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이 남긴 유산들, 그리고 다시 빼앗아 간 것들

날짜: 5월 26, 2019 에디터: 에그테일

 

*** 스포일러 주의 ***

 

글. 빈상자

 

 

결국은, [왕좌의 게임]이 끝나고 말았다. 마지막 시즌에 대한 불만과 실망, 여러 캐릭터의 마지막 운명에 대한 호불호, 커피 컵과 생수병, 그리고 청원으로 모여든 시청자들의 대동단결과 함께 수많은 기사와 짤, 논란과 논쟁을 남기고 [왕좌의 게임]이 끝났다. 방송한 햇수만으로도 8년을 이어간 긴 여정을 함께하며 캐릭터와 시청자는 함께 나이를 먹었다.

 

이미지: HBO

비록,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고 해도 [왕좌의 게임]은 여전히 굉장한 드라마였다. 미국에서만 케이블 TV 역사상 최고 기록인 1천3백만 명이 본방사수를 했고, 편당 평균 누적 시청자 수도 4천4백만 명이라는 최고 기록을 만들었다. 또한,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170여 개국에서 방송되면서 전 세계에서 수많은 시청자와 열광적인 팬덤을 만들었다. 마치 170여 개국 시청자들과 함께 8년간 이어진 월드컵을 함께 지켜보며 응원도 하고 좌절도 한 듯한 느낌이다. 단순한 기록과 수치만을 넘어서 이전까지 없었고 앞으로 다시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드라마였다.

 

이런 생각을 할수록 마지막 시즌이 아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쉽다는 것은 상당히 둥글둥글한 표현이고, 종종 어이가 없고 답답하며 화도 나는 마지막 시즌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시즌에 대한 분노만으로 8년을 투자한 인생 드라마에 대한 평가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그래서, [왕좌의 게임] 전체적인 성과의 일부를 ‘조금씩만’ 돌아보며 마음을 진정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글은 그러한 성과를 일순간에 무너뜨린 시즌 8에 대한 원망 또한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치와 전투를 주도하는 여성들

[왕좌의 게임]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은 여러 가지 면에서 비난의 대상이기도 했고, 동시에 긍정적인 평가의 대상이기도 했다. 파일럿부터 피날레까지 꾸준히 설전을 오가게 만들었으며, 도중에 미투운동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논쟁이 커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미투운동 이전부터 여성 캐릭터에 대해 진전된 시각과 묘사를 보여준 드라마이기도 했다.

 

이미지: HBO

북미에서는 [왕좌의 게임]의 원작명에 빗대어 ‘얼음과 불’이 아닌 ‘가슴과 용(Boobs and Dragons)’라는 별칭까지 지어주었는데, 최대 시청자 팬층인 백인 남성들을 공략하기 위한 중요한 미끼였다. 드라마는 확실히 초기에 여성의 나체를 보여주는 일이 많았고, 대너리스의 희생도 많았다. 이후에 용이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무엇보다 고정 시청자가 확보되고 시청자의 성비가 거의 비슷해지면서 점차 나체보다 용의 역할이 커졌다.

 

산사는 초기에는 왕자와 결혼해서 여왕이 되는 것이 최대 목적인 전형적인 공주 캐릭터였다. 대너리스 또한 폭력적이며 야심도 많은 오빠에 의해 도트라키 부족의 칼 드로고에게 팔리듯이 시집을 가야만 했다. 다행히 대너리스는 빠르게 자신의 목소리를 키워갔고, 드로고의 이른 퇴장과 맞물려 이름만 여왕이 아닌 도트라키의 실질적인 지도자로서의 칼리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HBO

대너리스에 비한다면 산사의 변화는 매우 더딘 편이었다. 산사는 조프리, 티리온, 램지, 그리고 리틀핑거까지, 상대만 바꾼 채 (적의 손에 남겨진 십대 소녀가 생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기도 했지만) 계속 남자들에게 의존적인 생활을 오랫동안 이어갔다. 그러다 램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산사의 가장 힘든 시기이자 [왕좌의 게임]의 가장 큰 논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다행히 산사도 결국엔 남성들에게 의존적인 자세를 벗어나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산사가 겪어야 했던 여정과 변화는 윈터펠의 독립을 선포한 이유가 되기도 했고, 북부의 여왕이 될 수 있는 근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8에서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더 강해졌다는 산사의 간증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논란이 되었다.

 

이미지: HBO

대너리스와 산사 이외도 [왕좌의 게임]에는 수많은 강인한 여성 캐릭터와 리더가 등장한다. 귀여운 소녀에서 암살자로 변모한 아리아는 물론, 하운드도 무너뜨린 기사 브리엔, 남자인 테온보다 강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누이 야라, (비록 악역이지만) 냉정한 지략가 세르세이, 그리고 짧은 등장과 몇 마디만으로 수많은 팬을 만들어낸 리안나 모르몬트까지, [왕좌의 게임]에서 여성들은 정치판에서는 물론 전쟁터에서도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니었다.

 

 

 

기사에서 다시 소녀로

이미지: HBO

시즌 8이 욕을 먹은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왕좌의 게임]이 이러한 성과를 빛바래게 만든 데 있다. 우선 내내 (남녀 통틀어) 가장 전투에 능한 캐릭터 중 한 명이었던 브리엔을 제이미가 떠날 때 질질 짜는 징징이 사춘기 소녀로 만들었다. 여자는 기사가 될 수 없다는 전례를 깨고 브리엔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쿨하던 제이미와 브리엔의 관계는 갑자기 브리엔의 일방적으로 의존적인 관계로 추락하고 말았다. 피날레에서 제이미에 관련된 ‘위키피디아’ 내용을 수정하는 브리엔의 모습은 감동적이라기보다 집착처럼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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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에서 유일하게 대너리스에 견줄만한 지도력이 있던 존 스노우 또한 시즌 8에 이르러서는 우유부단하고 충성과 복종이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답답이가 되고 말았다. 작가는 현실과 신념, 사랑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하지만, “왕 안 해”와 “그래도 내 여왕”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대안을 제시하지도 변화를 이끌지도 못하는 모습은 고뇌하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라 뇌정지가 온 멍청이에 가까웠다. 만약, 그나마 그가 피날레에서 대너리스를 죽이며 사태를 마무리도 짓지도 못하고 캐슬블랙으로 돌아가 고스트를 안아 주지도 않았다면, 그의 팬덤은 회복할 수 없는 아주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미친 건 여왕이 아니라 작가들

캐릭터 붕괴에 대한 큰 비난은 대너리스의 다소 급작스런 흑화에도 집중되어 있다. 앞서 돌아본 것처럼 대너리스는 수동적인 여성에서 능동적인 여성으로 변모한 대표적인 변화와 극복의 아이콘이었다. 단순히 능동적인 여성으로만 변한 것이 아니라, [왕좌의 게임]의 세계에서 가장 리더십이 강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대너리스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그저 세 마리 용을 거느리고 있는 삼용엄마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비와 엄벌을 적절하게 배합하며 피억압자들의 민심을 사고 권력자들을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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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즌 8에서 백귀와의 긴 밤의 전투 이후의 대너리스는 그전까지 우리가 알던 대너리스가 아니었다. 제작자들은 킹스 랜딩 대학살이 벌어지는 5번째 에피소드를 시작하며, ‘전편 줄거리’에서 전체 시즌을 다 뒤져 긁어모은 플래쉬백을 투하하며 흑화의 조짐은 예전부터 늘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시즌 8이 제시한 대너리스가 흑화된 결정적인 이유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라서, 플래쉬백은 치밀한 복선이 아닌 억지 변명처럼 느껴졌다. 시즌 8은 마치 대너리스가 심복들도 사랑도 다 잃고 외톨이가 된 여자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제이미가 악에서 선으로 변화했듯이, 선도 악으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대너리스가 늘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강하고 적에게 잔혹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무고한 사람들까지 아무 이유 없이 학살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다못해 대너리스는 8년 동안 내내 [왕좌의 게임]을 이끌고 가던 주인공이었음에도 자신의 심경의 변화를 직접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대신 우리는 티리온과 배리스의 걱정, 그리고 존의 변명만 들어야만 했다. 시즌 8은 끝으로 갈수록 대너리스의 시간을 빼앗고 티리온과 존에게 집중하면서 대너리스를 들러리처럼 만들었다.

 

 

 

캐릭터 붕괴의 연속

안타깝게도 시즌 8이 후퇴시킨 캐릭터는 이들만으로 멈추지 않는다. [왕좌의 게임]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시청자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촘촘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의 힘이었다. [왕좌의 게임]에는 8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큰 기복을 거치는 인물들이 존재하는데, 드라마는 파도를 타는 듯한 인물의 변화도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에 따라 시청자들은 한 인물을 증오도 했다가 연민도 하고 그러다 애정을 보내기도 했다. 하다못해 세르세이에게도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기복과 변화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역시 테온과 제이미다. 테온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캐릭터에서 미운 캐릭터로, 다시 찌질함과 불쌍함을 넘나들다가, 곧 시청자들이 동정하고 안쓰러워 하기 시작했으며, 마지막엔 영웅이 되어 죽었다. 이러한 변화를 막장이 아닌 삶의 우여곡절로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지: HBO

제이미도 시작점 파일럿으로부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초반에 뺀질뺀질한 얼굴과 얄미운 말투로 비아냥거리던 비호감 캐릭터였던 그는 이전의 편안한 삶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고초와 브리엔과의 여정을 거치면서 점차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 간다. 하지만, 제이미는 마지막 순간에 다시 시즌 1의 그처럼 사랑 때문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앞뒤도 가리지 않던 제이미로 돌아가고 말았다. 세르세이 품으로 돌아간 제이미에게 시청자들이 분노한 것은 단순히 세르세이가 형제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이 빗나가서만은 아니다. 악에서 선으로 변모해간 제이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만든 이야기와 같은, 마지막 그의 선택을 납득할 수 있게 하는 이유가 시즌 8에는 결여되어있다.

 

 

 

야만인들은 역시 야만인일 뿐?

[왕좌의 게임]이 비호감 캐릭터들을 호감으로 돌려놓은 것은 맨 앞에 선 주인공들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영화나 드라마에서 백인이 아닌 민족은 거의 늘 잔인한 야만족이었고 적이었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은 중세 드라마도 아니었고 전형적인 드라마도 아니었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관습과 편견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이를 부셔나가듯이, [왕좌의 게임]은 웨스테로스 대륙 밖의 외지인들을 다루는 방식 또한 비슷한 과정을 밟는다.

 

이미지: HBO

대너리스의 오빠 비서리스는 철왕좌를 뺏기 위해 도트라키와 규합하면서도 늘 그들을 야만족이라며 대놓고 멸시한다. 대너리스 또한 초기에는 도트라키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를 숨기지 못한다. 하지만, 곧 대너리스는 그들을 자기의 사람들로 포용하게 되며, 나중에 가는 지역마다 모든 외지인들을 그렇게 대했다. 우리의 역사가 그렇듯 [왕좌의 게임]의 세계에서도 외지인이 대한 증오와 경계는 적지 않다. 웨스테로스의 사람들은 대너리스의 사람들인 도트라키와 거세병들에게는 물론 같은 대륙 사람들인 장벽 너머의 와이들링에게도 기본적으로 적대감을 품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외부의 적인 백귀에 대적하기 위해서 도트라키, 거세병, 와이들링, 북부의 사람들은 윈터펠에서 대화합을 이룬다. 인종과 문명에 의해서 편이 갈리지 않고 신념과 지도자에 따라서 세력이 재편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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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양한 민족과 문명이 힘을 모은 연합이 오래갈 것이라고 믿은 시청자는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다른 드라마들이 쉽게 이루지 못한 커다란 진전이었다. 그 진전이 퇴색되기 시작한 건 역시 긴 밤의 전투가 끝난 직후다. 백귀로부터 북부를 지켜낸 후에도 존재하는 와이들링에 대한 차별로 그들이 바로 떠나는 것은 오히려 납득할만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건 역시 웨스테로스 사람들이 아닌 도트라키와 거세병의 변화였다. 대너리스의 흑화와 거의 동시에 도트라키와 거세병은 이성을 상실한 채 살육을 즐기는 ‘야만족’으로 묘사되었고, 혼돈 속에서도 북부인들과 티리온 등 백인들만은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물론 [왕좌의 게임]이 ‘타자’를 대하는 방식은 전체적으로도 과거로부터 진전은 있었어도 한 번도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던 적은 없었다. 우선 거세병과 도트라키의 지도자는 그들이 아닌 백인인 대너리스다. 거세병은 지휘관 그레이 웜을 제외하고는 감정도 말도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 군단처럼 보인다. 미산데이와의 연정 덕분에 한때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던 그레이 웜도 결국 미산데이의 죽음과 함께 차가운 살인 병기가 되었다. 도트라키 중에서는 시즌 1에서 칼 드로고의 죽음 이후로는 변변한 캐릭터 하나 나오지 않았다. 거세병들과 도트라키에게 조금이나마 있던 호감과 연민은 그들이 마지막에 광기에 빠진 파시스트 군대처럼 되면서 싸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소수자를 대하는 방식

그럼 8년을 이어간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극중에서는 ‘체육관 선거’를 통해 왕이 된 브랜이었고, 팬덤으로서는 티리온이다. 그런데 이 승자들의 공통점은 장애인이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나 영화가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은 조심스럽거나 아니면 보호해야 할 대상, 최악은 희화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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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서자와 소인이라는 설움 덕에 존 스노우와 티리온은 시즌 1부터 공감을 나누기 시작한다. 다만, 서자가 소인과 마찬가지로 차별을 받았다고 해도 장애인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결국엔 존 스노우는 서자도 아니었다. 존 스노우를 부를 때마다 욕(‘bastard’)이 따라다녔듯이, 소인인 티리온을 대하는 방식 또한 [왕좌의 게임]은 직설적이었다. ‘dwarf’, ‘imp’, ‘halfman’ 등 온갖 경멸적인 표현이 티리온을 항상 따라다녔다. 하지만, 파일럿에서 티리온은 존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 그러한 경멸적인 말을 갑옷처럼 두른다면 그것에 상처 받는 일은 없을 거라고.

 

늘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태도와 드라마 캐릭터 중 최고의 유머 감각을 갖춘 티리온에게 점차 이입되면서 시청자들은 점차 그가 소인이라는 것을 잊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난쟁이’가 아니라 재미있고 똑똑한 사람, 끝까지 이성과 소신을 지킨 지성인으로서, [왕좌의 게임]의 가장 두드러진 캐릭터,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만 기억되었다. 대너리스를 배신한 이후에도 그가 신속히 처형되지 않은 건 행정처리가 늦어져서가 아니라 그러한 인기 때문이었다.

 

 

 

브랜, 눈 좀 떠봐

파일럿에서부터 사고를 당한 브랜에게도 [왕좌의 게임]은 잃어버린 다리 대신에 아주 특별한 능력을 주었다. 다만, 리드 남매, 오샤, 호도르, 서머 등 많은 이들의 도움과 희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브랜이 막상 그들에게 냉정한 모습을 보여줘서 은혜도 모르는 냉혈한처럼 보인 것은 조금 아쉽다. 그러다 브랜의 팬들이 떠난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시즌 8의 업적인데, 마지막 시즌은 그가 몇 년을 고생 고생하면서 어렵게 얻은 능력이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기여를 했는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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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키운 막내 브랜을 시즌 8이 망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그가 웨스테로스의 6개 왕국을 통괄 통치하는 왕이 되면서다. 대너리스도 죽고, 사랑하는 여자를 자기 손으로 죽인 마당에 존 스노우도 왕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을 거라는 상황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영주들만 모인 밀실 투표에서 (산사를 제외한다면) 거의 만장일치로 브랜이 왕으로 선출된 결정에 대해 많은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최고 인기 캐릭터 티리온의 장황한 연설도 별 효력이 없었고, 브랜이 스타크가의 영주를 마다한 것도 왕이 되기 위해서였고 무고한 살육과 가까운 이들의 죽음까지 방관했다는 음모론만 키웠다.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세요?” 차라리, 넣지 않았으면 좋았을 대사다.

 

 

 

속전속결 결말들

[왕좌의 게임]이 용두사미가 될 조짐은 시즌 8 이전부터 있었다. 그전까지 차곡차곡 쌓아 올려가던 [왕좌의 게임]의 공적이 조금씩 바래지기 시작한 건 드라마가 조지 R. R. 마틴의 원작을 본격적으로 앞서가기 시작한 시즌 6에서부터였다. 그게 시즌 7에서 확연해졌고, 시즌 8에서는 상황이 아주 심각해졌다. 당연히 많은 팬들의 원성도 마지막 시즌에 집중되고 있는데, 수많은 캐릭터가 붕괴되고 플롯의 허점이 많아진 근본적인 원인은 부족한 편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편수가 줄었다면 작가들이라도 기지를 발휘했어야 했는데 빨리 마무리하려는 조급함만 강했을 뿐 현명한 대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미지: HBO

[왕좌의 게임]의 전체를 돌아봤을 때 원인으로 시작해서 그에 따른 결과까지의 완성은 자주 인내심을 요구할 정도였다. 오랜 시간 동안 원한만 자꾸 쌓여가고 복수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으며, 스타크 아이들이 빨리 크기만을 바랄 뿐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기도 했다. 조프리, 타이윈, 램지, 리틀핑거 등 중간중간을 장식한 악역들이 사라지는데 매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비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에 비해 8년을 기다려온 전 인류의 공포 나이트 킹과 스타크가의 원수 세르세이는 그 긴 시간과 무게감에 비해 너무나도 허망하게 무너졌다. 상상할 수 없는 공포와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것이라고 파일럿부터 내내 그렇게 겁을 주더니 나이트 킹과 그의 백귀 부대는 단칼에 쓰러졌다. 아무리, 나이트 킹만 잡으면 다 끝이라고 공공연하게 미리 알렸다고는 해도, 그동안에 전해 내려온 전설과 그가 보여준 위세에 비한다면 쉬워도 너무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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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무너진 세르세이와 킹스 랜딩도 허무했다. 바로 전 회에서 스콜피온으로 용 한 마리도 잡았던 유론의 함대와 이름마저 비싸 보이는 2만 명의 황금용병단은 무쓸모였다. 드라마 내내 그렇게 똑똑하고 치밀해 보이던 세르세이마저 관전을 즐길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다가 울면서 도망친다. 세르세이가 사랑하는 남자 제이미의 품에 안겨 벽돌에 깔리는 비교적 평화로운 죽음도 팬들의 한을 풀어주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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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의 [왕좌의 게임]의 속도를 생각한다면 나이트 킹과 세르세이를 무너뜨리는 데만 각 최소 한 시즌씩은 걸렸을 듯하다. 또한 대너리스가 킹스 랜딩을 불태우고 파시즘의 화신이 되어 왕좌를 차지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나치도 6년 가까이 전쟁을 버텼는데 무시무시한 사열과 섬뜩한 연설까지 했던 대너리스와 그의 부대도 손쉽게 끝이 났다. 제대로 하려면 아마 대너리스가 철왕좌에 앉은 시점부터 다시 그를 무너뜨려는 항쟁과 마무리까지 스핀오프 새 드라마를 제작해도 무리가 없었을 듯하다.

 

하지만, 대너리스는 일일 천하조차 누려보지 못했고 그의 충성스러웠던 거세병과 도트라키 부대도 자신들이 점령하고 있던 킹스 랜딩을 이상할 정도로 너무 쉽게 포기했다. 하다못해 대너리스의 유일하게 남은 용 드로곤도 현행범인 존 스노우를 살려둔 채 미련 없이 훠이훠이 날아가버렸다. 드라마를 끝내기 위해서 모두와 밀거래라도 한 듯, 모두 너무 손쉽게 포기하고 간편하게 해결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들과 서브플롯들이 매듭짓지 못한 채 쫓겨나듯 사라지고 말았다. ‘얼음과 불의 노래’ 책을 올려놓고, 사창가 재건립에 대한 농담을 할 시간에 플롯 하나라도 더 매듭지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의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

최악의 상황에서 그나마 최악의 최악을 면할 수 있던 건 (이것 또한 의견이 많이 갈리긴 하지만) 스타크가 아이들의 각자가 선택한 길인 듯하다. 브랜은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산사는 윈터펠의 독립을 선포한 후 북부의 여왕이 되었고, 아이아는 자유롭게 신대륙 탐험에 나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되었으며, 그리고 존 스노우는 마치 속세를 떠나듯 토르문드, 고스트와 함께 장벽을 넘어갔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웨스테로스의 권력이 집중된 왕자를 두고도 형제들이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의아하다. 몰살당한 부모나 장남 롭의 가족에 비한다면 굉장한 생존율을 보여준 것도 놀랍다. 그런데, 그렇다고 막상 이들 중 누군가를 잃었더라면 또 그때는 그때대로 작가들을 많이 원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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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좋든 싫든, 최악이었던 최선이었던, [왕좌의 게임]은 끝났다. 그래도, 마지막 시즌은 몰라도 전체를 돌아봤을 때 [왕좌의 게임]은 그렇게 양분된 평가만으로는 쉽게 재단할 수 없는 드라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8년 동안 담았던 애정만큼 실망스러운 마음이 크다면 원작자 조지 R. R. 마틴의 소설을 기다려보자. 지금 당장에 제작 준비 중인 스핀오프들도 있다. 아니면, 방영된 [왕좌의 게임]을 재편집해도 좋고 나만의 팬픽을 써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돌아보면 지난 8년 간 [왕좌의 게임]을 보면서 우리는 이미 각자의 이야기를 써왔다. [왕좌의 게임]은 허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8년 동안 우리 각자가 드라마를 보면서 슬퍼하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공감했던 경험만은 실재의 것이다. 그건 우리 각자의 이야기였다. 산사와 아리아의 이야기에 견주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브랜의 이야기보다는 낫다. 티리온, 당신 그것만은 틀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