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Moonlight)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을 담은 성장담

날짜: 2월 20, 2017 에디터: Jacinta

 

문라이트(Moonlight)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을 담은 성장담

 

by. jacinta

 

<이미지: 오드>

 

Little

몇 번을 쓰고 지우길 반복하는 밤의 일기처럼 무겁게 억누르는 감정을 터뜨리기엔 두렵기만 하다. 드러낸다는 것은 두렵다. 어디로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모른다. 막상 감정을 꺼내놓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도 그럴 대상도 없다. 때문에 설익은 감정은 쌓이고 쌓여, 점차 작지만 단단한 돌이 되어 견고함을 더해간다. 일찍부터 그를 향한 거친 시선에 둘러싸인 샤이론은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벽을 쌓아두는 법을 택했다. 모질기만 한 하루하루는 아직 어리고 세상 이치를 다 알 수 없는 샤이론에게 감당하기 벅찼고, 때문에 밖으로 분출되지 못한 감정은 단단한 응어리로 가슴 깊이 박힌다.

 

<이미지: 오드>

 

문라이트 (Moonlight)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는 쉽게 형언할 수 없는 영화이다. ‘리틀’과 ‘블랙’으로 불렸던 샤이론이란 흑인 청년이 겪은 고독과 슬픔으로 채워진 성장담이자 한편으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을 말한다. 시작부터 혼란스러운 카메라 앵글로 시작하는 영화는 잔인한 세상에서 불안정한 모습으로 요동치는 어린 샤이론의 시선을 닮았다. 외롭다, 슬프다는 1차원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 순간 고단함을 감내해야 했던 샤이론의 상처투성이 세계는 예민하게 울리기도 하고 담담한 선율로 채워지기도 한다. 어떤 극적인 사건 없이도 누구보다 고단했던 샤이론의 이야기는 푸르른 달빛처럼 서서히 스며든다. 배리 젠킨스 감독은 차분한 어조와 대비되는 강렬함과 섬세함을 담은 영상과 음악으로 한 청년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아픔을 전한다.

 

<이미지: 오드>

 

샤이론

스스로 단단하게 쌓아올린 감정의 벽을 허무는 것은 쉽지 않다. 10대가 된 샤이론은 여전히 따돌림을 당하지만, 또래 세계에 편입하고 싶은 마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일찍부터 찾아온 슬픔으로 꽉 막힌 마음은 어떻게 열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의 응어리진 마음은 오직 외부의 충격에만 견딜 수 있을 뿐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샤이론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참아내고, 억누르는 것 외에 선택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이미지: 오드>

 

가족

집은 유독 샤이론에게 절망감을 안겨준 곳이다. 샤이론을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엄마. 약을 하기 위해 어린 아들을 내쫓고 약을 하기 위해 10대 아들에게 돈을 갈구한다. 비록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 없지만 엄마란 존재는 지울 수 없는 존재이다. 뒤늦게서야 지난날의 시간을 후회하는 엄마 앞에서 아들은 참아왔던 눈물로 답한다.
우연히 알게 됐지만 그의 인생 한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후안과 테레사. 샤이론에게 인생에서 나아가는 법을 알려준 후안과 아낌없이 베푼 테레사는 또 다른 가족이기도 하다. 비록 후안은 샤이론의 엄마를 병들게 한 마약상이었지만, 그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했던 아버지의 자리를 실감하게 해줬고, 테레사는 늘 채워지지 않던 엄마의 자리를 대신 채워줬다.

 

<이미지: 오드>

 

Black

돌아보면 그때마다 달랐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어떤 때는 지금과 전혀 다른 내가 보이기도 하고, 다른 어떤 때는 지금보다 덜 ○○한 모습들이기도 하다. 돌이켜 봤을 때 달리 떠오르는 모습들은 어떤 사건이나 선택 때문이기도 하고 혹은 작은 일들이 쌓여 큰 변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응어리진 모습으로 참고 갈망하기만 하던 샤이론은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고통에 맞서기 위해 혹은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슬픔과 고독을 더 단단한 벽안에 몰아넣기 위해 커다란 변화를 택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압감이 전해지지만 한편으로는 그보다 어린 인생을 위한 짓궂은 조언도 할 수 있을 정도의 편해진 모습도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혼자라는 세상에 놓여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이미지: 오드>

 

벅찬 감정

늘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과 멸시를 받았던 샤이론에게 케빈은 항상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어린 시절엔 따돌림당하는 샤이론을 걱정하는 말을 하고 이후에는 여자친구와 경험담을 장난스럽게 건넨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뜬금없이 연락하더니 주크박스에서 나온 노래를 들으니 생각이 났다고 말한다.
어떤 구체적인 욕망을 갈망하기엔 벅찬 현실에 생각조차 못 했던 샤이론은 케빈이 무심코 건넨 얘기에 마음속에 잠재됐던 욕망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꿈꾸기도 하고 묵혀뒀던 감정을 떠올리기도 한다. 샤이론에게 항상 먼저 다가와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꺼내는 재주가 있는 케빈은 유일한 친구이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대상이었다. 미묘한 순간을 경험하고 나서도 차마 터뜨리지 못했던 감정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꺼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형태로 흘러가든 샤이론의 인생은 지금보다 유연하게 달라질 것이다. 닫혀 있기만 했던 샤이론의 세계를 어떻게든 흔들어 놓았던 케빈. 깊은 외로움과 먹먹한 슬픔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모습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