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 설레는 이 마음을 어떻게 말할까

날짜: 2월 21, 2017 에디터: 겨울달

<이미지: David Bornfriend/Plan B Entertainment/A24>

 

오래전부터 개봉을 기다린 <문라이트>.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샤이론’이라는 마이애미 빈민가 아이의 성장을 세 개의 시기로 나누는데, 1막은 9세, 2막은 17세, 그리고 3막은 약 27~28세 때를 다룬다.

영화가 끝난 후, 생각과 감정의 혼란 때문에 잠깐 동안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성장 영화이지만, 그 성장을 다루는 방식과 분위기는 내 예상과 기대를 벗어났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걸 짐작하지는 않았지만, 첫 공개부터 지금까지 평가가 좋았으니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훌륭한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정말 훌륭한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

묘했다.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기술적으로 정말 잘 만들었다는 것은 막눈으로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오스카 레이스를 쭉 따라가며 이 영화가 정말 한정된 예산에서 어렵게 찍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잘 만드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 한쪽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이미지: David Bornfriend/Plan B Entertainment/A24>

 

비극을 볼 것이라 생각했다. 이 영화의 포스터도 묘하게 슬프고, 영화를 설명하는 데 빈민가, 흑인, 동성애자, 마약 같은 단어들이 따라다녔으니까. 그리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샤이론의 일생은 비극이라고 부를 만했다. 어머니는 마약중독자이고, 자신에게 친절했던 후안 아저씨는 어머니에게 마약을 판 딜러였다. 체구도 작고 약한 샤이론은 어렸을 때부터 동성애자라고 놀림을 당했고, 동급생들은 그를 괴롭혔다.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친구는 결국 주인공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데 일조했다. 태어날 때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한 샤이론은,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나이에도 주어진 선택지 속에서 가장 ‘괜찮아 보이는’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렇지만 슬픔 말고 다른 감정도 있었다. 아주 찰나 같기도 하지만 이 아이는 행복하기도 하구나, 설렘을 느끼는구나 싶었다. ‘리틀’이 후안 아저씨에게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미소가 번지고, ‘샤이론’이 처음으로 설레는 밤을 보내고 자신을 데려다준 케빈과 악수를 하는 장면에서 내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을 그 상황 속에서, 찰나의 행복이 이 아이를 버티게 해 주는구나 싶었다.

결국, 한순간의 사고로 인생의 궤적이 틀어져 버린 샤이론은 10년 후,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친구 케빈을 10년만에 다시 만난다. 이 순간부터, 샤이론이 애틀랜타에서 마이애미까지 차를 타고 와, 케빈이 일하는 식당 앞에서 옷을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는 그 순간부터,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그 감정이 점점 커졌다. 샤이론과 케빈의 대화, 몸짓, 눈빛 모든 건 긴 시간 후에 만난 연인 같았다. (이동진 평론가의 표현에 따르면 “배우들 눈에서 꿀 떨어졌다.”)

 

<이미지: David Bornfriend/Plan B Entertainment/A24>

 

이 이야기의 정체는 3막에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영화, 놀랍게도 러브스토리다. 10년 만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샤이론은 총을 들고 애틀랜타 바닥을 돌아다니는 마약상 블랙이 아니다. 케빈의 앞에서 샤이론의 몸짓은 수줍고, 케빈을 바라보는 눈빛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의 겉모습을 꽁꽁 둘러싼 허세를 벗은, 예전의 섬세하고 상처 많은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다정하지만 그만큼 남들의 시선도 신경 썼던 케빈은 10년이 지난 지금은 현실에 발 딛고 사는 건실한 사람이 되었다. 그사이에 더 멋있어진 첫사랑을 보며, 샤이론은 더 설레었을지도 모르겠다.

샤이론의 차를 타고 케빈의 집으로 향하는 그 길. 그리고 케빈의 작은 아파트로 향하는 길에 있는 마이애미의 바다. 파란 달빛이 내리쬐는 해변과 귀를 적시는 파도 소리,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케빈. 야릇한 첫 경험을 채웠던 수많은 감각이 다시 성큼 다가왔을 때, 샤이론은 케빈에게 처음으로 용기를 내 고백한다. 그 순간 화면을 뚫고 나오는 엄청난 긴장감.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고통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리틀’의 고통, ‘샤이론’의 고통, 하다못해 멋진 차를 몰고 부하들을 거느린 ‘블랙’의 고통도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사람들을 쉽게 용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진짜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질긴 인연을 끊는 것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이론이 그 삶을 견디는 것은 소중한 인연과, 잊지 못할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제는 자신의 본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봐줄 누군가가 옆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멀고 먼 길을 돌아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용기를 다시금 얻은 샤이론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상상의 세계에만 남기고 싶기도 하다. 다만, 조금만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