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골라담기] 힙해져서 돌아온 고전 크리스마스 이야기, ‘그린치’

“씨네필과 장르 마니아를 위한 이번주 개봉작”

 

매주 새로운 영화가 물밀듯이 극장가를 찾아오지만 모든 개봉작을 보기에는 시간도 없고 지갑 사정도 여의치 않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도 보고 싶은 영화가 근처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참사를 겪으면서 VOD 출시만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씨네필 혹은 특정 장르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이번 주 개봉작들을 소개한다.

 

 

그린치 (The Grinch): “힙해져서 돌아온 고전 크리스마스 이야기”

이미지: UPI 코리아

에디터 띵양: 크리스마스를 망치고픈 심술궂은 그린치의 이야기. 이미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로 제작되어 대중에게 친숙한 닥터 수스의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친숙함을 넘어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고전적인 크리스마스 이야기인 만큼, [그린치]는 귀여움과 경쾌함, 힙함으로 승부를 본다. 일루미네이션 특유의 귀여운 그림체, 어깨춤이 절로 나는 흥겨운 노래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존재감은 이 작품을 지루할 틈이 없게끔 만든다. 덕분에 [그린치]는 원작에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전작들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가족의 소중함’과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온 가족이 연말에 함께 보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 시작 전 보여주는 단편 애니메이션의 임팩트가 생각보다 커서 본편의 재미를 살짝 떨어뜨린 느낌이다. 제아무리 그린치가 귀여워졌다고 한들, 노랗고 작은 그 녀석들을 이길 수는 없다…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 (Itzhak): “음악 거장의 삶을 들여다보다”

이미지: 영화사 진진

에디터 띵양: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은 [쉰들러 리스트]의 바이올린 곡 연주자로 잘 알려졌지만, 그 외에도 많은 업적을 남긴 이차크 펄먼의 음악적 여정과 일상을 탐구한다. 음악인으로서 이차크 펄먼은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그의 연주는 관객의 귀를 호강시키고, 완벽한 연주와 공연을 위해 몰두하고 동료들과 상의하는 모습에서는 진정한 프로 의식이 느껴진다. 반면 음악인이 아닌 유대인, 교육자, 가장, 지역 야구팬의 이차크 펄먼에게서는 유쾌한 옆집 할아버지의 온화함과 친근함이 느껴진다.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모습의 발견이다. 평소 이차크 펄먼에 관심이 있었거나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은 관객, 혹은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며 잠시나마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잔잔한 작품.

 

 

더 파티 (The Party):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는 신랄한 폭로전”

이미지: (주)라이크 콘텐츠

에디터 Jacinta: 71분의 러닝타임이 거침없는 폭로전을 등에 업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장관 임명을 축하하려는 자리는 시작부터 묘한 위화감을 조성하더니 느닷없는 돌발 고백으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갈등을 점화시킨 불륜이란 소재만 보면 개개인의 위선을 꼬집은 세태풍자극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영국 정치 현실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며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도 담아낸다. 진지함과 신랄함을 오가는 재치 있는 대사, 절묘한 지점에서 폭소를 자아내는 음악, 배우들의 노련한 합이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폭로전을 더욱 즐겁게 한다. 파국에 이르는 관계에 어떤 연민도 불어넣지 않고 총성 없는 전쟁터로 완성한 감독의 역량에도 감탄할 것이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Mary Shelley): “노력은 좋았지만…”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에디터 띵양: 자유로운 삶과 글을 추구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은 세계 최초의 SF/공포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한 메리 셸리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극중 메리 셸리는 당대 관습을 탈피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 인물, 즉 ‘주체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품에서 그러한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가 글자 하나하나에 사랑의 배신, 현실 앞에서의 절망, 아이를 잃은 슬픔 등의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을 꾹꾹 눌러 담아 신들린 듯 ‘프랑켄슈타인’을 완성시키는 메리 셸리로 분한 엘르 패닝의 연기는 인상적이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외의 장면에서는 그녀에게서 어떠한 주체적인 면모를 볼 수 없었다는 것, 특히 익명으로 발간된 ‘프랑켄 슈타인’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할 수 있게 만든 주체가 본인이 아닌 남성이었다는 결말부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부다페스트 로큰롤 (Made in Hungaria): “자유와 사랑의 로큰롤”

이미지: 알토미디어(주)

에디터 겨울달: 공산당이 지배한 1960년대 헝가리에 분 로큰롤 열풍을 그린 뮤지컬 영화. 미국에서 자유와 로큰롤을 체험한 청년이 음악을 통해 헝가리 젊은이들의 자유와 예술에 대한 사랑을 깨운다는 내용이다. 실존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했지만 어려운 내용은 빼고 흥겨운 노래와 춤을 집어넣었다. 영화를 보면서 어느새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거나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을 것이다. 헝가리어 가사는 생소해도 노래는 정말 좋고, 영화를 보고 나도 멜로디를 흥얼거릴 만큼 매력 있다. ‘자유를 일깨우고 부조리한 시스템에 저항하는’ 주제를 대놓고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말 자유롭게 춤추는 젊은이들의 몸짓은 정말 많은 것을 설명한다. 연말에 볼 만한 즐겁고 흥겨운 영화를 찾는 분들께 추천한다.

 

 

마약왕 (The Drug King): “너무 집중한 나머지 구멍이 뚫렸다”

이미지: (주)쇼박스

에디터 Amy: 마약왕 이두삼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작품. 그만큼 주변 인물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소재도 결도 다르지만 서사의 진행이 마치 [범죄와의 전쟁] 송강호 버전을 보는 듯하다. 마약을 제조해서 일본에 비싸게 팔아 돈을 버니 이것이 애국하는 것이고 내수경제를 살리는 일이라며, 자아도취에 가까운 자기합리화를 하는 주인공을 아직도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배두나의 김정아 역과 김소진의 성숙경 역을 좀 더 조화롭게 그렸으면 영화가 훨씬 다채롭고 매력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캐릭터 외에도 등장인물 대부분이 이두삼의 서사에 필요한 경우에만 갑자기 등장하다가 마무리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 사라져버린다. 게다가 불필요한 노출과 과도한 살인 묘사까지 더해져 영화의 매력을 더욱 반감시킨다. 흥미로운 소재인 데 반해 밋밋하고 진부하게 흘러가는 점이 못내 아쉽다.

 

 

아쿠아맨 (Aquaman): “물맨 붐은 온다”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에디터 겨울달: [아쿠아맨]은 믿고 보는 호러 전문가 제임스 완 감독이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낸 결과물이다. 직접 구축한 바닷속 세계는 화려한 비주얼을 뽐내고, 여기에 음악을 더하니 마치 SF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액션 장면은 구성도 촬영도 좋고, 속도감과 높낮이를 잘 살린 시퀀스는 굉장히 스릴 있다. 모든 배우들이 캐릭터를 잘 소화했지만 엠버 허드와 니콜 키드먼은 캐릭터의 매력과 훌륭한 연기 덕분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비주얼이 매력 1순위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비주얼에 비해 서사가 단순하고 예측 가능하며, 이야기 무게감이 불균형한 점은 아쉽다. 그래도 [아쿠아맨]은 히어로 영화의 순진하고 유치한 면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복잡하고 무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실없게 가볍지도 않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저스티스 리그] 이후 ‘괜찮은’ DC 영화가 나오길 기다린 관객들은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스윙키즈 (Swing Kids): “탭댄스의 흥겨운 리듬감으로 이념 대립을 넘어선 반전영화”

이미지: (주)NEW

에디터 Jacinta: 대중의 기호를 상업적으로 풀어내는 강형철 감독의 역량에 새삼 감탄하게 될 영화. 이번에는 탭댄스를 원동력으로 삼아 판타지 같은 상상력으로 전쟁의 비극을 담아내는데 도전했다. 탭댄스의 경쾌한 리듬감이 현란한 볼거리를 선사하며 유쾌한 웃음을 끌어냈던 전반부를 지나면, 점차 전쟁이 불러온 비극적 서사에 다가서며 개인의 삶을 앗아간 이념 대립의 모순을 비춘다. 인종과 성별을 고르게 분배한 다양한 캐릭터 구성도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지점인데, 단순히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로 묘사하지 않고 저마다의 역할과 개성을 부여하며 서사를 풍성하게 채운다. 포로수용소라는 비극적 배경을 원색의 팝아트적인 느낌을 가미해 담아낸 영상과 시대를 초월한 음악 선곡도 보고 듣는 재미를 톡톡히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