 열릴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어떤 작품에 영광이 돌아갈지 시선이 쏠린다. 지난해 변화를 택했던 아카데미가 올해도 그러할지 아니면 전통적으로 그들이 선호하는 영화를 선택할지 벌써부터 결과가 기다려진다. 그동안 아카데미가 작품상을 건네준 영화들에 비추어 2018년 아카데미를 짐작해본다.

 

 

*()속 연도는 작품상 수상연도, 순서는 유력 후보 순이 아님! 2018 작품상 후보 영화는 인디와이어 참조 (▷링크)

 

 

 

1. 완성도 높은 블록버스터

 

이미지: 씨네힐 ‘타이타닉’, 워너 브러더스 ‘원더 우먼’

 

전적) 80일간의 세계일주(1957), 벤허(1960), 아라비아 로렌스(1963), 타이타닉(1998),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4)
후보) 원더 우먼, 블레이드 러너 2049

 

쥘 베른 소설을 이국적인 풍광으로 담아낸 [80일간의 세계일주], 20세기 최고의 종교영화로 불리는 [벤허], 압도적인 비주얼과 섬세한 드라마를 갖춘 [아라비아 로렌스], 실감 나는 특수효과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담은 [타이타닉], 판타지 영화의 고정관념을 뒤바꾼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거대 규모의 영화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가져갔다. 시각을 자극하는 볼거리는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스토리까지 갖춘 영화는 오래전부터 아카데미의 호감을 사 왔다. 이들 영화의 긴 상영시간은 문제 되지 않는다.
올해는 앞서 영화와 비슷한 후보로 패티 젠킨스의 [원더 우먼]과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들 수 있다. 최초의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 [원더 우먼]은 여성 감독이 여성 캐릭터를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라는 점에서 흥행 이상의 의미가 있으며, 35년 만의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원작과도 연속성을 공유하며 스펙터클하면서도 철학적인 SF 영화라는 데서 의미가 있다. 작품상 수상까지는 다소 힘에 부치지만 후보에 오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 전쟁 소재 영화

 

이미지: NEW ‘허트 로커’, 워너 브러더스 ‘덩케르크’

 

전적) 디어 헌터(1979), 플래툰(1987), 브레이브하트(1996), 허트 로커(2010)
후보) 덩케르크

 

역사의 비극은 작품에 소재가 될 때가 많다. 대표적인 비극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전쟁’은 수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됐다.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전쟁의 비극이나 영웅담을 담아내기도 하고 혹은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베트남 전쟁을 담은 [디어 헌터]와 [플래툰], 거칠지만 웅장하게 포효하는 영웅 서사시로 그려낸 [브레이브하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적인 묘사로 이라크전을 다룬 [허트 로크] 등 다양한 시각에서 전쟁을 그려낸 영화는 아카데미가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올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가 작품상 후보로 꼽힌다. 인간의 순수한 생존 본능의 의지를 체험이라는 영화적 경험으로 완벽하게 재현해 놀라움을 안기는 영화다. 세 개의 시공간을 교묘히 배치한 연출력과 한스 짐머가 참여한 음악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골든 글로브는 무관에 그쳤지만, 아카데미에서는 이를 뒤집을 수 있을까.

 

 

 

3.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스포트라이트’, CGV 아트하우스 ‘더 포스트’

 

전적) 신사협정(1948), 워터프론트(1955),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90), 쉰들러 리스트(1994), 노예 12년(2014), 스포트라이트(2016)
후보) 더 포스트, 치욕의 대지

 

아카데미는 드라마틱한 실화나 시대를 통찰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선호한다. 유대인을 혐오하는 민족 차별을 멜로로 담아낸 [신사협정], 신문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부조리한 시대상을 그려낸 [워터프론트], 인종과 신분 차별의 논제를 시대를 초월한 따뜻한 교류로 담아낸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실화에 기초해 홀로코스트를 다룬 휴머니즘 드라마 [쉰들러 리스트], 역시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다룬 [노예 12년], 성추행 사건을 은폐하려는 가톨릭 교구 취재기를 그린 [스포트라이트] 등 시대를 반영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아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는 비록 골든 글로브 무관에 그쳤지만,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요소를 갖춘 영화다. 2016년 수상작 [스포트라이트]처럼 언론을 다루는 영화다. 1971년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에 개입한 사실을 폭로한 ‘워싱턴 포스트’의 이야기다. 힐러리 조던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머드바운드]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인종차별이 심한 미시시피주의 차별적인 시선을 그린 영화다. 수상 가능성은 요원하지만 여러 인물들의 얘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4. 로맨스

 

이미지: (주)영화사 오원 ‘잉글리쉬 페이션트’,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셰이프 오브 워터’

 

전적) 카사블랑카(1944), 지상에서 영원으로(1954),아웃 오브 아프리카(1986), 잉글리쉬 페이션트(1997)
후보) 셰이프 오브 워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더 빅 식, 팬텀 스레드

 

과거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로맨스 영화는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아왔다. 이국적인 정취와 낭만적인 대사, 매력적인 배우들이 조화를 이룬 전쟁 멜로 [카사블랑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모습을 로맨스를 담아 사실적으로 그려낸 [지상에서 영원으로], 아프리카의 압도적인 풍광 속에 삶과 사랑을 담아낸 [아웃 오브 아프리카], 전쟁이 야기한 비극적인 사랑을 장엄하게 그려낸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 과거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던 멜로 영화는 전쟁 혹은 사회적 차별 속에서 사랑에 빠져드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많았다.
근래 들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시대적 배경보다는 개인의 삶에 집중한 멜로 영화가 많다. 본인의 장기인 다크 판타지로 돌아와 괴물과 인간의 로맨스를 그린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 한여름 소년에게 찾아온 로맨스를 섬세하게 그려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인종과 문화권이 다른 남녀의 사랑을 신선한 관점에서 다룬 [더 빅 식], 편집증적인 성향을 가진 천재 디자이너와 웨이트리스 출신 여성의 로맨스를 그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은퇴작 [팬텀 스레드]까지 올해는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로맨스 영화가 눈에 띈다. 이중 선댄스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공개되어 찬사를 받고 있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셰이프 오브 워터]의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5. 독창적이거나 혹은 실험적인, 인디 영화

 

이미지: 오드 ‘문라이트’, UPI 코리아 ‘겟 아웃’

 

전적) 미드나잇 카우보이(1970), 프렌치 커넥션(1971), 애니홀(1978), 버드맨(2015), 문라이트(2017)
후보) 겟아웃,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이디 버드

 

2017년 [문라이트]가 그랬듯 때때로 아카데미는 메인 스트림 영화에서 신선한 도전을 선택하기도 한다. 동성애 코드를 녹여내어 사회 제도권에 적응하지 못한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미드나잇 카우보이], 마약조직을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는 추격신과 사실적인 연출로 담아낸 [프렌치 커넥션], 냉소적이면서도 솔직한 실험적인 로맨스 [애니홀], 인물의 심리를 전형적인 서사 전개에서 벗어나 대담하고 실험적인 테크닉으로 완성한 [버드맨], 아이에서 청년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여정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린 [문라이트] 등 기존 상업 영화의 전형성을 거부한 영화들도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아 놀라게 했다.
[겟 아웃]은 공포영화의 전형성을 비트는 참신한 설정과 시대를 관통하는 스토리로 열띤 지지를 받았다. 특히 감독으로서 첫 작품이란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골든 글로브에서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에 밀리긴 했지만 공포영화를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이다. 그레타 거윅의 첫 단독 연출작 [레이디 버드]는 한때 로튼토마토 신선도 100%를 기록할 정도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시얼샤 로넌의 인생 연기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솔한 스토리는 아카데미의 다크호스가 되지 않을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제도권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이의 시선에서 매혹적인 색감으로 찬사를 받았다. 아쉽게도 골든 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 후보로만 지명되어 아카데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6. 특정 인물이 두드러지는 영화

 

이미지: ㈜ 화앤담이엔티 ‘킹스 스피치’, UPI 코리아 ‘다키스트 아워’

 

전적) 아마데우스(1985), 레인 맨(1989), 양들의 침묵(1992), 포레스트 검프(1995), 킹스 스피치(2011),
후보) 다키스트 아워, 몰리스 게임, 아이 토냐

 

매력적인 인물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영화도 아카데미의 호의를 산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광기 어린 천재의 삶을 다룬 [아마데우스], 예측 가능한 전개에도 더스틴 호프만의 자폐증 연기가 인상적인 [레인 맨], 한니발 캐릭터에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생명력을 불어넣은 [양들의 침묵], 미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휴머니티로 그려낸 [포레스트 검프], 조지 6세의 실화를 배우들의 명연기와 감동적인 서사로 완성한 [킹스 스피치]처럼 실존 인물이든 가상의 인물이든 관객을 사로잡는 캐릭터와 풍부한 서사가 만나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키스트 아워]는 윈스턴 처칠의 전시 총리 시절을 다룬 영화다. 그동안 유명 시상식과 인연이 없던 게리 올드만의 인생 연기가 빛을 발하며 자연스럽게 영화와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몰리스 게임]과 [아이, 토냐]는 스포츠 선수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몰리스 게임]은 올림픽 선수에서 지하 포커 세계로 뛰어든 몰리 블룸의 실화를, [아이, 토냐]는 미국 최초로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선수에서 스캔들에 휘말린 토냐 하딩의 실화를 다뤘다.

 

 

 

7. 약자를 다룬 영화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쓰리 빌보드’

 

전적) 마이 페어 레이디(1965), 록키(1978), 글래디에이터(2001), 슬럼독 밀리어네어(2009)
후보) 쓰리 빌보드

 

약자가 이기는 영화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아카데미는 제도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계속해서 관심을 보여왔다. 거리의 말괄량이 소녀에서 숙녀로 변화하는 과정을 경쾌한 뮤지컬로 그린 [마이 페어 레이디],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한물간 복서의 열정적인 재기담을 그린 스포츠 영화의 고전 [록키], 추방당한 검투사의 영웅적인 복수담을 스펙터클한 연출로 담아낸 [글래디에이터], 인도 빈민가 출신의 가난한 청년의 파란만장한 성공담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고군분투하며 성취하는 과정은 때때로 진한 감동을 준다.
올해는 이런 약자의 성공담이 드물다. [덩케르크]의 젊은 군인들은 겨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겟 아웃]의 크리스는 간신히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딸을 강간살인으로 잃은 밀드레드는 답답한 경찰 수사에 분노해 직접 살인범을 찾아 나서며 정부와 경찰에 맞서 투쟁한다. 그러나 [쓰리 빌보드]가 범인 찾기에 주력하는 영화가 아닌 밀드레드를 분노하게 한 부조리를 묘사하는데 치중한 영화라는 사실은 언더독 스토리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현시대를 반영한 약자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아카데미의 수상 가능성은 꽤 높다. 이미 골든 글로브에서 영화(드라마) 부문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