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 ‘트리플’을 이룬 작품들

이미지: ©A.M.P.A.S.®,

이번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이 감독상과 작품상 중 하나는 받을 것이라는 예상은 많았으나, 두 개 모두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드물었다. 특히 감독상은 골든 글로브, DGA(미국감독조합상) 등 [1987]의 샘 맨데스가 독식했기에 어느 부문보다 확률이 낮았는데도 봉준호 감독이 최종 수상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래서인지 시상식 영상을 다시 보면 봉준호 감독은 작품상보다 감독상 호명에 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게다가 각본상까지 수상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아카데미에서 한 작품이 모두 수상하기가 매우 어려운 작품상-감독상-각본(각색)상에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더해서 ‘오스카 빅5’라고 부른다. 92년이라는 아카데미의 긴 역사 속에서 빅 5를 달성한 영화는 1934년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1976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992년 [양들의 침묵] 등 3편에 불과하다. 남우/여우주연상을 연기부문으로 제외한다면, 연출가이자 각본가로서 나머지 3개 부문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역량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을 축하하며 [기생충]처럼 작품상-감독상-각본(각색)상 주요 부문을 석권한 2000년대 작품들을 모아 본다. 

2000년 72회 아카데미 시상식 – ‘아메리칸 뷰티’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1917]을 연출한 샘 멘데스 감독은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로 진가를 발휘했다. 직장과 가정생활에 지친 한 중년 남성의 일탈을 그린 이야기로,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연출을 선보였다. 아카데미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해, 여우주연상만 빠진 오스카 빅 5를 달성했다. 

2002년 74회 아카데미 시상식 – ‘뷰티풀 마인드’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뷰티풀 마인드]는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인생과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존 내시를 맡은 러셀 크로우가 펼친 대단한 연기와 예상치 못한 반전이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분장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2000년 [아메리칸 뷰티], 2001년 [글래디에이터], 2002년 [뷰티풀 마인드]까지 드림웍스는 3년 연속 아카데미 작품상을 내놓은 배급사로 명성을 높였다. 

2004년 76회 아카데미 시상식 –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이미지: 디스테이션

판타지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 [반지의 제왕]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작품상-감독상-각색상 등 후보에 오른 11개 부문 전부를 석권했다. 이는 [타이타닉]과 [벤허]와 더불어 아카데미 최다 수상 기록이다. 특히 액션, SF, 판타지 등 장르 영화에 배타적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판타지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해 새로운 역사를 썼다.

2007년 79회 아카데미 시상식 – ‘디파티드’

이미지: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경의를 표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디파티드]도 리스트에 포함된다. [디파티드]는 홍콩 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 한 작품으로 경찰과 범죄조직에서 내부 첩자로 들어간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 누아르다.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감독상-각색상 그리고 편집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성난 황소],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 등을 만들었지만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던 마틴 스코세이지가 [디파티드]로 첫 감독상을 수상했다.

2008년 80회 아카데미 시상식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미지: 해리슨앤컴퍼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가 연출한 작품으로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빌런 ‘안톤 시거’의 범죄 행각을 담았다. 제목이 지닌 깊은 의미와 냉정하고 건조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아카데미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감독상-각색상 그리고 ‘안톤 시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이 남우조연상을 수상해 4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2009년 81회 아카데미 시상식 –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 백만장자 퀴즈쇼에 출연한 빈민가 출신 자말이 자신의 과거와 연계된 문제를 풀면서 인생 역전을 이뤄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작 당시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은 아니었으나, 토론토 영화제 관객상 수상 이후 입소문이 퍼지면서 각종 시상식에서 언더독의 힘을 보여주는 모습이 영화 내용과 닮았다. 마침내 아카데미 10개 부문에 올라 작품상-감독상-각색상-음악상-촬영상 등 8개 부문을 석권하며 그해 시상식의 주인공이 되었다.

2010년 82회 아카데미 시상식 – ‘허트 로커’

이미지: (주)NEW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한 마디로 ‘장미의 전쟁’이라고 불렀다. 제임스 카메론과 캐서린 비글로우는 지금은 이혼했지만 한때 부부였는데, 자신들이 만든 [아바타]와 [허트 로커]가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올라 경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허트 로커]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해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았다. 특히 캐서린 비글로우는 여성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해 아카데미 역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2011년 83회 아카데미 시상식 – ‘킹스 스피치’

이미지: (주)화앤담이엔티 Hwa&Dam Ent.

[킹스 스피치]는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영국을 배경으로 조지 6세가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만나 말 더듬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당시 [소셜 네트워크]랑 각종 시상식에서 라이벌 구도를 펼쳐 아카데미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큰 관심을 받았는데 결론적으로 아카데미는 [킹스 스피치]에 손을 들어주었다. 12개 부문에 올라 작품상-감독상-각본상과 조지 6세 역을 맡은 콜린 퍼슨이 남우주연상을 수상, 오스카 빅 5 중 여우주연상을 제외한 모든 부문을 석권했다. 

2015년 87회 아카데미 시상식 – ‘버드맨’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할리우드 톱스타였지만 지금은 한물간 리건 톰슨이 예전의 명성을 찾기 위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배트맨]의 주인공이었던 마이클 키튼이 주인공 리건 역을 맡아 묘한 데자뷰를 보여주기도 한다. [버드맨]은 아카데미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그리고 촬영상까지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다음 해 [레버런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다시 한번 감독상을 수상해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 감독상 2연패를 이뤘다. 

2020년 92회 아카데미 시상식 – ‘기생충’

이미지: ©A.M.P.A.S.®,

아직까지도 그날의 기쁨이 가시지 않는 [기생충]은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감독상-각본상 그리고 국제영화상을 거머쥐었다. [기생충]이 트로피를 받은 순서대로 세운 기록을 하나씩 살펴보면, 가장 먼저 수상한 각본상은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받은 오스카 트로피다. 국제영화상은 외국어영화상에서 이름이 바뀐 이후 첫 번째 수상작이며, 감독상은 아시아계 감독으로는 이안에 이어 두 번째이자 아시아 영화로는 처음이다. 작품상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비영어권 작품이 수상한 새 역사를 썼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4관왕을 (국제영화상은 해당 국가에 수여하는 상이지만 관례적으로 감독이 받는다.) 이룬 봉준호 감독은 무대 위로 네 번 올라갔는데, 1954년 제2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월트 디즈니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