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유발, 실제 사건에 모티브를 얻은 드라마

 

by. Jacinta

 

 

[파고]는 매번 시작할 때마다 실화를 재구성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희생자들을 존중하기 위해 가명을 썼다는 사려 깊은 문구는 어쩐지 신뢰가 간다. 하지만 친절한 안내문을 그대로 속단하면 안 된다.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하나의 장치일 뿐, 엄연한 픽션이다. 제작자들은 무엇 때문에 시청자를 상대로 깜찍한 장난(?)을 치는 걸까. 그 이유는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복잡 미묘하고도 이중적인 심리를 자극해 드라마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뻔히 아는 이야기래도 텍스트가 영상이 되는 순간, 실화 바탕 이야기는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모아봤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어떤 게 있을까.

 

 

 

1. 더 루밍 타워

 

이미지: hulu

 

9.11 테러의 기원을 쫓아가는 드라마다. 그동안 여러 영화에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나 이후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조직을 검거하는 과정을 그린데 반해, [더 루밍 타워]는 알 카에다 조직이 국제 테러조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로렌스 라이트의 논픽션 ‘문명전쟁’을 원작으로 제프 다니엘스, 타하 라힘, 알렉 볼드윈, 마이클 스털버그, 피터 사스가드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해 무게감을 더한다. 드라마의 주된 이야기는 알 카에다 조직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FBI와 CIA의 불협화음이다. 실제 테러 발생 이후 두 정보기관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테러를 막을 수 있는 시점을 놓친 사실이 드러났다.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추적하는 FBI 요원들을 중심으로 적대 관계에 놓인 두 정보기관의 갈등과 태연하게 조직을 확장하는 알 카에다의 모습을 담아낸다.

 

 

 

2.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이미지: FX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스핀오프 드라마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는 미국 현대사에 센세이션을 불러왔던 사건을 다룬다. 첫 번째 시즌은 1994년 아내와 식당 종업원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O.J. 심슨 사건을 극화했다. 사건의 당사자 O.J. 심슨을 맡은 쿠바 구딩 주니어를 비롯해 사라 폴슨, 존 트라볼타, 스털링 K. 브라운, 데이빗 쉼머 등 출연진이 가세해 사법제도의 허점과 인종차별 등 미국 사회의 모순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뛰어난 완성도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에미상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 올해 초 방영된 두 번째 시즌은 1997년 자택 앞에서 총에 맞아 숨진 지아니 베르사체 사건을 다룬다. 미국 내부의 부조리한 현실을 파고들었던 지난 시즌과 달리 연쇄살인범이 된 앤드류 커내넌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다. 지아니 베르사체의 개인사에 호기심을 가졌다면 살짝 실망감이 들 수 있지만, 대런 크리스의 소름 끼치는 소시오패스 연기로 완성된 한 청년의 서늘한 행적은 호기심을 불러오기 충분하다. 에드가 라미레즈, 페넬로페 크루즈, 미키 루크가 지아니 베르사체와 주변 인물을 맡아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시즌 3은 2005년 9월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다루며, 아네트 베닝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3. 맨헌트: 유나바머

 

이미지: 디스커버리 채널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악명을 떨친 폭탄 테러범을 추적하는 FBI 요원의 이야기다. 사건의 주인공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무려 17년 동안 폭탄이 든 우편물을 보내 3명을 살해하고 2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오랜 기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95년에는 ‘산업사회와 미래’라는 장문의 선언문을 보내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드라마는 카진스키를 체포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FBI 프로파일러 제임스 피츠제럴드를 따라간다. 그 역시 실제 인물이며, 드라마는 픽션을 가미해 검거 과정을 재구성했다. 샘 워싱턴이 FBI 요원 피츠를, 폴 베타니가 어두운 과거를 겪으며 비뚤어진 테러범이 된 카진스키를 연기한다. 프로파일링 개념이 미약했던 시절이라는 시간 배경은 극을 흥미롭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지금이야 수사 과정의 당연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지만, 증거 위주의 수사 방식을 따르던 시절 물질 증거를 내세울 수 없는 프로파일링은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발한다.

 

 

 

4. 글로우

 

이미지: 넷플릭스

 

80년대 반짝 인기를 끌었던 여성 레슬링 TV 쇼 ‘GLOW’를 그린 드라마다. 2012년 다큐멘터리 [레슬링쇼의 화려한 여인들]에 모티브를 얻어 픽션으로 구성했다. 당시 공개 오디션으로 선발된 여성 선수들은 힘겨운 트레이닝을 거친 후 정식 데뷔해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데 성공했으나 뜨거운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드라마는 실제 인물에 영감을 받아 사회에서 밀려난 여성들이 난생처음 레슬링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유쾌한 웃음으로 그려낸다. 저마다 자신을 바라보는 편견과 부당한 시선을 딛고 레슬링 선수로 거듭나는 자아실현 스토리는 짜릿한 쾌감도 함께 전한다. 올해 두 번째 시즌이 공개될 예정이다.

 

 

 

5. 나르코스

 

이미지: 나르코스

 

마약조직 카르텔과 이를 소탕하려는 미국 DEA 요원의 이야기다. 시즌 3까지 방영됐으며 콜롬비아 카르텔의 붕괴 과정을 묘사한다. 시즌 1~2는 마약왕으로 악명을 떨쳤던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메데인 카르텔의 흥망성쇠를, 시즌 3은 그 자리를 물려받은 칼리 카르텔의 몰락을 다룬다. 실제 인물들의 행적과 허구의 이야기가 뒤섞인 드라마틱한 전개로 몰입을 높인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로 분한 와그너 모라는 높은 싱크로율은 물론 무자비한 탐욕과 비참한 말로를 탁월한 연기로 선보이며 드라마의 인기를 주도했다. 실제 인물의 행적에 따라 전개되다 보니 와그너 모라와 보이드 홀브룩은 시즌 2를 끝으로 하차했으며, 시즌 3에서 칼리 카르텔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던 페드로 파스칼도 물러난다. 네 번째 시즌은 마이클 페냐와 디에고 루나가 합류해 멕시코 카르텔을 다룰 예정이다.

 

 

 

6. 더 크라운

 

이미지: 넷플릭스

 

현존하는 최고령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다. 두 번째 시즌까지 공개됐으며, 2차 세계대전 직후 갑작스럽게 왕위를 물려받은 여왕과 숨은 뒷이야기를 담아낸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국왕의 자리에 올라 혼란스러운 정세를 이끌어야 하는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 정치권의 권모술수를 묵직하게 조명한다. 영국 현대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을 다루는 만큼 드라마의 무게감도 상당하다.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품격 있게 다루는 탄탄한 각본, 벅찬 현실을 마주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신념으로 맞서는 클레어 포이의 섬세한 감정 연기, 고풍스러운 왕실과 시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한 프로덕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드라마의 깊이를 더한다. 시즌 3은 중년이 된 여왕의 인생으로 시점을 옮겨 클레어 포이와 맷 스미스, 바네사 커비 대신 올리비아 콜먼과 헬레나 본햄 카터, 토비어스 멘지스가 왕실을 이끌 예정이다.

 

 

 

7. 아쿠아리우스

 

이미지: NBC

 

2017년 11월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이 옥중에서 삶을 마감했다.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로 꼽히는 그는 히피 문화를 교묘히 이용해 영적 멘토로 군림하며 각종 범죄를 교사했다. 찰스 맨슨과 맨슨 패밀리는 엽기적인 범죄 행각으로 악명을 떨쳤는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집을 습격해 벌인 끔찍한 살인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들의 범죄는 대중문화에도 깊이 영향을 미쳤다. [아쿠아리우스]는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형사로 분해 히피 문화를 파고든 찰스 맨슨을 추적하는 수사 드라마다. 196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허구의 인물과 실제 범죄자들이 뒤섞여 맨슨 패밀리 형성 과정과 범죄를 묘사한다. 시즌 1은 지인의 부탁을 받아 언더커버 형사와 함께 실종된 젊은 여성을 추적하는 과정을, 시즌 2는 맨슨 패밀리의 범죄 행각에 초점을 맞춰 전개된다.

 

 

 

8. 더 테러

 

이미지: AMC

 

1845년 영국 정부는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함선 두 척을 북극으로 출항시켰다. 유명한 탐험가 출신의 존 프랭클린 제독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항로 개척에 나선 함선을 이끄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당시 최신 기술력이 응집된 설비를 갖추고 3년 치 식량을 싣고 출항했음에도 두 함선은 고국에 귀환하지 못했다. 정부는 뒤늦게 함선의 행적을 추적해 혹독한 추위와 기아, 질병을 견디지 못하고 전원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댄 시먼스는 북극해에서 실종된 미스터리 사건을 상상력을 곁들인 방대한 소설 ‘테러호의 악몽’을 완성했다. 최근 AMC에서 선보인 [더 테러]는 시먼스의 소설을 기반으로 현재도 풀리지 않고 수수께끼로 남은 실종을 추적한다. 두 번째 함선 테러호와 크로지어 함장에 초점을 맞춰, 거만한 관료들의 안일한 태도와 북극의 살인적인 날씨, 배 안팎에 불거진 여러 문제들이 겹쳐 서서히 고립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9. 피키 블라인더스

 

이미지: BBC

 

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버밍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범죄 조직을 다룬 갱스터 드라마다. 실제 ‘피키 블라인더스’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셸비 가족이 드라마의 모델이지만, 어느 정도 차용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피키 블라인더스]의 매력은 바탕이 된 실제 인물보다 배우들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스타일리시한 연출이다. 그중 가족을 이끄는 토미 셸비를 맡은 킬리언 머피는 극강의 치명적인 매력으로 현혹시킨다. 이 드라마를 달리 소개하자면, 순정 마초 킬리언 머피가 다 하는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시즌 4까지 나왔으며, 다섯 번째 시즌은 2019년 방영될 예정이다.

 

 

 

10. 베르사유

 

이미지: Canal+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건축을 두고 루이 14세와 귀족 간의 권력 투쟁을 다룬 작품이다. 루이 14세는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고, 귀족뿐 아니라 가까운 친척마저 왕권을 위협하자 파리 외곽 베르사유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드라마는 루이 13세가 아끼던 작은 사냥궁이 루이 14세를 만나 베르사유 궁전으로 개축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음모와 술수를 그린다. 루이 14세를 둘러싼 여러 사건을 통해 ‘태양왕’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절대 권력을 얻는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