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골라담기] 한국의 힙합이란 이런 것이다, ‘리스펙트’

“씨네필과 장르 마니아를 위한 이번주 개봉작”

 

매주 새로운 영화가 물밀듯이 극장가를 찾아오지만 모든 개봉작을 보기에는 시간도 없고 지갑 사정도 여의치 않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도 보고 싶은 영화가 근처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참사를 겪으면서 VOD 출시만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씨네필 혹은 특정 장르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이번 주 개봉작들을 소개한다.

 

 

1. 리스펙트: “코리안 힙합이란 이런 것이다”

이미지: 커넥트픽쳐스

 

에디터 띵양: 한국 힙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 [리스펙트]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힙합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여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타이거 JK, MC 메타를 비롯한 한국 힙합 1세대부터 도끼, 빈지노, 스윙스 등 현재의 힙합을 대표하는 래퍼들이 자신의 철학과 ‘리스펙트’의 정의를 이야기한다. 12명의 래퍼들이 공중파에 에서 하지 않았던 진솔한 이야기와 한국 힙합의 역사, 그리고 힙합씬에서 벌어지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편이다. 그러나 98분이라는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보니 작품 전체가 굉장히 산만하고 깊이가 얕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우리가 알려줄게”라며 영화는 어깨에 힘 빡 주고 가르치려 하지만, 오히려 관객이 역으로 묻는다면 [리스펙트]가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을까? 힙합 입문서의 느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작품.

 

 

2. 국가부도의 날 (Default): “잊지 말자, 그 날의 역사”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에디터 겨울달: 1997년 IMF 외환위기 자체를 다룬 영화. 각자의 자리에서 위기를 막으려 하거나 위기에 직접 영향을 받거나, 이를 기회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그린다. 아직도 몸과 마음에 그때 받았던 상처가 남아있어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나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이런 소재를 다루면 나올 법한 이야기와 캐릭터가 등장하고 구성 자체는 익숙하게 느껴져도, 그때의 기억이 영화와 겹치는 순간 이야기에 그대로 빠져든다.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김혜수, 특히 해결 방안에서 대척점에 선 조우진과 맞붙는 장면 속 그의 연기는 영화를 완성한다. 유아인, 허준호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제 몫을 다한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정치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그날의 진실을 은폐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린다는 것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3. 거미줄에 걸린 소녀 (The Girl in the Spider’s Web): “여성 원톱 액션에 충실한 오락 영화”

이미지: 소니 픽쳐스

 

에디터 Jacinta: 클레어 포이의 헌신적인 노력이 이 영화를 즐겁게 한다. 강도 높은 액션은 물론이고 복잡 미묘한 내면을 탁월하게 소화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리스베트가 끌고 가는 영화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촘촘한 스릴러보다는 액션과 감정적인 드라마에 비중을 두고, 리스베트가 살인사건에 휘말려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건의 연결고리는 그리 정교하지 못하고, 리스베트가 초인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건을 돌파하는 모습은 의문스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서사의 빈틈을 채우는 클레어 포이의 강렬한 존재감, 여성과 여성의 대립, 여성과 아이의 연대로 풀어가는 서사가 이 영화를 흥미롭게 한다. 눈 덮인 북유럽의 차가운 정취는 덤.

 

 

4. 후드 (Robin Hood): “겉모습은 화려하나 속은 비었다”

이미지: (주)이수C&E

 

에디터 Amy: 이전부터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많이 접해 익숙한 로빈 후드의 이야기를 새롭게 그린 액션 영화. 할리우드에서 그간 숱하게 내놓았던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폭발과 액션이 난무하는 범죄 액션 영화의 중세 버전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고증이라고 할 만큼 중세 시대 배경과 로빈 후드의 설화를 깊이 있게 접근하지는 않으며, 시각적으로 화려한 데 비해 서사와 개연성이 부족하다. 로빈이 가히 슈퍼맨/클락 켄트 급으로 얼굴을 드러내도 아무도 후드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다. 게다가 십자군에 의해 민족이 학살된 아라비아인 리틀 존이 로빈의 멘토가 되는 과정도 이해하기 어렵고, 마리안과 윌 등 주변 인물들은 얄팍하게 소모되어 남은 것은 활을 사용한 액션뿐이다. 전형적인 백인 남성이 민중을 일깨우며 이끌어간다는 이야기는 이제 충분하지 않을까.

 

 

5. 저니스 엔드 (Journey’s End):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이미지: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에디터 겨울달: 1차 세계 대전을 다룬 동명의 유명 연극을 스크린에 옮겼다. 보이지 않는 적과 마주한 최전방 참호를 지키는 군인들, 특히 동료와 부하의 죽음을 결정하고 이를 눈앞에서 지켜봐야 하는 장교의 심리에 집중한다. 폭탄이 터지고 총소리가 난무하는 스펙터클은 최대한 빼고, 인간의 정신이 무너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면서 전쟁의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면을 드러낸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좋지만 특히 샘 클래플린이 인상적이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고 부하를 사지에 몰면서 죄책감과 고통에 하루하루 망가져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전쟁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진짜 그 시대 참호 같은 프로덕션 디자인과 이를 잘 활용한 촬영 또한 돋보인다.

 

 

6. 샘 (Saem): “독립영화 특유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영화”

이미지: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에디터 Jacinta: 안면인식 장애가 있는 남자가 첫사랑을 찾으려 한다는 동화적인 설정이 신선한 호기심을 부른다. 영화 [샘]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하고, 순수함이 왜곡되고 사라져 가는 현실을 따스한 시선을 담아 유쾌하게 비튼다. 조금 유치할지언정 곳곳에 공감 가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배우들의 정형화되지 않은 연기가 시종일관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기분을 전한다. 다만, 두상이란 인물에는 의문이 든다. 두상의 순수함을 부인할 수 없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보다 적극적으로 두상을 현실로 끌어냈으면 두 사람의 로맨스가 더 즐겁게 와 닿았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7. 소녀의 세계 (Fantasy of the Girls): “아련하게 떠나간 첫사랑의 추억”

이미지: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에디터 Amy: 학창시절 첫사랑의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여고를 나왔다면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기억을 아련하게 떠올릴 법하다. 1학년 선화는 우연히 연극반 선배 수연에 의해 줄리엣 역을 맡게 되면서 로미오 역을 맡은 선배 하남을 만나게 된다. 만인의 우상 하남과 합을 맞추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호기심은 동경으로, 동경은 점차 좋아하는 감정으로 변한다. 고등학생들이 실제로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고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비슷한 연령대인 노정의가 안정민 감독에게 연기 의견을 많이 제시했다고 한다. 그 덕에 어색함은 덜하고 좀 더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모습을 비춘다. 순정 만화를 뚫고 나온 듯한 청춘 로맨스를 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8.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 (Goodbye My Girlhood): “열여섯 소녀에게서 배우는 인생”

이미지: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에디터 띵양: KBS 다큐멘터리 [순례]의 첫 번째 이야기를 대형 스크린에 옮긴 작품.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는 열여섯 소녀 왕모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삶을 포기하고 ‘패트 야트라’ 순례길에 나서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관객은 그녀의 모습에서 모두가 겪었을 사춘기와 지금껏 걸어온 삶,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가슴 깊이 고민하게 얻는데, 인상 깊은 점은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는 이유도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인생을 뒤바꿀 큰 결단을 내리는 왕모의 모습을 통해 ‘결심의 가치’ 그 자체를 알려주면서 가슴 깊은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또한 히말라야와 인도 북부 라나크의 압도적인 절경을 전부 담아낸 영상미에서도 크나큰 감동을 얻게 되니 팍팍한 삶 때문에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