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발랄, 넘치는 센스, 추억의 한국 코미디 영화

 

재기발랄, 넘치는 센스,

추억의 한국 코미디 영화

 

by. Jacinta

 

코미디로만 단정 짓기에 아쉬운 영화들이 있다. 기발하고 독특한 소재, 평범함을 거부하는 캐릭터, 거침없는 대사와 행동, 거기에 부조리한 현실을 씁쓸하게 비꼬는 연출까지. 전형적인 코미디 영화의 관습을 거부하며 색다른 웃음으로 한국 코미디 영화에 의미 있는 행보를 남겼던 영화를 소개한다.

 

 

1. 조용한 가족, 1998

 

<출처: 명필름>

 

<아담스 패밀리>가 떠오르는 코믹 잔혹극이다. IMF 시절, 산장 개업으로 들뜬 가족에게 연속해서 자살 투숙객이 찾아오고, 이를 조용히 해결하려던 가족이 결국 살인까지 하는 과정을 무뚝뚝한 코미디로 담아냈다. 박인환, 나문희, 최민식, 송강호, 이윤성, 고호경이 난처한 상황에 몰리는 가족으로 나온다. 김지운 감독의 첫 연출작인 <조용한 가족>은 천만 배우 송강호와의 첫 만남이기도 하다. 지난해 <밀정>으로 김지운 감독과 네 번째 호흡을 맞춘 송강호는 한 인터뷰에서 <조용한 가족>을 가장 매력적인 작품으로 꼽기도 했다. 철없는 백수를 맡았던 송강호는 ‘저 학생 아닌데요’라는 명대사를 남기기도. 개봉 당시 서울 누적 관객수 34만 명을 동원했다.

 

 

2. 주유소 습격사건, 1999

 

<이미지: 시네마서비스>

 

‘난 한 놈만 패!’, ‘전부 대가리 박아’ 등 여러 유행어를 탄생시킨 영화.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여러 편의 코미디 영화를 히트시킨 김상진 감독의 흥행작 중 하나다. 이성재(노마크 역), 유오성(무대포 역), 강성진(딴따라 역), 유지태(페인트 역) 네 사람이 특별한 이유 없이 주유소를 습격해서 벌어지는 한밤의 소동극이다. 단순한 스토리에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주옥같은 대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주유소 사장 역을 맡은 박영규는 특유의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제2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전국 2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코미디 영화의 레전드로 남았다. 이후 속편이 나왔으나 처음만큼의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3. 플란다스의 개, 2000

 

<이미지: 시네마서비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봉준호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는 강아지 실종사건을 그린 영화로 배두나와 이성재가 주연을 맡았다. 개소리에 민감한 시간강사와 용감한 시민상을 꿈꾸는 관리사무소 직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통해 현대인의 도덕 불감증과 위선,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담아냈다.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감독으로서 재능을 확인한 작품이다. 웃음의 강도는 약하지만 만화 같은 캐릭터의 배두나와 씁쓸하면서도 따뜻한 정서가 느껴지는 영화다.

 

 

4. 킬러들의 수다, 2001

 

<이미지: 필름잇수다>

 

지금은 다소 힘이 빠진 모습이지만 한때 특유의 기발한 위트와 언어유희로 인정받은 장진 감독의 영화. 네 명의 전문 킬러가 위태로운 살인 청부를 받으면서 겪는 사건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은 세상’, ‘킬러들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원빈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킬러와 의뢰인, 그들을 쫓는 경찰들의 이야기 속에서 각박한 현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담아냈다. 지금 봐도 예사롭지 않은 캐스팅 덕분인지 전국 223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5. 지구를 지켜라, 2003

 

<이미지: 싸이더스>

 

잘못된 홍보로 처참하게 망했지만 기발한 소재와 상상력만큼은 걸작으로 평가받는 장준환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강한 B급 정서의 컬트 코미디가 녹아들었으며 한국영화 최초로 외계인을 소재로 삼았다. 외계인의 침공으로 지구가 위기에 처할 거라는 망상에 빠진 주인공이 외계인이라고 믿는 비정한 기업가를 납치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고문하며 대립하는 이야기다. 지금 봐도 창의적인 설정과 장르적 성격으로 영화 팬들은 제2의 <지구를 지켜라> 같은 영화를 기대하지만, 현재까지 그만큼의 충격을 주는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6. 시실리 2km, 2004

 

<이미지: 쇼박스>

 

한국 영화계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인 척박한 B급 코미디의 길을 가고 있는 신정원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극과 극의 장르, 공포와 코미디가 만난 영화로 번뜩이는 대사와 아이러니한 상황이 웃음을 주는 영화다. 다이아몬드를 훔치고 조직을 배신한 석태가 한 시골 마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코믹 연기의 달인 임창정과 권오중이 출연했다. 여러 장르가 뒤섞여 과잉과 산만함이 넘치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도의 유머로 전국 198만의 성적을 얻었다. 또한 장르적 실험을 넘어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과 이중성을 비판하는 시선을 담아내기도 했다.

 

 

7. 그때 그사람들, 2004

 

<이미지: MK픽처스>

 

<그때 그사람들>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10. 26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다. 개봉 당시 명예훼손을 이유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있었는데, 법원이 이를 인정하고 일부 장면의 삭제를 결정해 창작 표현의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감한 정치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담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로 정치권력의 핵심부가 아닌 주변부의 이야기다. 가담 여부를 떠나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 주변부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백윤식, 한석규, 송재호, 김윤아가 출연하고 윤여정이 내레이션을 맡았으며, 권력층을 비꼬는 임상수 감독의 블랙 유머가 돋보인다. 다만 아쉽게도 흥행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8.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8

 

<이미지: 쇼박스>

 

류승완 감독이 2000년 만든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발전시킨 영화다. <다찌마와 리>는 의도적인 복고풍 설정이 눈길을 끈다. 잔뜩 오글거리는 문어체 대사, 과장된 행동, 후시 녹음 등 대놓고 B급 정서를 표방한다. 6~70년대 인기 있었던 액션 활극을 오마주한 영화로 B급 정서와 A급 첩보 액션이 만났다. 2000년 서울 시내를 주름잡았던 협객 다찌마와 리는 2008년에는 임시정부 최고의 스파이가 되어 조국을 위해 나선다. 지금까지도 다찌마와 리의 이미지가 남아있는 임원희를 필두로 공효진, 박시연이 미모의 스파이로 출연했다. 작정하고 뻔뻔하게 밀어붙이며 장르적 쾌감을 안기는 영화다.

 

 

9. 미쓰 홍당무, 2008

 

<이미지: 빅하우스(주)벤티지홀딩스>

 

촌티 나는 패션, 부스스한 머리, 신경질적인 말투의 ‘양미숙’은 공효진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었을까. <미쓰 홍당무>는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을 앓은 주인공이 오랫동안 짝사랑한 남자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과정을 과감한 대사로 코믹하게 묘사한 영화다. 이경미 감독은 첫 연출작부터 기발한 상상력이 탄생한 역대급 캐릭터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현대사회에서 소외받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류 영화의 관습에서 벗어난 <미쓰 홍당무>로 주목받은 이경미 감독은 이후 8년 만에 독특한 스릴러 <비밀은 없다>로 자신만의 영화 색을 드러냈다.

 

 

10. 남자사용설명서, 2012

 

<이미지: 쇼박스>

 

이제는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통통 튀는 B급 정서로 웃음을 주는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오프닝부터 만화 같은 발랄한 구성으로 시선을 사로잡더니 시종일관 깨알 같은 웃음이 흐른다. 우유부단한 성격의 국민 흔녀 최보나가 우연히 인생을 바꿔준다는 ‘남자사용설명서’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 뒤 변화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담은 영화다. 허세 가득한 한류 톱스타 매력을 뽐내는 오정세의 미친 존재감,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연애 비법을 전수하는 Dr. 스왈스키 역의 박영규, 그리고 이 두 남자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이끌어내는 이시영이 오버스럽지 않은 조화를 이룬다. 다만 아쉽게도 <7번방의 선물>, <베를린>, <신세계>의 상영 및 개봉 시기와 맞물려 폭발적인 반응을 얻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