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죠스’로 서막을 연 블록버스터 흥행 연대기

 

by. 빈상자

 

 

관객도 제작사도 들뜨게 하는 여름이 왔다. 여름방학 시즌은 겨울과 더불어 관객과 제작사가 한마음으로 기다리는 성수기다. 관객은 볼만한 영화가 많아서 좋고, 제작사는 수년을 공들인 영화로 성수기 흥행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많은 블록버스터가 여름 시즌에 쏟아져 나와 치열한 접전을 치르며 희비의 쌍곡선을 그린다.

블록버스터는 2차 대전 당시 한 구역(블록)을 초토화시키는 위력을 가진 폭탄을 일컫는 말이었다. 전후에는 크게 흥행한 뮤지컬에 간간히 쓰이기도 했지만, 이 전쟁용어가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대형 흥행 영화로 폭넓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5년 개봉한 [죠스]의 공이 컸다.

 

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

 

[죠스]가 블록버스터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도 흥행 기록도 아니다. 예산으로 치면, 1975년 [죠스] 제작비는 9백만 달러에 불과한 반면, 1963년 [클레오파트라]는 물가 차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미 3천1백만 달러를 넘어섰다. 흥행 기록을 봐도, 제작비 대비 52배를 벌어들인 [죠스]의 선전은 분명하지만,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흥행 수익은 [죠스]의 1.7배에 이른다.

[죠스]와 이전 흥행작들의 가장 큰 차이는 마케팅과 개봉 규모다. [죠스] 이전의 영화들은 일반적으로 LA와 뉴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개봉해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차차 상영관을 늘이거나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죠스]는 대대적인 마케팅과 함께 당시로는 전례 없는 기록인 465개 영화관에서 동시 개봉하며 ‘개봉관 장악’의 효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죠스 인형, 비치타월, 모자, 티셔츠, 피규어 등 관련 상품을 대대적으로 판매하면서 분위기를 고조하고, 티켓 판매 외에도 수익을 늘렸던 전략은 이후 개봉하는 블록버스터가 택하는 방식과 같다.

이렇게 태어난 블록버스터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화계와 관객에게 영향을 미쳤다. 극장을 찾는 관객을 늘이며 파이를 키우거나 때론 극장을 찾은 관객을 독차지하며 파이를 독점하기도 했다. 1975년 이후 박스오피스 흥행 수익만 살펴보아도 이러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흥행 수익 통계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겠지만, 지난 40여 년의 기록을 따라가며 흥행 수익 10위권 이내에 든 영화를 살펴보았다. 가장 주목한 수치는 그 해 흥행 수익 1위 영화가 10위권 안에 든 영화의 총흥행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참고로, 신뢰할 수 있는 통계만 다루고자 1988년까지 흥행 수익은 북미 통계를, 1989년 이후로는 전 세계 수익을 참조했다. 물가변동을 고려해 원화로 환산하지는 않았다)

 

 

 

1975년, 블록버스터가 나타났다

 

블록버스터의 아버지 [죠스]는 거의 2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1975년 10위권 내 모든 영화의 총흥행 수익인 약 7억 달러 중에서 무려 27%를 독차지했다. 이것만 보아도 ‘블록버스터 아버지’다운 데뷔를 한 셈이다. 흥행 10위권 내의 다른 영화들을 보면, [죠스]와 같은 블록버스터의 등장이 얼마나 갑작스러웠는지 바로 드러난다.

 

이미지: 피터팬픽쳐스

 

우선 [죠스]에 이은 흥행 2위 영화는 [록키 호러 픽쳐 쇼]다. 지금은 컬트영화의 대명사처럼 대접을 받지만, 당시만 해도 소수만의 영화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 뒤를 이어 각각 잭 니콜슨과 알 파치노의 연기가 돋보였던 문제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뜨거운 오후]가 나란히 3, 4위에 올랐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그와 함께 상위권에 오른 [죠스]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1977년, 미국 신화의 시작

 

이미지: 루카스필름

 

1977년, 미국식 대서사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워즈]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스타워즈]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죠스]에서 배운 블록버스터 전략을 충실히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었다. 흥행 기록도 [죠스]의 기록을 뛰어넘은 3억 달러에 이르렀고, 10위권 총흥행 수익 중 비중도 [죠스]를 넘어서는 수치인 32%를 기록했다.

 

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

 

이 거대한 블록버스터 바로 아래 2위 흥행작은 우리에겐 상당히 낯선 코미디 영화 [빅턴]이었다. 버트 레이놀즈와 샐리 필드가 주연을 맡은 [빅턴]은 당시 문화적인 현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흥행한 영화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빅턴]의 미국식 코미디보다 더 어색한 것은 이와 같은 중소규모 영화가 대형 블록버스터 [스타워즈]와 [죠스]로 대형 감독으로 급부상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차기작 [미지와의 조우] 사이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1977년 흥행 수익 4위를 기록한 뮤지컬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와 5위를 차지한 로맨틱 코미디 [굿바이 걸]까지 고려하면 생경한 풍경은 더욱 확장된다.

90년대까지 할리우드 스튜디오 전략은 지금처럼 흔히 ‘텐트폴’이라고 불리는 몇몇 대형 프로젝트 수익에 의존하기보다는, 이렇게 중소규모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 위험을 분산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1982년, 괴물 같은 해

 

1982년 [E.T.]는 처음으로 10위권 영화의 총흥행 수익을 10억 달러 반열에 올렸다. 1981년 8.9억 달러를 기록했던 총흥행 수익은 [E.T.]가 개봉한 1982년에 12.5억 달러까지 올랐다가 1983년에 다시 10억 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

 

그만큼 1982년은 [E.T.]가 강세를 보였던 해였지만, 영화팬들은 [E.T.]보다는 다른 이유로 1982년을 기억한다. 이제는 넘사벽 SF 교과서가 된 [블레이드 러너]와 B급 영화의 장점과 전형을 잘 보여주는 [괴물(The Thing)]이 개봉한 해였기 때문이다. 물론 두 영화는 개봉한 지 2주가 지나도 흥행 열풍이 여전한 [E.T]에 밀려 박스오피스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후 [블레이드 러너]와 [괴물]을 명작의 반열에 올린 평가에서 흥행 성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외 흥행 2위를 차지한 코미디 [투씨]를 비롯해 드라마 [사관과 신사], 공포영화 [폴터가이스트], 뮤지컬 [애니]가 각각 3위, 8위, 10위에 오르며 흥행 영화의 다양성이 돋보였던 특별한 해였다.

 

 

1995년, 모두가 공평하게

 

이미지: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1995년은 유독 유별난 강자 없이 순위권에 있는 영화가 수익을 골고루 나눈 해였다. 흥행 수익 1위부터 7위까지 모두 30억 달러대에 자리 잡았고, 박스오피스 총흥행 수익 대비 1, 2, 3위 영화의 수익 비중도 모두 11% 안팎으로 고만고만한 수치였다. 1~3위 영화를 다 합쳐도 10위권 내 총흥행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3년 중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장르면에서도 다양한 영화가 순위권에 들었다. 1위 [토이스토리], 2위 [다이하드 3], 6위 [배트맨 포에버], 7위 [세븐], 10위 [쥬만지]가 순위권에 오르며 애니메이션부터 히어로, 스릴러, 어드벤처 등 장르 영화가 골고루 포진했다. 투입한 제작비를 고려한다면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9위를 기록한 SF 영화 [워터월드]까지 있었으니 구색은 다 갖춘 셈이었다.

하지만 작품성 있는 영화까지 상위권에 오르던 경향은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눈에 띄게 하락했다. 그나마 1991년에 [양들의 침묵]이 5위에 오른 것이 거의 마지막 성과처럼 보인다.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나 1999년 [매트릭스]가 드문 예이긴 하지만, 규모 면에서 작은 영화가 큰 영화 사이에 자리잡기는 점점 더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1997년과 2009년, I’m back, 제임스 카메론

 

이미지: 씨네힐, (주)영화사 오원

 

1990년 이후 내내 30억 달러대에서 고만고만하던 10위권 영화의 총흥행 수익은 1997년 [타이타닉] 등장으로 51억 달러로 폭등했다. [타이타닉]은 그 해 10위권 영화 총흥행 수익 중 36%를 차지했으며, 이는 43년간 통계 중에 가장 높은 비중이었다. [쥬라기 공원 2: 잃어버린 세계]보다 3배의 수익을 올리면서 2위와도 큰 격차를 두었다.

[타이타닉] 덕분에 사상 처음 50억 달러를 넘겼던 총흥행 수익은 [타이타닉] 이후 2001년 ‘해리포터’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까지 다시 50억 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다음 해인 1998년에 바로 36억 달러로 떨어졌는데, 1998년에 나온 블록버스터가 규모면에서 결코 작은 영화가 아닌 것을 감안하면 [타이타닉]이 유별난 강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8년 흥행 수익 1위는 [아마겟돈], 2위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그리고 3위는 [고질라]였지만, 세 영화의 수익을 다 합쳐도 [타이타닉]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미지: ㈜해리슨앤컴퍼니

 

1997년, [타이타닉]으로 힘의 균형을 무너뜨렸던 제임스 카메론은 2009년 [아바타]로 다시 한번 이를 재현했다. 2008년 63억 달러를 거둬들인 총흥행 수익은 [아바타]가 개봉한 2009년 90억 달러로 다시 한번 폭등했다. [아바타] 혼자서만 27.5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9.3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2위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와 격차는 3배에 가까웠다.

 

 

2013년, 디즈니 독주의 시작

 

이미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2005년 밥 아이거는 디즈니 CEO에 취임한 이후 2006년 픽사, 2009년 마블, 2012년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차례로 인수했다. 그 결과 2013년부터 디즈니의 독주가 확연하게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2013년 디즈니는 10위권에만 [겨울왕국], [아이언맨 3], [몬스터 대학교], [토르: 다크 월드] 4편의 영화를 올리면서 총흥행 수익의 44%를 가져갔다.

이러한 디즈니의 독점은 2016년에 가장 두드러졌다. 1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2위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3위 [도리를 찾아서], 4위 [주토피아], 그리고 5위 [정글북]까지 싹쓸이하면서 10위권 영화 총흥행 수익의 56%는 디즈니의 몫이었다. 그 비중은 2017년에 43%를 기록했고, 2018년에는 [블랙 팬서]와 아직까지도 기록을 경신 중인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두 편 만으로 지금까지 46%를 점유하고 있다.

 

 

2015년, 한국영화가 베테랑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2015년 할리우드는 전 세계에서 상위권 10편 영화만으로 115억 달러라는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 2014년 79억 달러, 2016년 93억 달러와 비교되는 수치다. 가장 큰 이유는 역대 최고 흥행 수익을 올린 10위권 영화 중 2015년에 개봉한 영화가 네 편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강세를 보인 해였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상당히 생소한 얘기처럼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분노의 질주: 더 세븐] 등 2015년 전 세계 흥행을 기록한 영화가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진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5년 전 세계 흥행 수익 1위와 역대 3위를 기록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국내에서는 320만 명의 관객수로 만족해야 했다. 이로써 한국 관객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에 대한 무관심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나마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만이 전 세계 성적에 걸맞은 흥행 기록을 국내에서도 달성할 수 있었다.

대신 할리우드 영화의 빈자리는 [베테랑], [암살], [국제시장] 등 한국영화들이 채웠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국내 영화사들의 대형 영화로 대체됐을 뿐이다. 국내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한국영화는 대규모 예산과 스타 위주 멀티 캐스팅, 상영관 독점, 대대적인 마케팅 등 전형적인 블록버스터의 전략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할리우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