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가 하마터면 칸에서 상을 못 탈 뻔했다고!?

날짜: 6월 8, 2020 에디터: 홍선

칸에서 일어난 한국영화의 결정적인 순간 6

지난 4일, 칸 영화제는 코로나19로 사실상 무산된 행사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칸2020 오피셜 셀렉션'(Canne2020 Official Selection)’을 공개했다. 올해 뤼미에르 극장에서 이들 영화를 만나지는 못하지만, 칸이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해당 작품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크다. 한국영화 [반도]와 [헤븐: 행복한 나라로(가제)]가 리스트에 올랐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인 칸은 어느새 한국영화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기대작들의 초청 가능성부터 현지 상영 후 반응과 수상 여부까지, 칸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국내 흥행에 영향을 끼칠 정도다. 언제부터 칸 영화제는 한국영화를 주목했을까? 현재까지 한국영화가 칸에서 거둔 굵직한 성과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되돌아본다.  

2000년, 칸 경쟁 부문 최초 초청 ‘춘향뎐’

이미지: 태흥영화

칸에서 한국영화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2000년 [춘향뎐]부터다. 이전에도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상영된 적 있으나 경쟁 부문 초청은 [춘향뎐]이 최초였다. 임권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춘향뎐]은 판소리 소설 『춘향전』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조승우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춘향뎐]은 제53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최초로 초청되어, 당시 공중파 뉴스에서 주요 소식으로 다룰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아쉽게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춘향뎐]을 통해 세계 영화계가 한국영화를 주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년 뒤 임권택 감독은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 최초로 경쟁 부문 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200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올드보이’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올드보이]는 경쟁 부문에 초청된 과정부터 드라마틱했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월드 프리미어 작품만 초청하는데, [올드보이]는 영화제가 열리기 반년 전 국내에서 먼저 선을 보였다. 경쟁 부문 출품 조건에 맞지 않았지만, 영화를 본 영화제 관계자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예정되었던 비경쟁 부문 초청을 뒤집고 경쟁 부문에 합류했다. 힘들게 칸에 도착한 [올드보이]의 현지 반응은 대단했다. 특히 당시 심사위원장인 쿠엔틴 타란티노가 인상 깊게 봤다는 소문이 들리면서 수상 가능성에 기대를 모았다. 마침내 [올드보이]는 황금종려상 다음으로 권위 있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해 한국영화계에 큰 기쁨을 전했다. 만약 [올드보이]가 예정대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면 심사위원대상은 수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올드보이]로 이어진 박찬욱 감독과 칸의 인연도 계속되었다. 차기작인 [박쥐]와 [아가씨]가 연이어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고, [박쥐]는 심사위원상을 거머쥐었다. 또한 박찬욱 감독은 2017년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2006년, 칸에서 펼쳐진 봉준호의 첫 번째 열풍 ‘괴물’

이미지: (주)쇼박스

봉준호 감독의 전매특허가 된 어퍼컷을 최초로 선보인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2006년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괴물] 상영 직후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로 처음 칸영화제에 진출했다) 영화가 끝나고 기립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나가던 봉준호 감독이 환호성에 화답하듯 어퍼컷을 날렸다. [괴물] 개봉 당시 국내 마케팅에선 봉준호 감독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영화를 홍보했고 반응도 좋았다. [괴물]의 성공 이후 칸 영화제는 여름 개봉을 목표로 한 텐트폴 영화에 놓칠 수 없는 홍보의 장이 되었다. 칸에 진출했다는 사실만으로 오락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영화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끝까지 간다], 2016년 [부산행], 2018년 [공작]까지 모두 칸에 초청받아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국내에서도 많은 관객을 모았다. 

2007년, 칸 영화제 최초 연기상 수상 ‘밀양’ 전도연

이미지: 시네마서비스

2007년 칸 영화제에서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왔다. [밀양]의 전도연이 한국 배우 사상 최초로 칸에서 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한국 배우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1987년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강수연 이후 20년 만이었다. [밀양]은 유괴범에게 아들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전도연은 주인공 신애 역을 맡아 분노와 상실이라는 극한의 감정을 섬세한 연기로 표현했다. 현지에선 영화가 공개된 후 많은 전문가들이 전도연을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했고, 결국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전도연의 수상은 언어와 문화 장벽이 높은 연기 영역에서도 세계에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또한 전도연은 2014년 제67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도 위촉되어 한국 배우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였다. 

2013년, 칸 영화제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 ‘세이프’

이미지: 브이지 픽쳐스

[세이프]는 제66회 칸 영화제에서 단편 경쟁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부문은 다르지만 [기생충] 이전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한국영화이기도 하다. 문병곤 감독의 13분짜리 단편영화 [세이프]는 불법도박장에서 상품권을 교환해주는 캐셔 민지가 살의를 가진 손님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내내 숨 막히는 긴장감이 계속되고, 돈을 둘러싼 자본주의의 병폐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문병곤 감독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상식 당일까지 언질이 없어서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너무 놀라 수상소감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며 정신 없었던 당시 순간을 전했다. 칸이 인정한 문병곤 감독은 장편 영화를 통해 관객과 만나겠다는 다짐을 전했는데, 머지 않은 날에 그의 신작을 스크린에서 만나길 기다린다.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기생충’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이 칸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는 건 공식 상영 때부터 감지되었다. 작품이 상영되는 순간에도 간간히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렸고, 끝나고 나서는 무려 8분간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상영 후 현지 매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페인 앤 글로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함께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점쳐졌다. 폐막식 날,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루투 감독은 수상자 이름이 담긴 봉투를 꺼내며 “패러사이트, 봉.준.호.”라고 외쳤다. 한국영화 최초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뜻깊은 순간이었다. 특히 심사위원 만장일치라는 점에서 [기생충]이 얼마나 칸을 매료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여담으로 축하 리셉션에서 이냐리투 감독은 봉준호 감독에게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에 선정되는 바람에 남우주연상 후보였던 송강호에게 트로피를 줄 수 없어 아쉬웠다고 했다. (칸 영화제는 한 작품이 두 개의 상을 수상할 수 없는 룰이 있다) 그럼에도 송강호는 [밀양], [박쥐] 그리고 [기생충]까지,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자신의 작품 모두가 본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