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흥신소] 낯선 사람과 한 집에 머무는 공포, ‘미저리’

“몰라도 상관 없지만 알면 더 재미있는 영화 비하인드 스토리”

 

이미지: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낯선 이와 한 집에 같이 있는 것은 대단히 어색한 경험이다. 심지어 본인이 생각지도 못했고 또 원치도 않았던 사람과 함께라면 어색함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게 된다. 허정 감독의 2013년작 [숨바꼭질]이나 최근 개봉한 공효진 주연 [도어락]이 이를 그린 대표적인 국내 영화다. 해외에도 [더 퍼지], [노크] 등 수많은 작품이 있는데, 이는 곧 ‘내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라는 전제가 전 세계 관객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공포감을 선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1990년작 [미저리]도 마찬가지다. 물론 앞서 소개한 작품들과 달리 극중 배경이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이지만 ‘낯선 이와의 원치 않는 동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케시 베이츠의 소름 끼치는 연기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악역으로 꼽힐 정도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면 더 재미있는 명작 공포 영화 [미저리]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보자.

 

 

1. 스티븐 킹의 마약 중독에 대한 이야기

이미지: MGM Home Entertainment

스티븐 킹은 ‘미저리’ 발간 이후 한동안 책을 쓴 이유나 모티브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20년 가까이 지난 2006년이 되어서야 입을 열었는데, 이전부터 자신을 괴롭혔던 마약 중독이 바로 ‘미저리’의 집필 이유이자 모티브였다고. “애니는 나의 마약 중독을 형상화한 인물이다. 그녀는 나의 가장 큰 팬이었고, 절대로 내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한 스티븐 킹은 폴 쉘던(제임스 칸)은 마약을 거부하면서도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투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마약 중독 사실이 소설보다 더 큰 주목을 받고 악영향을 줄까 염려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2. 로브 라이너 아니면 안 돼!

이미지: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스티븐 킹은 본인 작품의 영화/드라마화를 선호하지 않는다. 영화 스튜디오가 자신의 의도를 온전히 파악하고 화면으로 옮기지 못할 것이라 믿기 때문인데, ‘미저리’ 판권을 판매할 당시에는 로브 라이너가 제작자나 감독으로 [미저리]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판권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로브 라이너의 연출작이자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탠 바이 미]를 좋게 봤기 때문. 그 결과 탄생한 [미저리]는 명작 공포 영화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으며 개봉 당시 스티븐 킹도 영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시사회에서 “조심해! 애니가 총을 가지고 있어!”라고 웃으며 외쳤다는 풍문이 있다. 

 

 

3. 알프레드 히치콕을 공부하며 커진 로브 라이너의 부담감

출처: (주)안다미로

로브 라이너는 [미저리] 촬영에 앞서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모든 작품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 문제는 히치콕에게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스스로를 옭아맸다는 것이다. 제임스 칸은 촬영장에서 로브 라이너가 “네가 뭐 알프레드 히치콕이라도 되는 줄 알아?”라며 자책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고 추후 밝혔는데, 부담감이 어마어마했던 모양이다.

 

 

4. 망치냐 도끼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미지: MGM Home Entertainment

영화 [미저리]와 원작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애니가 폴의 다리를 어떻게 했는가’다. 대체로 원작이 더 잔인하다고 평가하는데, 소설에서는 애니가 폴의 양쪽 발목을 도끼로 절단하기 때문이다. 각본가 윌리엄 골드만은 오로지 이 장면을 대형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미저리] 각본을 썼다고 밝혔을 정도로 애착을 보였으나 제작자 앤드류 샤인먼과 로브 라이너는 너무 잔인하다며 애니가 ‘슬래지 해머(철거용 망치)’로 폴의 발목을 분지르는 것으로 수정했다. 불만을 가졌던 윌리엄 골드만은 영화를 보고 나서야 둘의 선택이 오히려 더 큰 공포감을 조성했다며 ‘신의 한 수’였음을 인정했다.

 

 

5. 애니 윌크스의 폭력성에 혀를 내두른 케시 베이츠

이미지: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케시 베이츠는 [미저리]의 폭력성 때문에 촬영 내내 힘겨워했다. 제임스 칸은 애니가 폴의 다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호블링(hobbling)’ 장면과 두 사람의 마지막 혈투 촬영이 다가오자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창 뜨거웠던 ‘망치 vs 도끼’ 논의 당시 케시 베이츠가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며 망치가 아닌 도끼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는데, 만일 원작을 따랐다면 그녀가 우는 걸로는 안 끝났을 듯하다.

 

 

6. 배우들에게 힘겨웠던 촬영

이미지: MGM Home Entertainment

[미저리] 촬영은 배우들에게 여러모로 힘겨운 경험이었다. 제임스 칸은 캐릭터 특성상 15주를 침대에 누워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즉각적인 인물(reactionary character)을 연기하는 데 익숙치 않았던 그는 안 그래도 배역이 어려운 와중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움직임이 제한되자 로브 라이너가 일부러 자신에게 ‘가학행위’를 하는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호블링’ 장면을 본 이후에는 로브 라이너에게 “넌 정말 역겨운 인간이야(you’re a sick f***)”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다고.

 

반면 케시 베이츠는 영화의 폭력성뿐 아니라 연기 방식 때문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리허설은 횟수가 적을수록 좋다”라고 주장했던 제임스 칸과는 달리 오랜 기간 연극에 몸담은 그녀는 리허설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로브 라이너는 케시 베이츠의 고충을 듣자 “분노와 불만을 캐릭터에 이입하자”라고 조언해주었는데, 극중 애니의 상태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케시 베이츠가 상당히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7. 밝혀지지 않았던 애니 윌크스의 아픈 과거

이미지: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영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애니 윌크스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그녀가 어릴 적 아버지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했다는 설정으로, 로브 라이너와 케시 베이츠가 캐릭터에 이야기를 더하기 위해 임의로 추가한 것이다. ‘아버지에게 추행당하는 딸’ 콘셉트는 스티븐 킹 소설에 단골로 나오는 설정이기도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케시 베이츠가 간호사 시절 유아와 노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살인범으로 변모한 애니를 연기하는 데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케시 베이츠는 캐릭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극심한 우울감과 외로움에 빠지고 말았는데, 낌새를 알아차린 로브 라이너가 “촬영이 끝나면 당신은 더 이상 애니가 아니다”라며 위로해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