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 ②에디터 DY

By. 띵양

 

아는 만큼 보이는,
그래서 자꾸만 오고 싶은 부산국제영화제

 

 

시네필들이 모이는 10월의 부산은 피서철만큼이나 열기와 인파가 대단하다. 이번이 두 번째 부산국제영화제인 에디터는 작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태풍 ‘콩레이’ 때문이었다. ‘콩레이’가 부산을 휩쓸고 간 토요일 아침, 덩치가 제법 있는 에디터가 미끄러져 소향씨어터 앞에서 넘어지는 추태(?)를 보일 정도로 비바람이 강했다. 그러나 이런 무시무시한 태풍도 영화인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넘어지는 순간 울컥해 “아 괜히 나왔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우비와 우산으로 중무장한 채 묵묵히 예매를 기다리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반성하게 됐다.

 

두 번째 방문인 만큼, 작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곳곳에 숨어있는 영화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예매 성공률은 처참했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가슴이 설레는데, 더 좋은 점은 아직 내가 모르는 이 곳의 매력은 한참 더 있을 것이다. 알수록 매력을 느끼는 곳, 그래서 매년 찾아오고 싶은 곳, 바로 부산국제영화제다. 이번 글에서는 2박 3일의 일정 동안 에디터가 만났던 소중한 7편의 영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간담을 서늘케 하는 공포
골렘 / 할로윈

이미지: Dread Central, Universal Pictures

 

필자의 부산국제영화제는 공포로 시작해서 공포로 끝났다. 공포 영화라면 손사래를 치는 에디터의 성격을 고려하면 이색적인 선택이지만, [골렘]과 [할로윈]은 무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었다.

 

[예루살렘 Z: 좀비와의 전쟁]을 연출한 요아브 파즈와 도론 파즈의 신작 [골렘]은 마을의 안전과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금지된 주술로 ‘골렘’을 빚은 한 여인의 이야기다. 사실 ‘순수한 목적’에 ‘어둠의 마법’이 더해져 벌어지는 끔찍한 참상에 대한 이야기는 흔한 소재다. 그러나 [골렘]의 매력은 여성의 권리가 없다시피 했던 문화와 시대 속에서 주인공의 순수했던 목적과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지를 그리는 데에서 나온다. 예상 밖의 잔혹함(?)과 저예산 공포 특유의 어색함도 매력적이었다. 큰 기대를 안 하고 예매했으나, 기대를 안 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 정도로 작품성과 장르적 재미가 쏠쏠했던 작품이었기에 기분 좋게 첫날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부산 일정의 대미를 장식한 [할로윈]은 큰 기대를 품었던 작품이다. 제이슨 블룸의 GV까지 이어져 예매에 실패할까 노심초사했는데, 운 좋게 성공하면서 개봉일보다 빨리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40년 전 존 카펜터의 손에서 탄생한 [할로윈] 시리즈는 미국 호러/슬래셔 장르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3대 연쇄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 제이슨 부히스, 마이클 마이어스) 중 마이클 마이어스의 광기를 그린 작품들이다. 대개 시리즈 영화는 갈수록 진부해지고 힘이 빠지기 마련인데, 리메이크 이후 9년 만에 다시 등장한 데이빗 고든 그린의 [할로윈]은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게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굉장히 뛰어났던 작품이었다. [할로윈]의 매력은 크게 세 가지다. 1) ‘슬래셔 장르의 시초’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잔혹함. 2) 시리즈 초창기를 이끌었던 제이미 리 커티스의 귀환. 3) 클리셰를 영리하게 비트는 데에서 얻어지는 장르적 카타르시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이 영화를 극장에서 꼭 보기를 추천한다.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차갑고 쌉싸름한 현실의 모습
앳 워 / 보스의 비밀 / 가버나움

이미지: Mk2 Films, 부산국제영화제, Sony Pictures Classic

 

영화는 관객을 상상 속의 세계로 이끄는 문인 동시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들은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은, 누군가에게는 냉혹하고 쌉싸름한 현실을 그린 작품들이다.

 

스테판 브리제의 [앳 워]는 공장 노조원들의 뜨거운 투쟁을 담은 작품이다. 스테판 브리제의 ‘페르소나’ 벵상 린덴은 노조원 1,100명을 이끌고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주인공 ‘로랑’으로 등장하는데, [앳 워]는 그의 심리적 변화나 개인적인 삶을 그리기보다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선에서 감정을 배제한 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제삼자의 시선’을 통해 관객들은 노조원과 대기업 사이의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이 갈등이 보다 현실적으로 와 닿게 되는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서 ‘절정’ 부분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영화 전체의 톤이 담담해서 관객에 따라서는 훌륭한 수면제 역할을 할지도 모르는 작품이다. 그러나 필자와 같이 자극적인 소재에 피로감을 느끼고, 또 평소 정치·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관객들에게는 ‘르포 영화’ 같은 [앳 워]가 제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스의 비밀]은 에디터가 처음으로 접한 카자흐스탄 영화였다. 평범한 은행원이자 홀어머니의 아들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옛 친구와 조우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 작품으로, [앳 워]와 마찬가지로 톤이 담담하지만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방식은 정반대다. 철저하게 주인공 ‘카나트’의 시선과 감정 변화, 그리고 행동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은 [앳 워]와 같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라기보다는 상상력이 가미된 범죄 드라마에 가깝지만, 그 결말만큼은 우리가 뉴스에서 볼 법한 씁쓸한 내용이기에 상당히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보고 싶었던 작품, 바로 [가버나움]이었다. [가버나움]은 난민과 하층민으로 가득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살아가는 어린 소년 ‘자인’의 이야기다. 영화는 사람을 칼로 찌르고 교도소에 갇힌 ‘자인’이 “자신을 불우한 환경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파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버나움]은 이후 그가 분노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냉혹하고 참담한 현실을 담아내는데, 이러한 처절한 상황과 마음 한편에 순수함을 간직한 ‘자인’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관객들에게 희로애락을 전부 선사한다. 다 큰 관객들에게 뜨거운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하는 아역들의 사실감 넘치는 연기가 영화의 백미인데,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실제 배달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아이였고, 그의 동생으로 등장한 여자 아역 배우 역시 껌을 팔던 시리아 난민이라고 한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동심과 따뜻함을 담아낸 영화를 보면서 션 베이커의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예술과 웃음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 미상 / 뎀젤

이미지: Pergamon Film, Great Point Media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작가 미상]과 데이비드 젤너, 네이선 젤너 연출의 [뎀젤]이다. ‘예술’과 ‘유머’라는 각자의 키워드로 에디터를 사로잡은 두 작품 덕에 토요일 아침 태풍 때문에 미끄러지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먼저 [작가 미상]은 독일의 부끄러운 역사 중 일부를 바탕으로 한다.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전쟁과 독재 정치를 경험한 소년 ‘쿠트 베르너’가 예술가로 성장하면서 개인의 삶과 예술, 그리고 정치·역사가 결국 모두 연결되어있음을 그린 작품으로, [작가 미상]이라는 한글 제목도 좋았지만(독일 원제를 그대로 따랐다) 개인적으로는 [Never Look Away]라는 영문 제목이 더 좋았다. “역사를 외면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더 와 닿았기 때문인 듯하다. 영화가 ‘쿠트 베르너’의 유년기부터 성년이 된 시기까지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을 담았기에 러닝타임이 상당히 길지만, 촘촘하게 이어진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세 시간이라는 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젤너 형제 연출, 로버트 패틴슨과 미아 와시코우스카 주연의 [뎀젤]이다. 납치된 ‘페넬로페’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사무엘’의 이야기를 담은 서부극으로, 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었던 ‘비탄에 빠진 소녀(Damsel in Distress)’ 클리셰를 대놓고 비튼 작품이다. 영화의 유머는 앞서 언급한 ‘클리셰 비틀기’에서 비롯되는데, 초반에는 다소 지루할 수 있으나 어느 순간부터 펼쳐지기 시작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전개와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관계는 보는 내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로버트 패틴슨과 미아 와시코우스카의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짜 신부 ‘파슨 헨리’를 연기한 데이비드 젤너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영화의 백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