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으로 시작해 황금종려상으로 막내린 2019 칸 영화제

날짜: 5월 31, 2019 에디터: 혜란

2019 칸 영화제가 성대한 막을 내렸다. 개막 전부터 시네필들의 기대를 한껏 높이는 라인업을 선보였고, 개막 후엔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말들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여성, 인종, 민족, 성소수자 등 소외자의 목소리를 키우고 다양성을 성취하자는 주장은 여전히 컸다. 오래된 공룡 같았던 영화제 또한 더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올해 100년을 맞은 한국영화는 칸 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했고, 한국의 영화팬들은 벅참과 두근거림에 밤잠을 설쳤다. 올해 칸 영화제를 다섯 개의 테마로 정리했다.

봉준호 ‘기생충’,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 수상

이미지: Festival de Cannes

2019 칸 영화제 최고 영예의 주인공은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이었다. 네 가족 전원 백수인 기택네 가족의 장남 기우가 부잣집의 과외 선생으로 가게 되며 벌어지는 영화는 현지에서 “사회 비판, 블랙 코미디, 예측 불가능한 반전으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 작품 중 가장 큰 화제가 됐다.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 감독은 주연배우 송강호, 제작자 곽신애 대표와 함께 무대에 올라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남겼다. “12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어리숙한 영화광이었습니다.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기생충]은 빈부 격차와 계급 간 투쟁이라는 2019년 지금의 문제를 봉준호 특유의 스타일로 풀어내 “봉준호 그 자체가 장르,” “봉준호가 봉준호 했다.”라는 극찬도 이끌어냈다.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황금종려상 결정은 만장일치였다고 밝혔다. 그는 [기생충]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으며, 다양한 장르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끌어내며 현실 사회와 관련 깊고 시급하며 지구 내 보편적 문제를 잘 풀어낸 지역성 강한 영화”라 평가했다. 심사위원 로빈 캉필로 감독은 봉준호를 알프레드 히치콕에 비유하기도 했다.

칸 영화제 수상작: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 신진 감독의 약진

이미지: Les Films du Bal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 작품 중에선 현대 사회의 문제, 특히 계급 갈등과 소외받은 이들의 위기를 다룬 작품이 호평받았다. [기생충]이 계급 간 갈등을 세련된 블랙코미디로 풀어냈다면,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 [아틀란티크]는 가족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세네갈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심사위원상을 받은 [레미제라블]에선 부패한 파리 경찰이 무슬림 공동체를 탄압하고, [바쿠라우]에선 작고 가난한 마을이 자경단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는다. 다르덴 감독의 [영 아메드]는 한 이슬람 소년의 급진화를 다루고, 켄 로치의 [쏘리 위 미스드 유] 또한 노동 계급의 삶을 그린다. 심사위원장 이냐리투가 “우리에게 반향을 일으킬 보석을 찾을 것”이라 밝힌 것처럼 현실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작품들이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올해 경쟁 부문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거장 감독들보다는 수상 경험이 없었던 감독들이 상을 받았다. 봉준호는 이전까지 칸 영화제 수상 경력이 없다. [아틀란티크] 마티 디옵은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다르덴 형제는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켄 로치, 쿠엔틴 타란티노, 테런스 말릭 등 이미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감독들은 무관으로 돌아갔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는 강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혔지만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남우주연상을 받는 데 그쳤다.

논란 한 가득: 압델라티프 케시시, 로만 폴란스키, 김기덕

이미지: Quat’sous Films

[가장 따뜻한 색, 블루]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압델라티프 케시시는 올해 칸에서 대형 폭탄을 터뜨렸다. [멕토웁, 마이 러브: 인터메조]는 지난 베니스 영화제에서 공개한 영화의 속편으로 90년대 청춘들의 삶과 열정을 찬사하한다는 영화 의도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이 이어졌다는 평가다. 실제로 출연한 배우들마저 충격으로 상영관을 이탈했고, 한 평론가는 ‘칸 영화제의 재앙’이라고 명명했을 정도다. 게다가 주연배우 두 명이 펼치는 10분 남짓의 성관계 장면은 감독이 배우들에게 술을 많이 먹이고 억지로 촬영했다는 게 밝혀지며 윤리 자체가 문제가 됐다.

칸 필름마켓에선 김기덕과 로만 폴란스키의 신작이 바이어들에게 선보였다. 김기덕은 작년 카자흐스탄에서 촬영한 신작 [딘]을 사전에 관심을 보인 일부 바이어에게만 공개했다. 자신이 연출한 영화 대부분의 추련 배우에게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그가 해외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단 점에서 논란은 피할 수 없다. 1977년 저지른 미성년자 성폭행이 최근 재조명된 로만 폴란스키 또한 신작 [나는 고발한다]를 공개했다. 프랑스 장교가 독일 스파이로 몰려 억울하게 처벌된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바이어들은 영화 자체는 좋게 평가했으나 지금까지 판권 관련 논의는 없다는 후문이다.

넷플릭스 없어도 영화제는 잘 돌아가요

이미지: Fox Searchlight / 그린나래미디어

넷플릭스가 칸 영화제 출품을 전면 보이콧한 게 올해로 2년째다. 하지만 올해 칸 영화제의 라인업은 굳이 넷플릭스 없이도 좋은 작품으로 라인업을 꾸릴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올해 라인업은 거장과 신진 감독의 조화가 인상적이었으며, [멕토웁, 마이 러브]를 제외하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경우는 있으나 ‘나쁜 영화는 없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경쟁부문 초청작을 영미와 유럽권 영화로 채우면서 아시아와 남미 영화는 단 3편만 소개됐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바쿠라우]가 심사위원상을 받은 것이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되었다.

올해 영화제 공개 작품 중 거액의 배급권 거래가 성사된 경우가 여럿 있다. 테렌스 말릭의 [히든 라이프]는 폭스 서치라이트가 1,200~1,400만 달러를 내고 여러 국가의 배급권을 가져갔다. 각본상 수상작 [불타는 여인의 초상] 또한 여러 지역의 배급 계약을 성사했으며, 미국은 [기생충]을 배급하는 네온이, 한국은 그린나래미디어가 수입을 확정했다. 넷플릭스는 영화제 출품은 보이콧했지만 [아틀란티크]와 비평가주간상 수상작 [나는 내 몸을 잃었다]의 배급권을 획득했다. [기생충]은 황금종려상 수상과 함께 192개국에, [악인전]은 174개국에 판매됐다.

급변하는 영화 시장에서 영화제의 미래를 걱정하다

이미지: Festival de Cannes

칸 영화제 베를린,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지만 실제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만하다. 하지만 올해 영화제 첫 주말에 사람들은 영화제 상영작보다 [왕좌의 게임] 결말을 더 주목했다. (칸에서도 HBO를 어떻게 보는지 문의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철왕좌의 주인이 누가 될지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한 시점에 칸 영화제가 화제에 오르는 건 한계가 있었다. [로켓맨]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최초 공개하고 실베스터 스탤론을 공식 초청까지 했지만 바람을 일으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흥행 아니면 아카데미를 노리는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영화 마케팅 시작을 베니스와 토론토 영화제로 집중하면서 칸은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칸 필름마켓을 취재한 여러 기사는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이 ‘괜찮은’ 콘텐츠를 장르와 언어 가리지 않고 싹쓸이했고, 대형 스튜디오가 아트하우스 영화 제작과 배급에도 손을 뻗으며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었다고 전한다. 극장은 대형 블록버스터로, 중소형 영화는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돈이 있는 플랫폼은 대규모 블록버스터와 짜릿한 장르 영화를 원하면서 이에 해당되지 않는 영화는 그저 “영화제용 영화”로만 남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칸 또한 변신을 거듭하지만, 과연 급변하는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은 “칸도 미래를 향하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일단 기대를 품고 지켜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