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 잔혹사, 흥행 실패했던 ‘한국형 SF 영화’들

얼마 전 [승리호]의 예고편이 공개됐다. 한국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블록버스터인 만큼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우려도 만만치 않게 크다. SF 장르가 국내 영화팬들이 즐기는 장르가 아닐뿐더러, 그나마 나온 작품들 중 상당수가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전설로 남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비롯해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던 국내 SF 영화들을 소개해본다.

천사몽 (2001)

이미지: 주니파워픽쳐스

이나영, 여명, 박은혜, 윤태영 주연의 SF 액션 영화. 고전소설 『구운몽』을 바탕으로, 시공간 이동장치를 통해 전생을 알게 된 주인공이 전생의 연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38억 원이란 거금이 투자된 ‘한국 최초의 SF 블록버스터’였던 만큼 꽤나 기대받았던 작품이지만, 어색한 배우들의 연기나 지나친 모방이 지적받으면서 처참하게 흥행에 실패했다(영진위 집계 서울 관객: 12,612명). 여담으로 [천사몽] 감독 박희준의 차기작은 그 유명한 [맨데이트: 신이 주신 임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002)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2000년대 초 한국 영화계의 침체기를 몰고 온 문제작. 짝사랑과 닮은 성냥팔이 소녀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게임 세계에 뛰어드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관객들은 당시 한국 영화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가상현실’을 스크린에 담은 시도에 대해선 나름 긍정적이었으나, 배우들의 연기력과 난해한 주제, 불친절하고 개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전개에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110억 원이 제작비로 투입된 작품이기에 손익분기점도 400만 관객으로 높았는데, 최종 관객 수는 고작 14만 명이다. 이 작품의 실패로 인해 한동안 충무로에서 대작 블록버스터 투자를 망설였다고. 극중 최고의 무기 ‘고등어’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디 워 (2007)

이미지: (주)쇼박스

한국 영화의 위상(?)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심형래의 괴수영화. 과거 차지하지 못한 여의주를 다시 노리는 사악한 이무기들과 이들이 몰고 올 재앙을 막으려는 두 남녀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관객 수 780만 명으로 2007년 국내 박스오피스 흥행 1위에 올랐지만, 제작비가 무려 300억 원(항간에는 700억이라는 의견도 있다)이 투자된 작품이라 손익분기 달성엔 실패했다고. 이전까지 국내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케일의 CG는 호평 받았으나, 과도한 애국 마케팅이나 시나리오, 배우들의 연기, 연출 문제 등 영화 내외적으로 많은 비판이 있었다. 북미에서도 개봉했지만 최종 성적은 1,100만 달러로 흥행에 실패, 놀랍게도 이 작품이  [기생충] 이전까지 ‘한국 영화 북미 최고 흥행작’이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7광구 (2011)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석유 시추선 이클립스 호에서 벌어지는 괴생명체와 대원들의 사투를 그린 괴수 영화. 나름 괴물의 CG가 나쁘진 않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쟁쟁한 배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 타율 낮은 개그와 생뚱맞은 대사, 일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설정 등 몰입에 방해되는 다양한 요소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결말부 애국 마케팅은 덤). 영화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역시 ‘박스 치워’ 장면. 손익분기점인 400만 관객에 못 미치는 224만 관객으로 흥행에 실패했는데, 덕분에 2018년 [물괴]와 [신과함게-인과 연]가 개봉하기 전까지 국내산 괴수 영화와 IMAX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없었다.

로봇, 소리 (2016)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 ‘소리’와 함께 10년 전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의 여정을 그린다. SF 소재와 휴먼 드라마를 적절히 섞었다는 반응과 더불어 과하지 않은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스토리, 이성민의 열연으로 영화를 직접 본 관객과 평론가들 사이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입소문까지 타면서 손익분기점 돌파(200만 관객)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으나, 상영 2주차부터 [검사외전]과 [데드풀], [주토피아]에게 상영관을 빼앗기면서 누적 관객 47만 명으로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흔히 말하는 ‘영화는 좋은데 대진운이 나쁜’ 케이스.

루시드 드림 (2017)

이미지: (주)NEW

제목 그대로 ‘자각몽’을 소재로 한 SF 스릴러. 주인공이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3년 전 실종된 아들을 추적할 단서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고수와 설경구의 열연이 돋보인다거나 오락영화로는 나쁘지 않다는 평도 더러 있지만, 구멍투성이인 개연성과 산만한 전개에 혹평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주연배우 박유천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것도 처참한 흥행 스코어에 한몫했다. 제작비가 ‘SF 영화 치고는’ 적은 편인 40억 원인데, 손익분기점인 약 170만 관객에 한참 못 미치는 10만 명의 관객만이 [루시드 드림]을 극장에서 관람했을 뿐이다.

하루 (2017)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김명민, 변요한 주연의 ‘타임루프’ 스릴러.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는 타임루프에 빠지게 되고,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두 주연과 유재명의 연기는 관객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하나, 시종일관 주인공들을 무력하고 답답하게 묘사한 ‘고구마’ 전개가 지루하고 반전도 허술해 아쉽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러닝타임이 90분으로 비교적 짧았다는 걸 장점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최종 관객수는 112만 명으로 손익분기(170~180만 명)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염력 (2018)

이미지: (주)NEW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실사 연출작. 평범한 은행 경비원에게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염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전작 [부산행]이 워낙 큰 성공을 거둔 만큼, [염력]을 향한 대중의 기대는 상당했다. 그러나 초반 기대와 달리 엉성한 초능력의 설정과 묘사, 억지 신파와 유치한 유머, 부족한 개연성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동안 연상호 감독의 장기로 받아들여졌던 ‘사회비판적인 시선’도 [염력]에선 깊이가 없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나마 장점으로 꼽히는 건 짧은 분량에도 악역의 카리스마를 제대로 뽐냈다는 정유미의 퍼포먼스 정도다. 결국 상영 열흘 만에 순위가 급락, 총 관객 99만 명으로 손익분기 410만 명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했다.

인랑 (2018)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오키우라 히로유키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2018년작. 대한민국과 북한 정부가 통일을 준비하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통일에 반대하는 ‘섹트’와 이에 맞선 대통령 직속 경찰부대 ‘특기대’의 대립을 그린다. 김지운 감독이 [밀정]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으나, 개봉 직후 잘못된 현지화와 처참한 수준의 개연성, 불친절한 전개로 인해 관객과 평단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공들인 티가 나는 슈트와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하수구 전투에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으나, 앞서 언급한 단점들을 덮기엔 역부족이었다.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89만 관객만을 동원하고 극장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