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현재까지 베스트 해외 신작 드라마

TV 황금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매주 새로운 시리즈가 공개되면서 볼 게 넘치는 시대가 됐다. [왕좌의 게임]이 마지막 시즌에서 비틀거리긴 했지만, 지난해 호평받으며 닻을 올린 [킬링 이브], [배리]의 두 번째 시즌은 소포모어 징크스를 비껴갔고, [굿 파이트], [플리백], [부통령이 필요해] 등은 여전히 좋은 이야기로 호평을 받았다. 신작 드라마의 선전도 두드러진다. 전 시즌을 봐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신작 드라마 중 평단과 시청자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은 6편을 소개한다. (여기 리스트에 없는 드라마는 추후에 기회가 되면 소개하겠다)

 

 

 

러시아 인형처럼(Russian Doll)

이미지: 넷플릭스

36번째 생일에 반복해서 죽음을 맞는 나디아는 기괴한 악순환에 갇혔다. 죽음을 반복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얼핏 [해피 데스데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러시아 인형처럼]은 단순히 장르적 재미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시간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해답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타임루프 클리셰를 재치 있게 비틀며, 개인의 고통스러운 실존적인 문제에 다가선다. 나디아는 성향은 다르지만 같은 운명에 처한 앨런을 만나고, 두 사람은 점차 외면하고 억눌러왔던 문제에 다가선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나타샤 리온이 쿨하고 냉소적인 성격의 나디아로 분해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중독성 강한 이야기에 강력하게 끌어들인다. 회당 30여분의 8부작이라는 점도 놓칠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다.

 

 

 

체르노빌(Chernobyl)

이미지: HBO

최근 5부작으로 막 내린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은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1986년 우크라이나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을 다룬다. 세계 최악의 핵 재난 사건을 폭발이 일어난 당시부터 이후 수습 과정의 핵심적인 이야기를 압축해서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사실적인 연출로 담아낸다. 사건 조사위원장이었던 발레리 레가조프를 중심으로 엄청난 재앙을 안긴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씁쓸하게 몸서리치는 공포를 안긴다. 폭발 발생 직후의 풍경을 묘사하는데 할애한 1화는 인간의 무지와 자만이 만들어낸 섬뜩한 공포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방사능 공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의 현실 때문에 더욱더 강하게 몰입하게 되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방사능보다 무서운 기만한 국가 권력에 통감하게 된다.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는데 급급한 권력층과 최전선에서 생명을 내걸고 수습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번갈아 비추며, 사건을 둘러싼 현실을 냉정하게 해부한다.

 

 

 

디 액트(The Act)

이미지: 훌루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강력범죄사건은 다큐멘터리를 넘어 TV 시리즈로 확장되고 있다. 패트리샤 아퀘트와 조이 킹이 끔찍한 모녀로 호흡을 맞춘 [디 액트]는 과잉보호를 일삼는 엄마와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딸의 이야기를 다룬다. 비극으로 끝난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두 배우의 소름 끼치게 경이로운 연기는 시작부터 빠져들 수밖에 없는 강력한 계기가 된다. 패트리샤 아퀘트는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탈옥수의 실화를 그린 [이스케이프 앳 댄모라] 이후 또다시 실화 소재 드라마에 출연해 결코 호감 가질 수 없는 문제적 인물을 탁월한 역량으로 소화하는데, 조이 킹 역시 그에 못지않은 무시무시한 연기를 보여준다. 조이 킹은 신체적인 무력감을 안기는 엄마의 과보호를 받으며 유아적인 행동과 은밀한 욕망의 경계를 탁월하게 오간다. 무섭고 불안하고 끔찍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의존적인 두 사람의 관계는 올해 TV 속 가장 인상적인 모녀로 남을 것이다.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What We Do in the Shadows)

이미지: FX

타이카 와이티티와 저메인 클레멘트의 공동 연출작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가 10부작 드라마로 나왔다. 스탠튼 아일랜드에서 100년 넘게 살아온 네 뱀파이어와 순진한 사역마의 일상을 따라다니며 죽지 않는 삶을 탐색한다. 게으르고 낙관적인 성향의 뱀파이어들은 인간 세계를 정복하는 임무에 적극적인 대신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 인간 사회에 기생하며 살아간다. 드라마는 굵직한 사건보다는 주로 밤에 활동하는 뱀파이어들의 일상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 우스꽝스럽고 엉뚱한 유머를 끌어내고자 노력한다. 이야기의 흐름을 중요시한다면 뱀파이어들이 만들어내는 유머는 허무 개그처럼 느낄 수 있지만, 이게 드라마만의 매력이지 싶다. 틸다 스윈튼, 에반 레이첼 우드, 웨슬리 스나입스, 대니 트레조 등 깜짝 카메오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When They See Us)

이미지: 넷플릭스

가장 최근에 공개된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는 인종차별 논란을 부른 실제 사건을 극화한 드라마다. [셀마],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에서 일찌감치 사회문제를 다룬 바 있는 에바 두버네이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미국 전역을 들끓게 한 악명 높은 사건을 4부작 미니시리즈로 담아냈다. 흑인 10대 소년 다섯 명이 백인 여성을 강간 폭행한 용의자로 몰린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건이 주요 이야기다.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법의 희생양이 된 사건을 1989년 사건이 발생한 당시부터 무죄판결을 받고 뉴욕시의 보상을 받아낸 2014년까지 긴 세월을 조명한다. 뚜렷한 증거도 없이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용의자로 지목되고 백인 경찰에 둘러싸여 자백을 강요받는 모습을 보노라면 울화통이 터지기도 하지만, 편견과 차별 섞인 공권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지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Sex Education)

이미지: 넷플릭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드라마의 얼개만 보면 뻔하게 반복해온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하이틴 드라마의 단골 존재감 없는 주인공과 게이 친구, 문제아, 인기 있는 운동부가 등장하고, 성(性)을 소재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꽤 진부한 이야기가 예상된다. 하지만 그저 그런 예상을 깨고 기대 이상의 흥미롭고 진실된 이야기를 전한다. 경험은 없지만 성 지식은 풍부한 소심한 성격의 오티스를 비롯해 캐릭터 하나하나 정성 들여 다루며, 성이라는 발칙한 소재를 선정적으로 활용하기보다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로 각 인물들이 처한 문제에 접근한다. 10대들의 골치 아픈 막장 서사에 지쳤다면, 전형성에서 조금씩 벗어난 캐릭터들이 보편적인 공감대를 토대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신선한 감동과 재미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