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소설과 함께 살펴보는 퀴어 영화

by. 유하

 

 

*이 글은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강렬한 햇빛과 장마가 어우러진 7월 한가운데,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에서는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벌써 19회를 맞이하는 서울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Queeround#서울 이다. 당신의 주변에는 언제나 우리 – 즉,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뜻을 담았다.

 

이미지: 소니 픽쳐스

 

프라이드의 여름이 다가온 것에, 어떤 이들은 올해 벚꽃이 필 무렵 개봉했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추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눈 내리는 배경을 끝으로 막을 내리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영화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던 여름의 첫사랑 향기를 아주 지워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별장과 푸른 바닷가의 조각상 파편들, 신나는 음악 사이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야경, 엘리오와 올리버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크레마의 거리들. 청량한 여름의 형상으로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며 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영화만큼 원작의 명성도 자자한데, 안드레 에치먼의 동명 소설은 국내에선 [그해, 여름 손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전에도 우리 귀에 익숙한 여러 퀴어 영화들이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없잖아 있는 편이다. 그렇다면 7월 14일 서울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기 전, 원작을 따로 가지고 있는 퀴어 영화들을 함께 살펴보는 건 어떨까.

 

 

 

 

1.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 – 캐롤 (2015) /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소금의 값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여름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있기 전, 우리의 겨울에는 [캐롤]이 존재했다. 1950년대 미국 뉴욕, 백화점 점원이었던 테레즈(루니 마라)와 그녀의 앞에 나타났던 손님 캐롤(케이트 블란쳇)의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 이 영화는 1952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발표한 장편 소설 [소금의 값]을 원작으로 한다. 과거에 패트리샤는 생활고로 인해 백화점 장난감 가게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그곳에서 우연찮게 한 귀부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이 테레즈의 시선을 사로잡는 우아하고 매력적인 연상의 여인, 캐롤을 탄생시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영화 [캐롤]의 시간적 배경이자 [소금의 값]이 출간된 50년대 미국은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치부하였다. 때문에 패트리샤는 클레이 모건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소설을 출간시켰으며, 90년대 본명으로 재출간하기 전까지도 이 소설의 작가가 본인이라는 소문을 내내 부인했다고 한다. 그렇게 성 정체성을 질병으로 부정당하던 힘겨운 시기를 지나 [소금의 값]은 2015년, 토드 헤인즈 감독의 연출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퀴어 영화로 재탄생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2. 행복을 찾고자 했던 불운한 세 여인의 이야기 – 디 아워스 (2003) / 마이클 커닝햄, 세월

 

이미지: 시네마서비스

 

영국의 모더니즘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였던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가 집필한 대표작 [댈러웨이 부인]에 빠져있는 1951년의 로라,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출판 편집자인 2001년의 클래리사는 살고 있는 시기와 장소 무엇 하나 겹치는 것이 없지만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작품과 함께 모두 레즈비언이라는 것, 그리고 어떠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기 다른 시대에 살아온 세 여인의 6월 어느 음울한 하루를 풀어낸 소설 [세월]은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 [디 아워스]로 제작되었다.

 

마이클 커닝햄에게 퓰리처상과 팬 포크너 상을 동시에 안겨준 소설이 영화화되며, 세 명의 여인들은 이름만 들어도 대표작이 나열되는 니콜 키드먼과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이 연기했다. 그 중 니콜 키드먼은 버지니아 울프로 분하며 미국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3. 당신을 릴리라고 불러도 될까요 – 대니쉬 걸 (2016) / 데이비드 에버쇼프, 대니쉬 걸

 

이미지: UPI 코리아

 

그 날은 초상화 화가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모델, 발레리나 울라(엠버 허드)가 자리를 비운 날이었다. 또한 대역이 필요하다며 부탁을 하는 게르다를 위해 스타킹에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던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에게 릴리 엘베라는 이름이 선사된 날이기도 했다.

 

릴리 엘베는 덴마크에서 유명했던 풍경화 화가이자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던 실존인물이다. 릴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데이비드 에버쇼프의 소설 [대니쉬 걸]은 유명 영화제 수상에 빛나는 거장 톰 후퍼 감독가 맡아 동명 영화로 제작되며 스크린을 찾게 되었다. [대니쉬 걸]은 제 7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는 등 여러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는 기록을 세웠는데, 특히 릴리 엘베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은 2015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고, 1년만인 2016년 또다시 [대니쉬 걸]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예를 누렸다.

 

 

 

4. 사랑은 자연과 같아 거스를 수 없음을 – 브로크백 마운틴 (2006) / 애니 프루, 브로크백 마운틴

 

이미지: 영화사 백두대간

 

2006년도 골든 글로브 최다 수상에 빛나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수상내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만년설이 뒤덮고 있는 봉우리에 푸르른 초원의 양들이 노니는 한여름의 브로크백 마운틴 방목장에서 함께 일 하게 된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의 사랑 이야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일찌감치 62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리라 예견되었고 실제로 수상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영화의 원작인 동명 단편집 역시 개리슨 케일러가 뽑은 ‘1998년 최고의 미국 단편 소설’과 존 업다이크가 뽑은 ‘금세기 최고의 단편’에 선정된 바 있는 저명한 소설로, 원작자 애니 프루는 [시핑 뉴스]로 퓰리처 상을 수상 받은 미국 문학의 거장이다. 영화[브로크백 마운틴]은 평론가뿐만 아니라 애니 프루의 극찬까지 받아냈으며 2006년 최고의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5. 너에겐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4) / 쥘리 마로, 파란색은 따뜻하다

 

이미지: 판씨네마

 

18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원작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고 있는 그래픽 노블 [파란색은 따뜻하다]이다. 그래픽 노블로서는 이례적으로 프랑스 시장에서 5만 부 이상 판매부수를 올렸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만화제인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독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자신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원작의 15살 클레망틴은, 횡단보도에서 스치며 지나가던 엠마(레아 세이두)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영화 속 주인공 아델(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의 모티브가 된다. 파란색과 흑백의 색감을 사용해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을 그려낸 소설처럼, 영화는 엠마의 머리칼, 이별 후 엠마를 만나러 갈 때 차려입은 아델의 원피스와 같은 소재들을 활용해 관객들에게 푸른빛 감정을 선사한다.

 

 

 

6.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 아가씨 (2016) / 세라 워터스, 핑거 스미스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잘 알려진 박찬욱 감독이 2016년 선보인 영화는 [아가씨]였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를 유혹해 돈을 가로채려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이 고아 소녀 숙희(김태리)를 그녀의 하녀로 들이며 벌어지는 영화다. [아가씨]의 배경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조선이지만, 본디 원작인 세라 워터스의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 장편 소설 [핑거 스미스]의 배경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이다.

 

박찬욱 감독은 소매치기를 뜻하는 19세기 영국의 속어인 핑거 스미스를 가명으로 쓰는 수 트린더와 사기꾼의 타깃이 된 아가씨 모드를 숙희와 히데코로 재창조하며 제 69회 칸 국제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올해 한국 영화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 및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7. 누구든 장대한 러브 스토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 러브 사이먼 (2018) / 베키 알버탈리, Simon vs. the Homo Sapiens Agenda

 

이미지: 20세기 폭스

 

사이먼(닉 로빈슨)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아무에게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털어놓지 못한 것을 빼면 말이다. 그 비밀을 꽁꽁 묶어둔 채 학교 생활을 이어가던 사이먼은 온라인을 통해 학교에 자신 말고도 또 다른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가 한 명 더 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을 블루라고 칭하고 있는 그 사람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친밀감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메일이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면서 사이먼은 아웃팅을 당할 수도 있는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는 올해 3월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개봉했던 [러브, 사이먼]의 줄거리이다. 베키 알버탈리의 데뷔작인 청소년 소설 [Simon vs. the Homo Sapiens Agenda]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러브, 사이먼]은 얼굴도 실제 이름도 무엇 하나 알 수 없는 블루가 대체 누구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동시에,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당하고 행해야만 하는 사이먼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