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를 부활시킨 슈퍼히어로 영화의 “슈퍼히어로”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된 서사는 ‘부활’이다. 여러 가지 문제로 슈퍼히어로는 좌절하고 실패한다. 그렇게만 있다면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다시 한번 일어선다. 패배와 좌절 끝에 부활하는 히어로만큼 멋있는 장면도 없다.

이 같은 상황은 슈퍼히어로 영화에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성공으로 승승장구하기도 하지만, 시리즈 전체를 말아먹을 뻔한 실패의 작품도 있다. 실제로 많은 작품이 실패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에도 다시 부활해 시리즈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작품도 있다. 어떻게 보면 슈퍼히어로 영화의 슈퍼히어로 같은 영화들이다. 높은 완성도로 시리즈를 부활시킨 ‘슈퍼히어로급 영화’를 살펴본다.

 

 

배트맨 비긴즈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팀 버튼이 배트맨을 만든다고 했을 때 모두들 비웃었지만, <배트맨>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북미에서만 2억 5천 1백만 달러를 벌어들여 1989년 최고 흥행 영화가 되었다. 이 같은 성공에 가만히 있을 제작사가 아니다. <배트맨>은 속편을 내놓았고 연속해서 히트를 쳤다.

하지만 1997년 <배트맨과 로빈> 개봉 때는 분위기가 달랐다. 시리즈의 피곤함, 팀 버튼의 공백, 산만하고 유치한 스토리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흥행 성적 역시 북미 1억 달러를 간신히 넘기며 역대 배트맨 시리즈 최저 흥행을 기록했다. 결국 워너는 <배트맨>의 모든 프로젝트를 중지했다.

이렇게만 있기에는 <배트맨>은 아까운 프랜차이즈였다. 워너 수뇌부는 <배트맨>을 이끌 새로운 감독을 찾았고, <메멘토>와 <인썸니아>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메가폰을 넘겼다. 스튜디오는 <배트맨과 로빈>의 후속작을 만들려고 했지만, 놀란 감독은 배트맨의 기원을 다루길 원했다. 그렇게 배트맨의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배트맨 비긴즈>가 2005년에 완성됐다.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과 로빈>이 망쳤던 진지한 분위기를 부활시키고 탄탄한 드라마와 배우들의 열연, 매력 넘치는 캐릭터로 비평가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흥행 역시 북미에서 2억 6백만 달러, 월드와이드 3억 7천만 달러의 성적을 거두었다. 당시로는 팀 버튼의 <배트맨> 이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됐다.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놀란’표 <배트맨>은 속편 제작에 착수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컴백이라 생각했지만 슈퍼히어로 영화 역사상 위대한 걸작 탄생을 위한 시작이었음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2000년대 슈퍼히어로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엑스맨>. 정의찬가-능력자랑에 그쳤던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와 다르게 드라마로서의 가치도 빛났다. ‘초능력’을 지닌 아웃사이더들의 감성을 세심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1, 2편의 성공 후 2006년에 개봉한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북미에서만 2억 3천4백만 달러라는 시리즈 최고 흥행을 거뒀지만, 브라이언 싱어와 주요 스텝들이 빠져 ‘엑스멘’다운 감성은 많이 사라졌다. 전반적인 평가도 세 편 중 가장 좋지 못했다.

<엑스맨>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인기 캐릭터인 울버린, 매그니토의 솔로 무비로 만들기로 했만, 울버린을 제외하고는 실현되지 못했으며, <엑스맨-최후의 전쟁>으로 막혀버린 <엑스맨>시리즈의 확장은 고민만 더해갔다.

그런 가운데 <킥 애스>를 만들었던 매튜 본 감독을 영입해 <엑스맨>의 기원을 다루는 새로운 작품을 내놓기로 했다. 바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다. 전작에 대한 실망감과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하지 않는 <엑스맨>이라는 점에서 기대치는 낮았지만, <엑스맨> 1, 2가 가졌던 정서와 좋은 드라마로 역대급 평가를 받으며 컴백했다. 당시 <엑스맨> 시리즈 중 가장 낮은 북미 흥행 1억 4천6백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엑스맨> 프리퀄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튜 본은 다음 작품에서도 각본으로 참여해, 브라이언 싱어와 함께 <엑스맨> 시리즈의 최대 영광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탄생시켰다.

 

 

아쿠아맨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승승장구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비해 DC 유니버스의 분위기는 우울했다. 야심작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혹평을 받았고, 흥행도 스튜디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다음 해 <원더우먼>이 성공을 거두었으나 DC 유니버스의 명운이 걸린 <저스티스 리그>가 DC 유니버스에서 만든 영화 중 월드와이드 최저 흥행을 기록하며, 더 이상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컨저링> 시리즈의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을 맡은 <아쿠아맨>이 2018년 12월 21일 개봉을 앞두고 있었지만 다들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느낌이 보였다. 중국은 북미 개봉보다 앞선 12월 7일 조기 개봉을 확정 짓고, 엠바고도 일찍 풀었다. 요즘 블록버스터들이 개봉 직전까지 엠바고를 거는 추세를 봤을 때, ‘내부에서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희망을 걸게 만들었다. 개봉 후 오락 영화로서는 기대 이상, DC 유니버스에서 만든 작품 중 최고의 재미라는 입소문이 불면서 걱정은 환호로 바뀌었다. 기대작이 한꺼번에 개봉하는 연말 극장가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DC 유니버스 최초의 월드와이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국내에서도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DC 유니버스 작품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아쿠아맨>의 성공은 DC 유니버스에 의미하는 바가 깊다. 앞선 작품들이 ‘유니버스’에만 집착해 이야기와 캐릭터의 매력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면, <아쿠아맨>은 ‘유니버스’에서 분리해도 재미있는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그런 점에서 스튜디오는 ‘유니버스’는 느슨하게 하고 개별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아쿠아맨>은 향후 DC 유니버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이미지: 소니 픽쳐스

2002년 샘 레이미 감독의 연출한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 영화 최초로 북미 4억 달러 이상 대박 흥행을 기록했다. 2편 역시 1편만큼의 흥행 성적은 물론, 슈퍼히어로 영화에 손꼽히는 걸작으로 탄생되었다.

3편 역시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월드와이드 흥행으로 보면 8억 9천만 달러로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흥행 1위) 하지만 1-2편의 준수한 완성도에 비해서는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고, 소니와 갈등을 보였던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하차했다. 이후 <500일의 썸머>의 마크 웹 감독이 연출을 맡아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리부트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제작했다.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을 거뒀지만, 높아진 기대치에 스튜디오는 만족하지 못했다. 갈등은 커졌고 마크 웹 감독과 앤드류 가필드가 하차하면서 다음 시리즈 제작이 불투명해졌다.

그런 가운데 역대급 뉴스가 터졌다. <스파이더맨>을 원했던 마블 스튜디오와 황금알을 낳는 프랜차이즈를 포기할 수 없었던 소니가 손을 잡고 <스파이더맨>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마블 스튜디오는 자사의 인기 캐릭터 스파이더맨이 출연할 수 있어 세계관을 확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소니 역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접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속하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스파이더맨: 홈커밍>이다.

<더 임파서블>, <하트 오브 더 씨>의 톰 홀랜드가 스파이더맨 역에 캐스팅됐다. 피터 파커의 고교시절 이야기를 주로 다루기 위해, 배우가 커가는 만큼 배역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캐스팅이었다. 아이언맨까지 가세하며 <스파이더맨>의 부활은 성공적으로 다가왔다. 월드와이드로 8억 8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시리즈 최고 흥행을 기록한 <스파이더맨 3> 다음을 기록했다. <스파이더맨> 출연이 양사 (마블 스튜디오, 소니) 모두 가능하기에 서로의 ‘유니버스’를 키우기 위한 다양한 콜라보 떡밥은 신작이 나올 때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시리즈의 부활은 물론 대형 스튜디오의 합작 방식에도 큰 의미를 줬다. 두 번째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는 어떤 놀라운 모습이 현실화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