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도 갈 수 없는 영화 속 이색적인 도시들

영화를 보면 가상의 공간이 매력적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를 한껏 드러낸다 해도 미지의 영역이라는 사실만으로 상당히 매혹적이다. 또 어떤 때는 독특하고 재치 있는 상상력에 허를 찔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영화 속 유난히도 색다른 인상을 남겼던 가상의 도시 혹은 세계는 어디였을까?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이미지: ㈜해리슨앤컴퍼니

1982년 [블레이드 러너]가 상상한 2019년의 로스앤젤레스는 불안과 혼돈을 딛고 있다. 핵전쟁 이후 삶의 터전이 파괴되자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고, 거대 기업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우주 식민지 건설을 위한 노동력으로 이용한다. 도심을 빼곡하게 채운 거대한 고층 빌딩은 축축하게 내리는 비와 스모그 사이로 화려한 네온사인을 비추며 현혹하지만, 지상으로 내려가면 어둡고 지저분한 거리에는 혼란과 무질서가 팽배하다. 영화처럼 공중에서 빌딩숲을 가로지르는 자동차는 없지만, 부재와 상실, 파괴가 만들어낸 음울한 도시 풍경은 낯설지 않다.

블랙 팬서(Black Panther)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프리카의 숨겨진 가상의 나라 와칸다는 최빈국이라 알려진 것과 달리 막대한 부를 축적한 왕국이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최강의 희귀 금속 비브라늄을 보유한 덕택에 일찌감치 다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고, 단 한 번도 강대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와칸다를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에 비유한 율리시스의 말처럼 그 자체로 신비롭고 매혹적인 곳이다. 멀리서 바라본 풍경은 아찔할 정도로 멋지다. 기술문명이 응집된 초고층 빌딩과 비행선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지상으로 내려가면 전통과 자연이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와칸다의 비밀이 오래도록 유지되길.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필립 K. 딕이 바라본 미래 도시는 차갑고 음울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2054년 워싱턴 D.C.는 사전에 범죄를 예측하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도입해 사람들의 삶을 통제한다. 효율적인 교통수단과 개인화된 디지털 서비스가 근사해 보여도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예지자의 예언에 따라 개인의 삶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누구보다 시스템을 신봉했던 존 앤더튼은 함정에 빠져 도망자 신세가 되고 나서야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그의 믿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이미지: ㈜해리슨앤컴퍼니

지금이야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흔해졌지만, 1998년 [트루먼 쇼]가 나올 당시만 해도 ‘트루먼 쇼 망상’이라는 신드롬이 생길 만큼 큰 충격을 안겼다. 지금껏 살아온 모든 삶이 24시간 생중계된다는 사실을 혼자만 몰랐던 우리의 주인공 트루먼은 거대한 돔으로 둘러싸인 가상의 도시 헤이븐에서 태아 때부터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성인이 되기까지 30년을 살아왔다. 그러니 수천 대의 카메라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날씨까지 조작하는 그곳에서 마침내 진실을 마주했을 때 느꼈을 공포와 배신감이 어떠했겠는가. 겉보기엔 살기 좋은 도시 같아 보이지만, 조작된 삶을 유도하는 무서운 비밀을 숨긴 섬뜩한 도시다.

모털 엔진(Mortal Engines)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60분 전쟁으로 문명이 파괴된 미래, 인류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개발했다. 광물 자원과 석유, 식량, 그리고 인간의 노동력을 잠식할 수 있도록 런던을 고쳐 거대한 견인 도시로 만들어낸 것이다. 7개의 계급으로 나뉜 거대도시 런던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하고, 저항세력은 그로부터 세상을 지키려 한다. 하늘 높이 떠다니는 숨겨진 공중도시 에어 헤이븐은 런던의 견인주의에 반대하며, 땅에 정착해 살고자 하는 비행사들의 공간이다. 작은 도시들을 추격하고 사냥하는 거대도시는 움직인다는 설정만 빼면 지금의 사회와 멀지 않다.

설국열차(Snowpiercer)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다시 빙하기가 닥친 지구. 매서운 한파에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고,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은 17년째 설원을 끝없이 달리는 기차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기차는 좁고 길게 펼쳐진 계급사회다. 맨 뒤쪽 꼬리칸에는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비좁은 그곳에서 오로지 생존을 목표로 하고, 값비싼 티켓으로 탑승한 앞쪽칸 사람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흥청망청 즐긴다. 이에 젊은 지도자 커티스는 꼬리칸을 해방시키기 위해 절대 권력자 윌포드가 있는 맨 앞쪽 엔진칸을 향해 폭동을 일으킨다. 기차의 맨 끝 감옥칸부터 열악한 꼬리칸, 유흥의 공간 식물칸, 윌포드를 찬양하는 교실칸, 그리고 엔진칸까지, 세기말적 상상력이 ‘설국열차’라는 인류의 마지막 생존 지역을 탄생시켰다.

매트릭스(The Matrix)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트루먼도,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 거짓된 삶에 둘러싸여 있다면, 그 세계는 얼마나 슬프고 암울할까. 릴리 워쇼스키와 라나 워쇼스키 감독이 본 2199년의 미래가 바로 그러하다. 인류는 태어난 순간부터 철저하게 인공지능 로봇에게 통제되고, 오직 AI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트릭스라는 1999년 가상의 현실에 갇혀 있는 동안, 꿈에서 깨어난 극소수의 반란군이 매트릭스 밖에서 인공지능에 맞서 인류를 구하고자 한다. 평범한 회사원과 해커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네오는 트리니티와 모피어스를 알게 된 후 그가 살아가는 세계가 인간의 기억마저 AI에 의해 입력되고 삭제되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운사이징(Downsizing)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레저랜드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실현시키는 파라다이스다. 1억 원의 재산이 120억 원의 가치가 되어 왕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이곳에 살려면 그동안의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몸을 파격적인 크기로 줄여야 한다. 더 이상 나아질 게 없이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던 주인공 폴은 177.2cm 키를 12.7cm으로 줄이는 다운사이징 기술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로 한다. 호화로운 대저택을 6천3백만 원에 살 수 있고, 2인 가족의 두 달 생활비가 고작 8만 원인 레저랜드에서 말이다. 하지만 인구과잉에 대한 해결책으로 개발된 인간 축소 프로젝트 다운사이징이 모두에게 새 삶을 찾아주지 않는다. 레저랜드 벽 뒤편에는 원치 않는 다운사이징을 당하고 세계로부터 거부당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빈민촌이 있다.

신과함께-죄와 벌(Along With the Gods: The Two Worlds)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소방관 자홍은 화재 현장에서 어린아이를 구하고 의로운 죽음을 맞는다. 그의 앞에 나타난 저승차사 강림, 해원맥, 덕춘은 사후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하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며 변호를 자처하는데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까지 7개의 지옥은 무시무시하게 살벌하다. 자칫 발을 잘못 헛디디면 뜨거운 불구덩이로 떨어질 것 같은 살인지옥 , 돌기둥에 깔리지 않기 위해 끝없이 달려야 하는 나태지옥, 거짓말을 하면 혀가 뽑히는 거짓지옥, 극한의 추위로 벌하는 불의지옥, 거울에 가두어 망자를 깨뜨리는 배신지옥, 살아생전 폭력을 재현한 돌무더기를 온몸으로 맞는 폭력지옥, 그리고 모래 위에 부모에게 저지른 불효가 나타나고 망자를 매장시키는 천륜지옥. 아무도 본 적 없는 세계가 자홍 앞에 펼쳐진다.

주먹왕 랄프(Wreck-It Ralph)

이미지: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불 꺼진 오락실 게임기 세상은 사람들은 모르는 총천연색 비밀을 갖고 있다. 미국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처럼 오락실 안의 모든 게임이 연결되는 게임 센트럴에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켄과 류가 퇴근길에 맥주를 마시고, 춘리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거리를 누비며, 오래전 퇴출된 게임 ‘큐버트’의 주역들은 광장을 떠돈다. 모든 게 네모난 8비트 게임 ‘다고쳐 펠릭스’의 주먹왕 랄프에게는 억울한 사연이 있다. 맡은 바 소임을 다했을 뿐인데, 게임 세계 동료들은 그를 악당이라는 이유로 냉대한다. 결국 랄프는 모두에게 인정받기 위해 30년째 성실히 몸담았던 게임을 이탈해 99층짜리 거대한 탑이 세워진 슈팅게임 ‘히어로즈 듀티’를 거쳐 초콜릿과 사탕, 과자로 이루어진 레이싱 게임 ‘슈가 러시’에 불시착한다.

아키라(Akira)

이미지: (주)삼지애니메이션

[아키라]는 [블레이드 러너]처럼 2019년의 미래 도시를 음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제3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가 붕괴되면서 그곳에 새롭게 건설된 도시 ‘네오도쿄’가 들어서지만, 혼란의 여파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제3차 세계대전으로부터 31년 후 네오도쿄는 첨단기술이 발전한 도시로 번영했음에도 도심 곳곳에는 반정부군과 군대의 총격전이 빈번하며 무정부적인 혼돈이 가득하다. 그뿐인가, 비밀리에 건설된 연구소는 초자연적인 힘을 육성하기 위해 어린 10대들을 실험체로 억압한다. 도심 외곽의 폐쇄된 도로를 질주하던 폭주족들 뒤로 웅장하게 들어선 고층빌딩 숲이 마냥 화려하고 멋있게만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