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 욕망과 쾌감이 이끄는 변주곡

날짜: 3월 21, 2020 에디터: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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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에 연루된 정치인을 무죄로 이끌고 시민들의 분노를 보면서 승리를 자축하는 거만한 엘리트 변호사. 오프닝부터 예사롭지 않다. [하이에나]는 제목처럼 다른 맹수의 사냥감을 훔치고 썩은 고기를 먹어치워 청소동물이라 불리는 포식자, 하이에나의 습성을 닮은 변호사 세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자존감과 자만으로 똘똘 뭉친 법조계의 금수저 변호사 윤희재와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계형 변호사 정금자가 상위 1% 고객들을 대리하는 기막힌 세상으로 인도한다.

[하이에나]는 초반부터 후안무치 부유층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세계를 강하게 밀어붙인다. 도덕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윤희재는 법과 그 자신의 능력으로 대한민국의 1%를 지탱한다고 굳건하게 믿고, 정금자는 잡초처럼 자라 빈손으로 시작한 인생의 생존전략으로 가진 자들의 대리인이 되고자 한다. 권력은 윤희재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전부이며, 정금자에게는 성공의 지름길이다.

이슘홀딩스 하찬호 대표의 이혼 소송을 둘러싸고 정금자가 윤희재에게 정체를 속이고 접근해 승소를 꿰찼을 때 반전의 쾌감이 낮은 건 그 때문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 상대 변호사의 마음을 사로잡아 실컷 이용한 뒤 뒤통수를 친다는 이야기 자체는 분명 흥미로운데, 지켜보는 마음은 복잡하게 양 갈래로 나뉜다. 누구도 쉽사리 응원할 수도 애처롭게 볼 수도 없는 당혹스러움이 씁쓸하게 밟힌다. 승패에 상관없이 두 사람이 경쟁을 벌인 상대는 돈만 많은 인성 쓰레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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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행히도 그게 [하이에나]의 전부가 아니다. 주로 사채업자, 건달 등을 변호했던 충 법률사무소의 정금자가 이슘의 승리를 계기로 대형 로펌 송&김의 새로운 파트너 변호사로 입성하면서 묘한 쾌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윤희재의 안락한 성 같은 송&김에 발을 들이면서 단단하게 영글었던 하이클래스에 균열의 조짐이 나타난다. 윤희재에게 대놓고 말 못 할 굴욕을 안긴 것도 모자라 그와 대등한 관계의 동료가 되면서 극의 흐름은 조금씩 변화하고, 이전까지 단지 돈과 성공을 쫓는 속물적인 인간으로만 보였던 정금자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는 여전히 동의하기 힘든 고객을 비호한다.

돈에 집착하는 정금자의 욕망, 솔직히 선뜻 다가서기 힘들지만 능력의 대단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집요한 욕망과 능력이 상류사회를 파고들었으니 말이다. 정금자는 가장 먼저 법조계의 엘리트라 자부했던 윤희재를 뒤흔들었다. 순정을 이용하고 뻔뻔하게 돌아섰으면서도 그와 부딪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때때로 사랑 앞에서는 돈도 신분도 무력하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 윤희재는 정금자를 만난 이후 온실 같은 세상에 금이 가고, 그에 대한 마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금자는 윤희재의 마음을 모른 척하고 늘 앞서간다. 윤희재는 그동안 주로 보호자나 왕자님 역할을 자처했던 로맨스 속 남자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기존에 보기 힘든 신선한 관계에서 쾌감은 자연스레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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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자는 오로지 실력으로 직진한다. 그 과정에서 법과 윤리의 경계를 벗어난다 해도 상대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하여 윤희재와 같은 금수저 변호사들이 위세를 떨쳤던 세계에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인정받고 들어선다. 정금자는 어떤 면에서 새로운 유형의 안티 히어로다. 낮에는 변호사, 밤에는 자경단으로 활동하는 [데어데블]의 맷 머독처럼 정의에 매달리지 않지만, 좀처럼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 세계에 아무런 가진 것도 없이 능력만으로 당당하게 입성했다는 사실은 마음이 엇갈리긴 해도 통쾌함은 부정할 수 없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도 무색해진 지금의 사회에서 말이다. 비록 그의 고객은 소수의 가진 자들이지만, 승소 후에 D&T 손진수 대표에게 기탄없이 충고했던 것처럼 정금자는 상대가 누구든 굴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성공의 욕망에 편승하되 자존감을 내리지 않는 모습, 묘하게 후련하지 않는가.

정금자는 특권층의 위선이 가득한 세상에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밀어 능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주변 동료들도 그의 방식에 서서히 동화시킨다. 정금자의 활약이 계속되어 송필중 대표의 속셈이 먹히지 않을 만큼 송&김에서 입지를 넓히고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엘리트 생태계 교란자 정금자, 이젠 멋지다고 인정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