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 취향 저격하는 한국영화

힙스터는 확실한 취향을 가지고 유행을 따르지 않는 부류를 말한다. 쉽게 말해 비주류라고 할 수 있지만, 남들과는 다른 독특하고도 확고한 스타일이 있기에 오히려 숨은 보석 같은 문화를 발견하고 선도하기도 한다. 북미에서 [기생충]이 처음 개봉할 때 단 3개 극장에서 상영했지만,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어 영화를 즐기려는 힙스터들에게 입소문이 퍼졌고,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한국영화에도 이런 힙스터들이 좋아할 작품들이 눈에 보인다. 신파와 억지 유머에 지친 관객들에게 생소하지만, 신선하고 독특한 스타일로 무장한 취향 저격 한국 영화들을 소개한다.

메기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2019년 개봉작 [메기]는 민망한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이 병원에서 발견되면서 발칵 뒤집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독립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이주영과 구교환이 연인으로 출연하며 문소리, 권해효 등 베테랑 배우들이 가세해 무게를 더한다. ‘메기’ 목소리는 천우희가 맡아 만만치 않은 입담을 보여준다. [메기]는 독특한 유머 타일과 재기 발랄한 상상력이 재미를 자아내는데, 마치 여러 편의 시트콤이 한데로 모여 큰 그림을 완성하는 얼개를 지닌다. 실컷 웃고 난 뒤 전해오는 묵직한 메시지는 작품을 곱씹어보게 한다. 

소공녀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좋아하는 위스키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을 포기할 수 없기에 집을 버린 미소가 친구들 집을 전진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았다. [족구왕], [범죄의 여왕]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광화문시네마에서 제작한 영화로, 연출을 맡은 전고은 감독은 실제로 비싼 집값 때문에 작은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해서 [소공녀]를 연출했다고 한다. 주인공 미소를 연기한 이솜은 엉뚱하면서도 순수한 캐릭터를 잘 소화해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호평을 받았다. 취향을 위해 의식주를 과감하게 버린다는 설정 뒤로, 부담스러운 생활비와 경쟁에 지친 청년 세대들에게 전하는 공감과 위로가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벌새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2019년 한국영화는 [기생충]뿐 아니라 [벌새]도 발견한 뜻깊은 한 해였다. [벌새]는 1994년을 배경으로 중학생 은희가 학교와 가정 등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일상의 순간을 그린다. 기쁨과 환희, 좌절과 실망, 아픔이 교차하는 그 시절의 공기를 꾹꾹 눌러 담아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섬세한 연출력에 감탄이 나온다. 상처 받은 은희를 위로하며 천천히 세상 밖으로 인도하는 영지 선생님의 신비로운 존재감도 인상적이다. 13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단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섬세한 스토리와 영상이 돋보인다. 특히 개인의 이야기를 시대의 비극과 연결해 상실감을 담아낸 지점은 [벌새]를 더욱 특별하게 하는 비범한 순간 중 하나다. 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에 한강을 찾아 무너진 성수대교를 바라보는 장면은 상처를 마주해야 또 다른 내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최악의 하루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늦여름 남산의 어느 날, 배우 지망생 은희가 우연한 계기로 예전 남자 친구, 현재 남자 친구, 그리고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엮이면서 하루가 완전히 꼬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시작으로 [더 테이블], [조금만 더 가까이] 등 취향 저격 연애물을 주로 만들었던 김종관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은희가 겪는 최악의 상황에 웃음을 참지 못하지만 의외로 달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이미지: 인디스토리

할리우드에 [비포] 시리즈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흑백과 컬러로 담아낸 두 편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첫 번째 파트는 일본 고조시를 촬영하려고 온 영화감독과 조감독의 이야기를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담아내고,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두 번째 파트는 한국에서 여행 온 혜정과 가이드를 자처한 유스케의 설레는 로맨스를 그린다. 두 파트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의외로 비슷한 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파트에서 감독 태훈은 새 영화 제작을 위해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데, 여기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치 두 번째 파트를 만든 듯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런 기사감이 영화 내내 재구성되어 뜻밖의 재미를 자아낸다. 조용한 여름휴가를 온 듯한 평온함 속에 섬세하게 그려내는 감정 묘사는 제목 그대로 잊을 수 없는 멜로 판타지로 다가온다. 

들개

이미지: 무비꼴라쥬

입시 면접에 번번이 떨어지는 취준생 정구는 사제 폭탄을 만드는 것이 취미다. 자신은 터트릴 수 없지만 누군가 대신 터트려주길 바라는 묘한 일탈과 함께 오늘도 폭탄을 만든다. 그러던 중 정구 대신 폭탄을 터트려줄 집행자 효민이 나타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들개]는 제목처럼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스토리 전개와 강렬한 스타일이 빛나는 작품이다. 세상이라는 테두리 끝에서 고뇌하는 두 청춘의 모습을 폭탄 테러와 연결시켜 묵직하게 표현한다. 지금은 한국영화를 이끄는 두 스타 변요한과 박정민의 신인 시절을 만날 수 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불안해하는 변요한과 세상을 폭발시키겠다는 목적과 다르게 장난기 가득한 박정민이 대비되는 모습이 인상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