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빈상자

 

고양이는 개와 함께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면서 동시에 분명 개와는 다른 특징과 매력을 갖고 있다. 고양이 털과 같이 살고 묻고 먹는 일에도 일찌감치 익숙해져야 하고, 벽이나 소파를 박박 긁어놔 집사의 근무환경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깔끔하고 독립적인 성격은 핵가족화된 현대인의 생활패턴에 더 잘 어울리기도 한다. 강아지처럼 애절하고 껌딱지 같은 유대감은 보여주진 않지만, 새침한 듯 거리를 두다가도 무심히 다가와 가르랑거리며 몸을 비비거나 키보드 위에 누워버릴 때는 집사들은 심정지의 위기를 맞게도 된다. 이처럼 고양이는 수많은 고양이의 집사들이나 애묘인들에게는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이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고양이를 여전히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문화와 사람들도 공존하고 있다.

 

<이미지: 스튜디오 지브리 ‘귀를 기울이면’>

 

깜찍한 새 트위티를 괴롭히는 실베스타와 제리에게 번번이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톰, 절대 거절할 수 없는 간절한 눈빛을 가진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주인인 신데렐라의 계모만큼 얄미운 루시퍼, 그리고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버스까지, 애니메이션에서 고양이는 다양한 캐릭터로 의인화되어 등장해 왔다.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여러 영화에서도 고양이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영화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고양이 중 특별히 깊은 인상을 남긴 고양이를 소환해본다.

 

 

1. <티파니에서 아침을> 1961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뉴욕으로 상경해 화려한 상류생활을 꿈꾸는 홀리(오드리 헵번)에겐 이름도 지어주지 않은 고양이가 있다. 강가에서 만난 유기묘를 데려와 같이 살고 있는 홀리는 고양이와 자신을 서로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관계라고 믿는다. 그녀 자신도 언제 또 길을 떠날지 몰라 1년이 지나도록 아파트에 변변찮은 가구조차 들여놓지 않고 떠돌이처럼 뉴욕에 머물고 있다.

고양이와 고양이를 대하는 홀리의 자세는 그녀가 삶과 사랑을 대하는 모습을 닮았다. 14살에 집을 나와 늘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홀리는 위층의 가난한 소설가 폴과 점점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녀는 ‘가난’한 소설가나 ‘사랑’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스스로는 끌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저항하려고 한다. 그러한 홀리의 저항은 고양이를 폭우가 쏟아지는 뉴욕의 거리로 내쫓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아무리 오드리 헵번이라도 냥이를 그렇게 버리다니!

다행히 홀리는 멀지 가지 못하고 다시 고양이와 폴을 찾아 돌아온다. 고양이도 찾고 폴도 찾고, 그리고 처음으로 홀리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반성하고 저항 없이 진짜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탄생한 빗속 키스 명장면. 그런데 고양이는 놓아주자. 냥이 숨 막혀 죽겠다.

 

 

2. <대부> 1972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영화가 시작하면 어두운 방 안에서 누군가 보이지 않는 이에게 구구절절 억울한 일을 하소연한다. 카메라가 점점 빠지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이를 조용히 듣고 있던 마피아의 대부, 돈 비토 꼴레오네(말론 브랜도)이다. 시종일관 솜을 입안에 물고 있는 듯한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영화 속 인물들은 물론 관객들을 압도하는 대부이지만, 그의 손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하는 순간만큼은 긴장했던 얼굴이 펴지며 미소를 띠게도 된다. 나중에 손자와 놀던 대부의 모습과 함께 마피아 거물에게서 인간미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양이가 영화에 등장하게 된 계기다. 대부의 고양이는 원래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마리오 푸조의 대본에는 없던 것으로 코폴라 감독은 촬영 당일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안을 돌아다니던 유기묘를 우연히 발견하여 촬영장으로 데려왔다. 고양이를 직접 키우기도 했던 말론 브랜도는 데려온 고양이가 대부 캐릭터에 도움이 될 거라며 함께 촬영하기로 한다. 유기묘치곤 뜻밖의 개냥이였던 고양이의 애교 덕분에 촬영은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대부의 인간미를 드러내 주었다.

 

 

3. <에이리언> 1979

 

<이미지: 이십세기 폭스>

 

긴 꼬리를 가진 영덕대게 같이 생긴 에이리언 베이비를 찾아 노스트로모호의 승무원들이 나선다. 아직 관객들과 승무원들도 에이리언의 성체 제노모프의 존재를 모르던 때였다. 하지만 승무원들이 찾은 것은 고양이 존지였다. 놀란 승무원들만큼 놀란 존지가 도망가자 브렛이 혼자서 존지를 찾아 나선다. “이리온, 키티 키티”

존지를 찾아 나서는 브렛의 목소리가 화물선의 어둡고 습한 공간 안에서 외롭고 싸늘하게 울린다. 그 순간 에이리언을 브렛보다 먼저 목격한 존지는 바짝 오른 경계심의 소리를 낸다. 그리고 에이리언의 첫 희생자가 잔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존지의 눈. 왠지 직접 그 현장을 목격하는 것보다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동료들이 모두 희생되고 혼자 남은 리플리에게 존지마저 없었다면 에이리언과 둘이 남은 광활한 우주가 얼마나 더 무서웠을까. 다행히 리플리와 함께 노스트로모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존지는 <에이리언 2>에서도 재등장한다. 다만 이번에는 존지의 안전을 위해서 지구에 남기로 한다. 존지에겐 다행히지만, 존지 없는 멀고 긴 여정이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4. <매트릭스> 1999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네오는 계단을 오르다 지나가는 검은 고양이를 본다. 그것도 똑같은 고양이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이러한 데자뷔는 메트릭스 세상에서는 ‘프로그램’이 무언가 변경하면서 생기는 결함이다. 데자뷔를 확인한 일행은 곧 그들이 매복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검은 고양이는 고양이 중에서도 가장 억울하다.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검은 고양이’처럼 서양에서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묘사된 경우가 많다.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녀가 변신한 동물인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리고 옛날 독일에서는 네오가 본 고양이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 고양이를 불행 혹은 죽음의 징조라고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은 몸에 눈동자만 반짝이는 고양이가 얼마나 귀여운데. 이랬다 저랬다 장난꾸러기라도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그래도 검은 고양이가 무서운 사람들은 <마녀 배달부 키키>의 검은 고양이 지지만 생각하자.

 

 

5. <문라이즈 킹덤> 2012

 

<이미지: 영화사 진진>

 

<문라이즈 킹덤>은 프레임 하나하나가 동화책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완벽한 미장센으로 꽉 차 있다. 완벽주의자 웨스 앤더슨 감독이 완성한 60년대의 킹덤은 12살 소년 소녀의 풋풋한 첫사랑의 완벽한 배경이 되어준다.

소년 샘에게 카키색으로 도배한 카키 스카우트의 너구리 문장과 모자가 있다면 소녀 수지에게는 아기 고양이가 있다. 12살 소녀에게 연약하고 귀여운 아깽이만큼 잘 어울리는 동물이 또 있을까. 적당한 때를 맞추어 캐리어 틈으로 고개를 내밀려하는 아기 고양이는 그 연기까지 깜찍하다.

영화 중간 이후 아기 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궁금하게 만들었다가 영화 끝에 가서 훌쩍 커서 나타난다. 역시 고양이나 사람이나 아이들을 보면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항상 귀여운 아기로 남아주었으면 좋겠지만, 사람의 시간보다 빨리 가는 고양이의 시간이 집사들은 늘 안타깝다.

 

 

6. <엘르> 2016

 

<이미지: 소니 픽쳐스>

 

영화는 주인공 미셸이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미셸의 고양이 얼굴을 비추이며 시작한다. 미셸이 저항하고 있는 가운데 아무런 반응 없는 목격자인 고양이의 모습은 다소 냉정하게 느껴진다. 섭섭함인지 아쉬움인지 미셸도 고양이에게 한마디 한다. ‘얼굴이라도 할퀴었어야지.’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은 무표정했던 고양이의 모습이 주인 미셸을 많이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폭행당한 후에도 툭툭 털고 분연히 일어나 태연하게 초밥을 주문하는 미셸의 감정은 고양이의 표정처럼 늘 담담하고 그 속을 알기 힘들다. 성폭행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모습이 마치 미셸 스스로가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미셸의 표정과 자세는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이나 성폭행 피해자에게 대한 우리의 편견을 지적하기도 한다. 개에 비해 덜 의존적이고 독립적인 고양이를 냉정하고 차가운 동물이라고 단정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고양이에겐 개와는 또 다른 자신들만의 애정과 유대감의 표정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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