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엔딩으로 망할 뻔한 영화들

엔딩은 작품의 전체적인 만족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실제로 많은 감독들이 영화의 엔딩을 촬영 당일까지 고민하며, 여러 개의 장면을 찍은 뒤 마지막 편집 때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과정에서 신의 한 수급 선택으로 길이길이 기억되는 엔딩이 탄생하기도,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엔딩이 나오기도 한다. 엔딩 때문에 감독과 영화사가 마찰을 벌이는 이야기는 부지기수며, 영화사가 선택한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따로 감독판을 만들어 바꿀 때도 많다. 하마터면 잘못된 엔딩을 선택해 걸작에서 괴작이 될 뻔한 대표적인 작품을 살펴본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에이리언 Alien, 1979 – 에이리언에게 잡아 먹히는 리플리

이미지: 20th Century Fox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영화 [에이리언]은 지금은 익숙한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사투를 본격적으로 그려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공포를 선사했다.

[에이리언]은 노스트로모호에서 탈출한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구명선에 숨어든 제노모프(에이리언)를 무찌르고 편안히 잠을 청하면서 끝난다. 하지만 이와 다른 충격적이 엔딩이 있는데, 바로 리플리가 제노모프에게 살해당한다는 것이다. 리플리를 살해한 제노모프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지구에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낸다고. 이 밑도 끝도 없는 암울한 엔딩으로 끝났다면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여성 전사 리플리의 전설은 더 이상 없었을 것이다.

이티 The Extra-Terrestrial, E.T., 1982 – 너무 빨리 이티를 잊은 엘리엇

이미지: UIP코리아

외계인과 지구인 소년의 우정을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이하 이티)]는 감동적인 엔딩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지구를 떠나는 이티와 엘리엇(헨리 토마스)이 이별하는 장면은 영화 최고의 명대사 ”I’ll be right here”과 존 윌리엄스의 OST를 통해 심금을 울리는 엔딩을 탄생시켰다.

또 다른 엔딩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엘리엇이 하늘의 별을 보며 이티와 함께했던 순간을 회상하고 가족들과 보드게임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딱히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엘리엇이 이티와의 추억을 너무 빨리 잊은 듯한 분위기를 암시해 원래 엔딩이 선사하는 감동을 전하지 못할 뻔했다.

다이 하드 3 Die Hard With A Vengeance, 1995 – FBI가 된 존 맥클레인

이미지: 20th Century Fox

존 맥티어넌 감독과 브루스 윌리스가 다시 만난 [다이 하드 3]는 전작들과 달리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의 원맨쇼가 아닌 파트너 제우스(사무엘 L. 잭슨)의 활약을 예고했다. 1편의 악당 한스 그루버(앨런 릭먼)의 형 사이몬 그루버(제레미 아이언스)가 등장해 스토리도 연결된다. [다이 하드 3]는 사이몬 일당의 목적을 간파한 존 맥클레인과 제우스가 은행 강도 성공 후 축배를 들고 있는 범죄자들의 아지트를 습격하고 처단하는 것으로 끝난다.

채택되지 않은 또 다른 엔딩은 존 맥클레인이 FBI로 옮기고 사이먼을 암살한다는 거였다. 마피아 영화 같은 결말은 [다이 하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맞지 않아 선택되지 않았는데, FBI 존 맥클레인이라니 생각만 해도 내가 아는 [다이 하드]가 아닌 것 같다.

람보 First Blood, 1982 – 람보의 자살

이미지: Orion Pictures

실베스타 스탤론의 대표작 [람보]는 1편과 후속작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람보] 1편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베트남 참전 용사의 불안한 심리와 고립된 상황을 그린, 액션보다는 사회 고발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엔딩 역시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동료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트로트먼 대령(리차드 크레나)에게 고하고 경찰에 체포되면서 끝이 난다. (2편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액션 히어로 람보로 돌아온다.)

원래 엔딩은 참전 후유증을 겪는 람보의 운명을 더욱 비극적으로 그린다. 경찰과 대치 중인 람보를 설득하기 위해 트로트먼 대령이 오는 건 변함없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살한다. 해당 엔딩은 테스트 시사회 이후 평가가 좋지 못했고, 스탤론이 존 람보 캐릭터에 애착을 느껴 선택되지 않았다. 1982년 첫 작품이 나온 이후 올해까지 37년이나 이어진 장수 프랜차이즈의 운명이 끝날 뻔한 위기를 람보 스스로가 구했다.

세븐 Seven, 1995– 존 도에게 총을 쏜 다른 사람

이미지: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데이빗 핀처의 범죄 스릴러 [세븐]은 원래 엔딩도 우울한데, 다른 엔딩은 더 암울했다. 데이비드 밀스(브래드 피트)는 부인 트레이시(기네스 팰트로)를 죽인 존 도(케빈 스페이시)의 도발에 소머셋(모건 프리먼)의 만류에도 총을 쏘아 죽이는 것으로 끝난다.

또 다른 엔딩에서는 총을 쏘는 대상이 달라진다. 소머셋이 데이비드 대신 존 도에게 총을 쏘면서 “나는 은퇴하니까 괜찮네”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 같은 결말은 소머셋마저 죄를 짓게 되면서 트레이시를 잃은 데이비드의 불행을 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여담으로 [세븐]의 마지막 엔딩은 제작자와 핀처 감독의 대립이 무척 심했는데, 희망이 전혀 없는 결말이라 관객들이 불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핀처의 주장이 통과되었고, 훌륭한 범죄 영화가 탄생될 수 있었다.

타이타닉 Titanic, 1997 – 로즈 할머니, 아 안돼!

이미지: 씨네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일약 ‘흥행의 왕’으로 만들었던 [타이타닉]. 원래 엔딩은 침몰된 타이타닉에서 보물 ‘대양의 심장’을 찾던 탐사선 일행이 고령의 생존자 로즈(글로리아 스튜어트)의 이야기를 듣고 보물보다 소중한 사람의 가치를 깨닫고 철수한 뒤, 로즈가 대양의 심장을 바다에 던지며 끝난다.

또 다른 엔딩에서도 로즈는 대양의 심장을 바다에 던지는데, 탐사선 리더 브룩 로벳(빌 팩스톤)에게 들킨다는 점이 다르다. 로즈는 브룩에게 인생이 보물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뒤 대양의 심장을 던지고 브룩은 뭔가 깨달은 듯 허망하게 웃으며 끝난다.

과연 이 엔딩을 보고 로즈가 말한 교훈적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히려 보물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로즈가 물거품을 만드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이 엔딩을 선택했다면 [타이타닉]의 기록적인 흥행과 감동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터미네이터 2 Terminator 2: Judgment Day, 1991 – 상원의원이 된 존 코너

이미지: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타이타닉]과 더불어 스케일과 감동이 살아 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대표작 [터미네이터 2]. 원래 엔딩은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와 함께하면서 생명의 가치를 깨달은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가 T-1000(로버트 패트릭)를 처치한 후 스스로 용광로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다가올 미래에 희망을 가져본다는 사라 코너의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하지만 다른 엔딩에서는 이 같은 여운이 전혀 없다. 노인이 된 사라 코너는 심판의 날은 오지 않았고 존 코너는 저항군 리더가 아닌 상원의원으로 다른 전쟁을 한다고 말하며 평화롭게 끝난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해당 엔딩을 최종 선택하려고 했는데, 더 이상의 속편 없이 시리즈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달랐고, 속편을 염두했던 제작진의 바람으로 원래 엔딩으로 변경되었다.

위험한 정사 Fatal Attraction, 1987 – 알렉스의 큰 그림

이미지: Paramount Pictures

외도에 대한 섬뜩한 경고를 담은 [위험한 정사]는 에로틱 스릴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성공한 변호사 댄(마이클 더글라스)과 하룻밤을 보낸 후 그에게 집착하는 알렉스(글렌 클로즈)의 광기를 담았다. 

원래 엔딩은 댄이 아내 베스(앤 아처)를 살해하려는 알렉스를 저지하고, 베스가 쏜 총에 알렉스가 맞아 죽으면서 끝난다. 욕실에서 펼쳐지는 이 장면은 글렌 클로즈의 ‘미친’ 연기가 폭발하면서 댄과 알렉스가 싸우는 모습은 혈투라고 불릴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다른 엔딩은 다소 심심하다. 알렉스는 자살하면서 댄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만, 정황이 담긴 테이프가 발견되어 주인공이 풀려난다는 다소 맥 빠지는 결말이다. 만약 이 엔딩을 선택했다면 마지막에 펼쳐지는 글렌 클로즈의 역대급 연기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