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전주국제영화제 결산① – 에디터W (흩어진 밤, 덴마크의 자식들 외)

날짜: 5월 12, 2019 에디터: 혜란

2019년, 인생 두 번째 전주 영화제를 다녀왔다. 처음처럼 헤매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단단히 준비했다. 여행가방을 가득 채운 짐만큼 즐겁게 보낼 자신감도 함께 들고 전주로 향했다. 5월 초 평균 기운을 웃도는 날씨가 찾아온 전주는 낮엔 따가운 햇살, 밤엔 쌀쌀한 바람으로 우리를 반겨줬다. 전국의 씨네필은 다 온 것 같은 전주 영화의 거리는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뿜는 독특한 바이브로 가득했다.

현실과 환상을 묘하게 넘나드는 2박 3일 동안 영화를 7편 볼 수 있었다. 스타워즈 특별 상영부터 실험성 가득한 국내·해외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제의 매력은 역시 복불복 아닐까.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영화도, 깔깔거리며 웃게 만든 영화도 있었지만, 보는 순간 의식이 몸을 떠나며 격하게 “헤드뱅잉”할 만큼 안 맞는 영화도 있었다. 그중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영화 세 편과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한 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흩어진 밤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을 열 살 소녀 수민의 눈을 통해 바라본 영화. 프로그램북 속 소개만으로도 흥미로웠지만,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가족 각각의 캐릭터가 뚜렷하고 가족 안에서의 위치와 역학 관계도 명확하다. 무엇보다 수민을 통해 가족 해체로 구성원 모두가 마음이 산산이 조각날 정도로 상처받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린다. 인정이 필요했던 아빠, 커리어가 필요했던 엄마는 서로 사랑했던 시간을 잊은 채 싸운다. 수민의 오빠 진호는 부모의 이혼에 나름 대처하려 하지만,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중학생이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 아픔을 각자 감당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없고 약한 수민은 소외된다. 영화는 수민이 학교를 가고, 친구와 놀고, 가족과 함께 친척 모임을 가는 일상에 파고든 붕괴의 영향과 상실감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캐스팅은 모두 좋았지만 수민 역 문승아는 단연 돋보인다. 영화가 처음이라는 문승아는 정말 본능에 따라 연기했다. 장편 영화는 처음인 김솔, 이지형 감독은 각본과 연출 모두 훌륭했으며, 특히 문승아의 연기를 끌어낸 디렉팅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흩어진 밤]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을, 문승아는 배우상을 수상했다.

덴마크의 자식들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극우 세력이 다시 고개를 드는 21세기 유럽을 그린 스릴러 영화. 덴마크 코펜하겐 중심부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 사건을 시작으로 이민자 소년 자카리아가 극단주의 세력에 포섭되어 테러리스트가 되는 전반부와, 자카리아의 체포를 주도한 이민자 출신 정부 요원 말렉이 국가의 차별과 모순에 대항할 수단으로 폭력을 선택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인간다운 삶을 찾아 이민자가 된 사람들을 다수는 “배은망덕하다”라는 말로 몰아붙이고, 국가 제도와 기관은 이들의 안전과 삶의 질을 외면한다. 국가와 국민 모두가 나서서 저지르는 차별과 배척은 ‘다수의 뜻’이라 옹호 받는 부분에선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을 향해 욕을 퍼붓고 싶을 만큼 분노한다. 결국 현실을 타개할 제도적 방법도 힘도 없는 사람들은 사적 폭력을 선택하고 힘있는 자의 도구로 전락한다.

마치 야만으로 돌아가는 듯한 극단적 폭력과 불합리, 차별을 그린 [덴마크의 자식들]은 상업영화라 할 만큼 만듦새는 세련되고 흡인력도 엄청나다. 특히 후반부 말렉의 고뇌와 변화 과정은 숨소리도 못 낼 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첫 장편 영화에서 뛰어난 실력을 선보인 울라 살림 감독의 다음 영화가 궁금해진다. [덴마크의 자식들]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놓친 분들은 5월 말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도 상영하니까 꼭 보셨으면 한다. 정식 개봉하면 더 좋다.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바람] 이성한 감독의 신작으로, 일본 교사 미즈타니 오사무의 책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가 원작이다. 고등학교 교사 민재는 저마다 가정 형편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지만, 어른과 공권력을 믿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의 도움을 매번 거부한다. 민재는 오래 전 자신이 외면해 한 아이를 죽게 만들었단 죄책감으로 살아가며, 다시는 아이들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로 끊임없이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영화는 학교 폭력에 신음하고, 가정 내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며, 범죄의 피해자로도 가해자로도 노출된 아이들과, 그들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길에 접어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선생님의 삶을 그린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암울하지만, 그럼에도 크레디트가 올라갈 땐 위로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영화를 채우기 때문이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마음 속으로 눈물이 흐르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평온을 찾아가는 걸 보면 저들의 미래도 빛날 것이란 희망을 엿본다. “너희의 잘못이 아니야. 어른이 미안해. 너희를 보호하지 못해서 미안해.”

특별 언급.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이미지: 20세기폭스코리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스타워즈 특별전’을 한다는 소식에 만세를 불렀다. 한국에서는 정말 ‘마니아’ 콘텐츠인 [스타워즈]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 때문. 다른 영화 때문에 결국 8편 중 유일하게 못 본 [시스의 복수]만 보게 됐다. 3편은 프리퀄 시리즈의 악명을 어느 정도 상쇄할 만큼 재미있다. 아나킨이 다스 베이더가 되는 과정과 비극으로 끝난 아나킨과 파드메의 사랑은 알고 봐도 재미있고 안타까웠다. (영화와 별개로, 20세기 폭스 팡파레 음악에 루카스필름 로고를 보는 것도 낯설면서도 신났다. 돌고 돌아 다시 한 회사가 된 걸 보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도 든다.)

물론 몇몇 대사에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1, 2편과 달리 한없이 수동적인 파드메는 “나탈리 포트먼한테 왜 그래요?”라고 따지고 싶을 만큼 엉망이다. 과한 CG가 스타워즈의 감성과 안 맞는다는 비판에도 수긍했다. 그렇지만 [스타워즈]는 역사와 영향력을 고려하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콘텐츠며, 재미와 매력이 가득하다. 올해 말 개봉할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지금까지 모든 스카이워커 사가를 정리하는 최종판이다. [시스의 복수]에서 다스 베이더의 탄생을 보게 되니, 9편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