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웨인스타인: 할리우드 엘리트의 두 얼굴

by. 겨울달

 

이미지: 그레엄 노튼 쇼

 

지난 5일(미국 시각), 뉴욕 타임즈는 영화 프로듀서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폭력 혐의를 보도하는 폭로 기사를 공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웨인스타인은 1990년대부터 30여 년 간 여러 여성을 성적으로 희롱했으며,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들에게 비밀을 조건으로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해 왔다. 피해자들은 20~30대의 주니어 프로듀서, 계약직 직원을 비롯해 유명 배우 애슐리 쥬드와 로즈 맥거완도 포함되어 있다. 하비 웨인스타인은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제안에 응하면 그들의 커리어 발전에 영향력을 발휘해 주겠다고 유혹했다.

하비 웨인스타인은 보도 이전부터 뉴욕 타임즈를 명예 훼손으로 소송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보도 이후 성명서를 발표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살았던 6, 70년대는 직장 내 행동에 대한 규칙이 달랐다. 그때는 그게 문화였다.’라는 글로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결국 최초 기사에는 포함되지 않은 피해자가 등장해 성추행을 증언했고, 보도된 지 사흘 만에 웨인스타인 컴퍼니 이사회는 회사 창립자인 그를 해고했다.

웨인스타인과 함께 일했던 배우와 감독 등 업계 내외의 사람들은 거물 프로듀서인 그의 행동을 비난하고 나섰다. 특히 메릴 스트립, 케이트 윈슬렛, 주디 덴치, 제니퍼 로렌스 등 웨인스타인 컴퍼니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아카데미에서 주목받았던 여배우들이 그의 행동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웨인스타인과 20년 간 친구로 지내온 조지 클루니와 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할리우드에서 자리 잡은 케빈 스미스 감독도 그를 앞장서 비난했다.

 

 

‘엘리노어 릭비: 그 남자 그 여자’ 이미지: 이수 C&E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은 이제야 공식적으로 알려졌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루머처럼 퍼져 있었다. ‘글리’ 제작자 라이언 머피는 한 인터뷰에서 여배우들과 대화 도중 웨인스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들이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제시카 차스테인 또한 영화 배급으로 웨인스타인 컴퍼니와 접촉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경고를 받았다’고 밝혔고, 자신은 반대했으나 감독의 주장에 따라 웨인스타인에게 ‘엘리노어 릭비: 그 남자 그 여자’의 배급을 맡기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하비 웨인스타인은 회사 이사회의 해고 결정 전에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할리우드의 주요 인물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을 변호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메일을 받은 이들 중 드림웍스 전 CEO인 제프리 카젠버그 등 다수는 그를 옹호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알려졌다. 한편 웨인스타인에게 정치 후원금을 받은 미국 민주당 정치인들은 그가 보낸 후원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웨인스타인과의 인연을 끊었다. 웨인스타인은 열혈 민주당 지지자로서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운동을 비롯해 민주당 내 의원들을 전폭적으로 후원해 왔다.

 

 

‘커런트 워’ 이미지: 이수 C&E

 

이번 보도를 통해 할리우드 ‘거물’ 프로듀서인 그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지난 수 십 년 간 미국 독립 영화의 중흥을 이끌며 영화 발전에 큰 공을 세웠고, 페미니즘 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기에 그 충격은 더 크다. 다만 이 일이 터진 후 할리우드 안팎에서 피해자들을 응원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은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0여 년 전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준비했던 기자 샤론 왁스먼에 따르면, 당시 보도를 막기 위해 웨인스타인 측이 총공세를 펼친 반면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결국 최종 보도 직전 기사 ‘기사의 완성도’를 문제로 게재가 취소되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던 사람들을 응원하고,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근절하자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눈의 띄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하비 웨인스타인이 떠난 웨인스타인 컴퍼니는 공동 창립자인 동생 밥 웨인스타인과 이사진들이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그러나 회사는 스캔들 보도 전부터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지 못해 고전해 왔기에 이번 일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고객 일부가 이탈하고 이사진 일부가 사임하는 등 회사 안팎으로 큰 흔들림이 감지되고 있다. ‘윈드 리버’, ‘커런트 워’ 등 웨인스타인 컴퍼니가 북미 배급을 맡은 아카데미 기대작들은 그 수상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웨인스타인 TV는 제작 프로그램에서 하비 웨인스타인의 이름을 삭제하기로 결정했고, 사태가 더 심각해질 경우 회사의 이름을 바꾸는 것까지 고려 중이라고 한다. 최대 규모의 독립 배급사로서 영화계를 리드해 왔던 한 회사의 종말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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