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악당이 최후의 승자로 남는 영화

*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전 세계 영화 시장의 큰 줄기를 차지하면서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그 어느 때보다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한 법. 선한 사람들만이 승리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그린 영화만이 개봉한다면 영화를 볼 맛도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마지막 순간, 승리의 여신이 악당에게 입 맞추는 작품들을 살펴보자.

 

 

1. 유주얼 서스펙트

이미지: 와이드 릴리즈(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결말은 모두가 아는 범죄 스릴러. 배 위에서 벌어진 총격전의 유일한 생존자 버벌이 동료들과 함께 계획했던 범죄와 이를 지시한 전설적인 범죄 조직의 두목 ‘카이저 소제’에 대해 경찰에게 자백하는 내용을 그렸다. 다리를 절뚝이던 버벌이 경찰서에서 나오자 제대로 걷는 장면, 그리고 그가 바로 카이저 소제였다는 “악당이 이겼다” 엔딩을 처음 접한 이라면, 극중 데이브 쿠얀 형사와 똑같이 벙찐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아이덴티티

이미지: 콜롬비아트라이스타

 

모텔에 고립된 11명의 사람이 의문의 연쇄살인범에게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자신들을 이어지게 만든 끔찍한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 사실 이들은 극 초반에 등장한 연쇄살인 용의자/해리성 정체감 장애 환자 말콤의 다른 인격이며, 그의 정신이상을 감정하는 자리에서 소멸당하는 과정을 살해당한 것으로 묘사한 것. 말콤의 치료감호가 승인되면서 영화가 끝날 것 같았으나… 숨어있던 살인마의 인격이 마지막 선한 인격을 살해, 이에 잠식당한 말콤이 돌변하고 함께 있던 경찰들을 살해하면서 영화가 마무리된다.

 

 

3.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이미지: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개봉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스타워즈] 시리즈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 전작에서 패배한 제국군이 반격을 가하며 루크 스카이워커 일행(저항군)에 반격하는 내용을 그렸다. 후속편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에서 결국 정의(라이트사이드)가 승리하게 되지만, [제국의 역습]에서만큼은 저항군이 철저하게 당하고, 루크와 레아 일행은 한 솔로를 잃으면서 악(다크사이드)이 승리한다. 이외에도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와 “내가 네 아버지다”로 밝혀졌던 상상도 못한 반전이 일품이다.

 

 

4. 퍼니게임

이미지: 아트레이드인터내셔널

 

리모컨 하나로 관객을 멘붕시킨 범죄 공포 스릴러. 한적한 호숫가 별장에 놀러 간 가족이 사이코패스 청년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처음에는 친절해 보였던 이들이 점차 본색을 드러내서 가족을 괴롭히고 살해하는 것을 보며 불편함을 느낀 관객들은 범인 한 명이 죽었을 때 환호를 내질렀겠지만… 이 영화 그리 만만하지 않다. 남은 청년이 TV 리모컨의 ‘되감기’ 버튼을 눌러 그를 되살리고, 결국 일가족 모두가 이들의 손에 목숨을 잃는 씁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엄청난 논란이 되었으며, 2007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었다.

 

 

5. 세븐

이미지: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명작 범죄 스릴러’하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데이빗 핀처의 작품. 인간의 7대 죄악을 주제로 하는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과 이를 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식욕, 탐욕, 나태, 색욕, 교만 순으로 벌어지던 연쇄살인사건이 미궁에 빠지려던 찰나에 존 도우가 범인임을 자백하며 우리를 당황시킨다. 마지막 두 개의 범죄(시기, 분노)는 결말부에 다다라서 등장하는데,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았던 밀스 형사를 시기했던 존 도우가 그의 아내를 죽이고, 이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밀스가 그를 죽이면서 마지막 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자신도 목숨을 잃었지만 계획대로 착착 맞아떨어진 악인이 승리한 것.

 

 

6. 프라이멀 피어

이미지: 유아이피-씨아이씨영화및비디오배급(유)

 

[아이덴티티]보다 먼저 다중인격을 다룬 범죄 스릴러. 소심하고 착한 인격의 ‘애런’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반사회적 인격 ‘로이’를 지닌 십 대 소년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고, 사건을 맡은 변호사 베일이 이중인격의 존재를 입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애런의 무죄가 선고된 이후 나름 훈훈하게 영화가 끝날 것 같았지만, 사실 애런의 인격은 전부 연기였으며 로이만이 실존하는 인격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정체가 밝혀진 이후 베일을 비웃는 로이의 악마 같은 표정은 털이 쭈뼛 설 정도로 소름 돋는다. 참고로 애런/로이를 연기한 에드워드 노튼은 이 작품이 데뷔작이었다.

 

 

7. 악마의 씨/로즈마리의 아기

이미지: Paramount Pictures

 

로만 폴란스키의 할리우드 데뷔작이자 클래식 공포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 주인공 로즈마리가 임신한 이후 불길한 일들을 겪으며 무너진다는 내용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로즈마리는 악마에게 겁탈당하는 꿈을 꾼 뒤 아이를 임신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이 모든 게 악마의 계획이었을 뿐 아니라 친절함을 베풀던 아파트의 주민 모두 악마의 추종자들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로즈마리가 진실을 깨우치고 난 뒤, 여기에 수긍해 아이를 기르겠다고 결심했다는 사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이 작품 이후 맨슨 일가족 살인사건이라는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고, 또 본인도 미성년자를 추행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니 정말 ‘악마 같은 영화’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8. 양들의 침묵

이미지: (주)평주

 

남/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 각색상을 차지하며 당시 아카데미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명작 범죄 스릴러. 미궁에 빠진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FBI 수습요원 클라리스 스털링이 수감된 사이코패스 살인마 한니발 렉터를 만나서 도움을 받는다는 내용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결국 클라리스가 사건을 해결하고 정식 요원으로 승급하면서 정의가 구현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게 한니발 렉터의 도움으로 가능했을 뿐 아니라 그가 감옥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니 궁극적으로는 악이 승리한 셈이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안소니 홉킨스가 불과 16분만 등장해 화제가 되었는데, 그 16분 동안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9.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미지: 주식회사 해리슨앤컴퍼니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코엔 형제의 범죄 스릴러. 21세기 최고의 악역으로 손꼽히는 ‘안톤 쉬거’가 등장하는 바로 그 작품이다. 총격전 현장에서 우연히 돈가방을 손에 넣는 주인공과 가방의 행방을 찾는 살인마, 그리고 이들을 뒤쫓는 보안관의 이야기를 그렸다. 돈가방을 거머쥔 주인공도 절대 ‘선’이라고는 표현하기 힘들지만, 이를 뒤쫓는 안톤 쉬거가 ‘순수 악’, ‘재앙 그 자체’를 의인화한 캐릭터이기에 상대적으로 선해 보이는 상황. 결말부에 다다라서 안톤 쉬거도 차사고로 크게 다치지만, 르웰린 모스를 비롯한 여러 명의 목숨을 눈 하나 깜짝 않고, 게임하듯이 죽이면서 그가 남긴 악의 흔적은 소름 돋는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