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는 무엇을 버리고 재미를 지켰나?

날짜: 1월 13, 2020 에디터: 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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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연속 꼴찌를 했건만, 부임하자마자 감독은 유임시키고 프랜차이즈 스타 4번 타자는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그것도 부족해 병역 회피한 용병을 영입하더니 전력분석원에 단장 동생을 앉힌다. 현실 세계에 이런 단장이 응원하는 팀에 부임한다면 당장 해임 청원을 넣었을 정도다. 막장이라고 해도 너무한 운영이 아닌가? 하지만 이 모든 걸 완벽하게 진행하고 비난 여론을 잠재운다. 화제의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백승수 단장(이하 백단장)이 지금까지 보여준 ‘작전’이다.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 시즌이 종료된 후 프런트가 팀을 위해 전력을 구축하는 기간을 말한다. 야구 경기는 없지만 프런트가 발로 뛰며 전력 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만큼 분위기는 정규 시즌 못지않게 뜨겁다. 지난 12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쉽게 보지 못한 신선한 소재로 야구팬들을 브라운관에 불러 모았고, 야구팬이 아닌 시청자에게도 오피스 드라마가 가진 매력을 전하며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스토브리그]는 기존 드라마가 가진 진부한 세 가지 요소를 버렸기에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야구 용어로 설명하자면 ‘쓰리 아웃이어도 재미를 더욱 세이프’ 한다고 할까?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세 가지를 없애고, 더욱 업그레이드된 완성도를 선보인 [스토보리그]의 진가를 살펴본다.

야구에 집중…. 로맨스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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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로맨스는 드라마의 윤활유 같은 존재로 재미와 이야깃거리를 낳지만 과도한 로맨스는 극이 나아갈 방향을 잃고 스토리를 답답하게 한다.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단을 다룬 오피스 드라마답게 로맨스를 최대한 배제한다. 아예 없진 않지만 (예를 들어 운영팀원 한채희가 팀장 이세영을 마음에 두는 모습) 메인 에피소드는 아니다. 주인공 백단장은 4년 연속 꼴찌팀 ‘드림즈’를 우승시켜야 하지만 야구단을 없애려는 구단주와 대립은 번번이 발목을 잡는다. 내부 분열과 외부 견제로 힘든 그에게 연애에 한 눈 팔 시간은 없다. 주인공이 사랑에 빠져서 본업을 뒤로하는 이야기가 없으니 전개에 속도감이 붙는다. 인물들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달려가고, 기본에 충실한 오피스 드라마다운 재미를 보여준다.

묻지마 악당, 천사표 주인공 모두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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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에도 악당은 있다. 구단주 직무대행 권경민은 백단장을 채용하지만 교묘한 함정을 만들어 궁지에 몰아넣는다. 스카우트 팀장 고세혁은 비리로 해고당하자 앙심을 품고 에이전트로 돌아와 드림즈의 연봉 협상을 방해한다. 하지만 이들은 질투와 시기심으로 사건을 벌이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스토브리그]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가 자신이 달성해야 할 목표를 향해 계획을 짜고 시행한다. 캐릭터는 미워도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 백단장은 이들이 만든 불합리한 계획을 합리적으로 뒤집어야 한다.

바꾸어 말해 백단장 역시 정에 약한 천사표 주인공은 아니다. 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4번 타자를 트레이드하고, 수뇌부가 요구한 30% 연봉 삭감에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일단 그대로 진행한다. 8화가 끝나고야 백단장이 그린 큰 그림을 알게 되지만 드림즈 선수 입장에서 보면 남궁민이 오히려 악당처럼 보인다. 구단과 선수를 먼저 생각하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려는 이세영 운영팀장과 달리, 백단장은 오히려 “나는 휴머니스트랑 일하지 않는다”라며 핀잔을 준다. 다른 드라마였다면 이세영 운영팀장이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스토브리그]는 선과 악을 구분하기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캐릭터가 빚어내는 갈등 과정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이끌어낸다. 백단장을 방해하는 인물도 확고한 목표가 있기에 치밀한 계획을 짜서 위기를 고조시키고, 백단장 역시 승리를 위해서라면 비난을 감수하고도 냉정한 판단을 내려 시원한 반격을 준비한다. 야구만큼 박진감 넘치는 이들의 대결에 [스토브리그]는 사멸하는 캐릭터 없이 마지막까지 예측하기 힘든 스토리를 펼친다.

스포츠 드라마의 흔한 레퍼토리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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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94년 [마지막 승부]를 제외하면 인상적인 작품이 드물다. 오죽하면 “스포츠 드라마는 잘 안 된다”는 속설까지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스토브리그]는 방영 첫 회 5%에 불과했던 시청률이 14% (6화 전국 기준)을 기록해 3배 가까이 상승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같은 인기는 많은 요인이 있지만, 스포츠 드라마의 흔한 레퍼토리 ‘열정=성공’이 없는 것도 한몫한다.

기존 스포츠 드라마는 성적이 좋지 않은 팀에 열혈 주인공이 등장하고, 어렵고 힘들지만 열정과 노력으로 이겨낸다. 눈물 나는 이야기는 감동적이어도 어딘가 상투적이고 해당 스포츠와 관련된 전문성이 보이지 않는다. [스토브리그]의 백단장이 그랬다면 야구팬들은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토브리그]는 마음은 뜨거울지 몰라도 이성은 차가워지기를 강조한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냉정한 논리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극적 효과를 자아낸다. 1-2화에서 팀의 4번 타자를 트레이드할 때 자료의 맹점을 파고들어 트레이드의 정당성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5-6화에서 길창주를 용병으로 영입할 때도 “재기할 수 있다”는 격언보다 지금 처한 처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상대방의 절실한 마음을 이용해 계약한다. 대책 없는 “파이팅”이 아닌 실질적인 승리 방정식을 도입해 시청자를 납득시키는 솜씨가 대단하다.

실제 야구팬이기도 한 이신화 작가가 철저하게 조사한 프로야구 시스템과 전문 야구인들의 자문이 빚어낸 이야기는 현실감을 더한다. 스포츠 드라마의 낡은 레퍼토리를 깨부수고 야구팬과 팬이 아닌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는 설득력의 쾌감이 [스토브리그]를 더욱 뜨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