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감독들의 커리어를 망친 작품

 

by. Tomato92

 

정말 훌륭한 감독이라 해도 본인의 필모그래피를 명작으로만 수놓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아카데미 시상식 트로피를 휩쓸며 만인의 박수갈채를 받다가도 같은 사람이 연출한 건지 의심스러운 작품을 내놓기도 한다. 연출에 한번 발을 삐끗하는 순간 다음 작품이 재기를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는데, 처참한 흥행 성적, 엉터리 전개, 미스 캐스팅이 조화를 이룬 최악의 작품으로 커리어와 명성을 잃은 감독들을 소개한다.

 

 

 

1. 조엘 슈마허 – ‘배트맨 앤 로빈’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로튼토마토

 

‘배트맨’ 시리즈 중 이런 퀄리티의 영화가 나올 거라는 것은 [배트맨 포에버]에서 미리 예상하고 감독을 교체했어야 했다. 슈마허 감독이 3편의 혹평에도 4편을 만들 수 있던 동력은 두 편 사이에 찍었던 [타임 투 킬]의 흥행 덕분이 아닌가 싶다. [배트맨 앤 로빈]은 많은 예산이 들어간 최악의 슈퍼히어로 영화 리스트에서도 최악이라는 평가를 듣는 작품이다. 영화는 출연 배우들의 경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클루리스]로 반짝 스타가 된 알리시아 실버스톤과 크리스 오도넬의 커리어는 처참히 붕괴됐다. 시리즈 중 최악의 영화가 된 까닭은 시종일관 가벼운 톤으로 진행되는 내용과 기존 스타일이 맞물리지 않아서, 혹은 캐릭터 싱크로율이 별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나 [저스티스 리그]처럼 사공이 많았던 것도, 그렇다고 배우와 제작자 간 잦은 다툼이 있지도 않았다. 영화가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작품에 대한 비전과 뜻을 굽히지 않은 배급사 워너브라더스와 감독의 환장스러운 시너지가 부정적인 결과를 미쳤기 때문이다. 슈마허는 이후 한풀 꺾인 기세로 여러 작품을 전전하다 2013년 [하우스 오브 카드] 에피소드 감독을 끝으로 연출에서는 물러난 상태다.

 

 

2. 존 맥티어넌 – 롤러볼

 

이미지: 콜럼비아 픽쳐스, 로튼토마토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제 존 맥티어넌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미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프레데터], [다이하드]를 연출한 장본인이고, 심지어 두 작품을 연이어 찍으며 할리우드를 놀라게 만들었다. [다이하드] 이후 그대로 은퇴했다면 전설로 남을 수 있었겠지만, 두 작품이 거둔 성공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그는 거의 매년 작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다이하드] 바로 다음 영화인 [에덴의 마지막 날]부터 [붉은 10월], [다이하드 3]까지 본인이 가장 잘하는 액션 장르의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작품성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팝콘 무비의 요소를 고루 갖추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프레데터]의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재회한 [마지막 액션 히어로] 역시 박스오피스 흥행은 부진했지만,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며 나름의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그러나 1999년,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13번째 전사]가 흥행에 참패한 이후 맥티어넌의 커리어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차기작이 그에게 감독 인생을 결정할 매우 중요한 작품인 셈이었는데, [롤러볼]이라는 졸작이 탄생해버렸다. 1975년 흥행작의 리메이크라는 안정적인 노선을 택했으나 개봉 이후 ‘지리멸렬함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 ‘원작에 똥물을 끼얹은 작품’, ‘보는 내내 고문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영화’라는 등 엄청난 혹평에 시달렸다. 흥행 또한 제작비의 3분의 1을 회수하는 정도에 그쳤으며, 이후 맥티어넌은 [베이직]이라는 작품을 더 찍고, 연출에서 종적을 감췄다.

 

 

3. 로베르토 베니니 – 피노키오

 

이미지: Medusa Distribuzione, 로튼토마토

 

다 큰 어른이 만인의 사랑을 받은 클래식 동화의 소년 연기를 하는 게 훌륭한 아이디어라 생각했던 것부터 문제인 작품이다. 더군다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훌륭한 연기, 연출, 각색으로 엄청난 호평을 받은 로베트로 베니니가 모든 걸 총괄한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기이한 괴작이다. 베니니는 연출에 손을 대기 전에 연기자로 왕성히 활동하며 이탈리아의 보물, 즉 믿고 보는 배우라는 소리를 들었던 인물이다. 관객들은 그의 작품 보는 안목을 맹신적으로 믿었으며,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50살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피노키오]라는 작품을 만나며 제대로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오싹한 캐릭터부터 무색무취 스토리텔링, 형편없는 유머를 지적했고 어린이들을 겨냥한 전체관람가 영화였음에도 ‘어린이들은 기피해야 할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심지어 배급사 중 하나였던 미라맥스는 영화의 미국 버전을 멋대로 편집하며 다시 한번 빈축을 샀다. 당연히 제작비에 못 미치는 흥행을 기록했으며, 베니니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 최악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4. 워렌 비티 – 그 규칙은 당신에게 적용되지 않아요

 

이미지: 이십세기 폭스, 로튼토마토

 

워렌 비티의 경우 배우와 감독으로 일하며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에서 다사다난한 일을 겪은 인물이다. 연출 데뷔작인 [천국의 사도], [딕 트레이시]는 비평과 흥행에 모두 성공했지만, 연출과 제작, 각본, 주연까지 모든 걸 총괄한 [불워스]의 성적이 제작비에 조금 못 미치며 불안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그가 주연을 맡은 2001년 [타운 앤 컨트리]가 그야말로 폭망하며 할리우드에서 15년간 둔적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비티가 연출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그 규칙은 당신에게 적용되지 않아요]다. 이 작품의 경우 작품성에서 크게 외면받지 않았지만, 배급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흥행에서 크게 부진하며 비티의 커리어에 또다시 타격을 줬다. 2,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할리우드 기준 높은 편은 아니지만, 흥행작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위해서는 제작비 이상의 성적을 내야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개봉 첫 주 160만 달러의 초라한 성적을 거둔 이후 최종 380만 달러에서 기세가 멈췄고, 결국 추수감사절 월드와이드 개봉작 중 최악의 오프닝 기록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5. 리차드 켈리 – 사우스랜드 테일

 

이미지: Destination Films, 로튼토마토

 

명작 컬트 영화 [도니 다코]가 극장에 개봉됐을 당시, 다소 복잡하지만 뚜렷한 스토리라인에 신선하고, 힙한 느낌을 낼 줄 아는 감독의 탄생에 세상은 쾌재를 불렀다. 켈리는 단숨에 주목받는 차세대 감독 반열에 올랐다. 이후 그는 본인이 잘 알고 잘 하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야심찬 프로젝트를 내놓는데, 그 작품이 [사우스랜드 테일]이다. 영화는 납치당한 후 기억상실증에 걸려 돌아온 액션 스타와 포르노 스타가 집필한 각본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는 내용의 미스터리 범죄 영화다. 줄거리만 봐도 조금 당황스러운데, 내용은 더 가관이다. 하나의 전개로 시작된 이야기가 점점 심화되는 것이 아닌 중간중간 새로운 이야기와 인물이 개입하며 계속해서 흐름이 끊기고 세계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칸 영화제 출품 당시 엄청난 혹평을 받았으며, 북미 개봉 전 15분을 잘라냈음에도 2시간 24분의 러닝타임 동안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열린 결말로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엄청난 답답함을 선사했다. 1,7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박스오피스에서 37만 달러의 처참한 성적을 거두었고, 리차드 켈리 감독은 2009년 [더 박스] 이후 현재까지 이렇다 할 만한 활동이 전무하다.

 

 

6. 마이클 만 – 블랙코드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로튼토마토

 

마이클 만은 [인사이더], [콜래트럴], [맨헌터] 등 사실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로 90년대부터 2000년대를 주름잡은 감독이다. 작품에 유머 코드를 최대한 줄이고 철저히 남성 위주의 영화를 만들며, 탄탄한 지지층을 구축했다. [퍼블릭 에너미] 이후 6년 만인 2015년, 크리스 헴스워스와 탕웨이, 왕리홍을 주연으로 내세운 [블랙코드]로 화려한 복귀를 시도했다. 7,000만 달러의 블록버스터급 예산에 비수기로 접어드는 1월을 개봉 시기로 잡아 출격했으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박스오피스 및 비평에서 거하게 망했다. 마블 시리즈로 잘 나가던 크리스 헴스워스에게 국밥 이미지를 심어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헴스워스 캐릭터 ‘니콜라스’에 매력이 전혀 없다는 게 지배적인 평이다. 극중 표정 변화라고는 전혀 없는 시종일관 굳은 얼굴에 캐릭터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서사가 부족하다 못해 제로에 가깝다. 이외에 여주인공과의 시시껄렁한 로맨스, 뻔하고 터무니없는 악역, 허망한 결말까지 망하기 위한 요소를 고루 갖추며 개봉한 결과 [패딩턴], [더 웨딩 링거]에 밀려 박스오피스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만 감독은 [블랙코드] 이후 3년 정도 공백기를 가졌으며, 올해 베트남 전쟁에 관한 TV 시리즈로 복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