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시작한 팬덤이 증오가 될 때

 

by. 빈상자

 

 

외계인이 등장하는 SF영화가 범람하던 1950년대 만들어진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은 쉽게 잊혀질 졸작이었다. 배우들은 요즘 AI보다 못한 발연기를 선보였고, 허무맹랑하고 허점 투성이의 이야기 전개에, 그리고 특수효과는 아무리 60년 전 영화라는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배우의 무릎 위에 놓인 대본과 붐마이크의 그림자가 버젓이 드러나는가 하면, 소품이나 무대는 너무 허술해서 고등학교 학예회에나 어울릴 수준이었다. 또한 외계인 대 인류의 ‘대규모 전투’ 장면에는 한국전쟁 때 자료화면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배경으로 초가집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한국 관객들에겐 전혀 이질감이 없는 50년대의 미국 풍경도 볼 수 있다.

촬영이 끝나고도 우여곡절 끝에 2년이 지나서 간신히 개봉할 수 있었던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은 평단과 관객의 외면 속에서 빠르게 잊혀갔다. 그런데 그 이후로 간간히 TV에서 방영시간이나 메우던 영화는 80년대 들어 뜻밖의 이유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영화 역사상 ‘최악의 영화’로 거론되면서였다. 영화의 조악함과 허접함에 오히려 매력을 느낀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곧 이 영화를 컬트영화의 반열에 올리게 된다. 결국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은 ‘너무 형편없어서 좋은(so-bad-it’s-good)’ 영화의 대표작이 되어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찾아보는 영화가 되었다.

 

 

이미지: Valiant Pictures

 

어느 영화나 캐릭터를 대상으로도 있을 법한 팬들은 때론 결집하여 팬덤을 형성한 뒤, 그 영향력으로 흥미롭거나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컬트영화’라는 커다란 카테고리가 생길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런 팬덤의 역할이 컸다. 덕분에 대다수의 대중이 외면했던 영화들도 가치가 재발견되고 잊히지 않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팬덤이 항상 긍정적으로만 발현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렉’ 프랜차이즈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큰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스타워즈’의 일부 팬들은 최근 지속적으로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는 스핀오프가 아닌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최초로 비중이 높은 동양계 캐릭터인 로즈 티코가 등장한다. 그런데 로즈 티코 역을 맡았던 베트남계 미국인 배우 켈리 마리 트랜은 지난 6월 갑작스레 자신의 모든 포스트를 삭제하고 인스타그램을 그만두었다. 트랜은 [스타워즈] 출연 이후 지속적으로 인종차별과 외모를 비하하는 트롤들에게 시달려왔다. 불행히도 트랜의 고통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관련자들에게는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1999)]에 자자 빙크스로 출연했던 아메드 베스트도 최근 거의 20년 만에 당시 영화 개봉 후 시달렸던 고통에 대하여 언급했다. 자자 빙크스에게 향했던 비난에는 인종차별적인 고정관념 위에 ‘가장 짜증 나는 캐릭터’와 ‘최악의 캐릭터’로 자주 꼽히는 캐릭터를 창조해낸 제작사에게도 책임이 없다곤 할 수 없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캐릭터를 비평하고 제작사에 불합리함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배우에 대한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비아냥과 인신공격을 이어갔다. 그중에는 살해위협도 있었다. 그 고통에 아메드 베스트는 거의 자살 직전까지 이르렀고, 그때의 트라우마가 지금까지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983년 최초의 ‘스타워즈’ 3부작이 끝나고, 32년 만에 이야기가 진행된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는 초기부터 여러 면에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플롯과 함께 현실의 시간도 3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주연 배우들과 주 관객들의 대거 세대교체는 피할 수 없었다. 루크 스카이워커, 오비완 케노비, 한 솔로와 같이 오리지널 3부작을 끌고 가던 캐릭터들이 뒤로 물러난 이후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주인공은 레이와 핀과 같은 여자이거나 흑인이었다.

하지만 스타워즈의 일부 골수팬들은 그러한 변화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캐릭터와 배우가 공개된 직후부터 보이콧을 선언하거나, 레이와 핀을 연기한 배우인 데이지 리들리와 존 보예가에게 성별과 인종에 관한 노골적인 비아냥을 하기도 했다. 결국 데이지 리들리는 이어지는 총기사고에 관련해 언급했다가 보수적인 트롤들이 몰린 일을 계기로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했다.

일부 팬들의 다소 과격한 팬덤은 자신이 선망하는 프랜차이즈의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타나지만, 마음에 들어도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공격의 대상은 주로 비판적인 평가를 내린 평론가들에게 향한다. 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 개봉 전부터 영화를 찬양하고 방어적이던 팬들은 IMDB로 몰려가 만점 별점을 몰아주었다. 그들의 방어적인 태도는 영화가 개봉하고 부정적인 평가가 잇따라 나오자 곧 평론가들에 대한 공격으로 변모했다.

오랜 골수팬들이 많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이와 같은 일은 반복된다. 마블과 DC를 가리지 않고 일부 팬들이 [어벤져스], [맨 오브 스틸],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에 부정적인 평가를 한 평론가들의 개인정보를 소셜미디어에서 공개하고 가족을 위협하고 강간이나 살해 협박을 하기도 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미지: ㈜해리슨앤컴퍼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은 [배트맨 비긴즈]의 성공적인 데뷔와 특히 슈퍼히어로 영화의 재미와 격을 함께 올렸다는 평을 받은 [다크 나이트]로 단단하고 폭넓은 팬덤을 다졌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일부 팬들의 애정이 과격하게 변해갔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전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자 폭발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개봉한 후 처음으로 부정적인 리뷰를 펴낸 평론가인 마셜 파인에게 악플은 물론 협박이 이어지면서 큰 사회이슈가 되기도 했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은 팬덤의 나름 긍정적인 영향력 덕분에 탄생한 시리즈라는 점이다. 팀 버튼 감독의 두 번의 성공적인 배트맨 영화 이후에 조엘 슈마허 감독이 그 명성(과 함께 부담)을 이어받았다. 다행히 새로운 조합의 첫 작품이었던 [배트맨 포에버]의 성과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으나 이어서 만든 1997년의 [배트맨 앤 로빈]은 실로 참담했다.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관객과 평론가로부터 모두 혹평을 받은 [배트맨 앤 로빈]에 분노한 팬들의 성화는 결국 스튜디오가 죠엘 슈마허 감독과 함께 한번 더 계획했던 [배트맨 언체인드]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후로 2005년 다시 시작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3부작으로 돌아오기까지 배트맨 관련 모든 프로젝트는 멈추었다.

그와 같은 스튜디오의 결정을 이끈 데에는 ‘Ain’t It Cool News’와 같은 인터넷 매체를 중심으로 결집한 팬덤이 큰 역할을 했다. ‘Ain’t It Cool News’는 90년대에 새롭게 부상한 무대인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매체였다. 익명성과 편리성을 기반에 둔 인터넷의 가능성에 주목한 건 팬들이나 스튜디오나 마찬가지였다. 팬들은 결집하여 조직력을 갖출 수 있는 구심점을 찾았고, 스튜디오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팬덤은 성장했다. 콘텐츠 관련 정보의 양과 접근성이 광대하게 확장되고 커뮤니티에서 논의와 개개인의 비평이 활성화된 반면,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고립돼있던 편협한 편견과 폭력적인 악의가 서로의 동지를 찾아가면서 자양분을 얻어 독처럼 번져가는 소셜미디어의 폐해 또한 함께 흡수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공개 이후 라이언 존슨 감독도 일부 극성팬들의 타겟이 되었다. 특히 그의 트위터는 분노한 팬들의 욕설과 협박이 쏟아지는 채널이 되었다. 팬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보통 말을 아끼던 배우들과 감독들은 최근 정도가 심해지면서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존슨 감독은 평점 테러를 하는 팬들이나 스타워즈 티셔츠를 불태우는 일부 팬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받는 피드백의 90%는 긍정적인 반응이라며 극성스러울 정도의 부정적인 팬덤은 일부에 지나지 않다고 밝혔다. [로건]의 제임스 맨골드 감독도 자신이 열망하는 프랜차이즈가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실망하게 되는 일부 팬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모든 팬들이 각자가 원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한 영화가 모든 팬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감독과 배우들을 괴롭히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대응했다.

 

 

이미지: 골캐스트

 

일부 팬들의 광적인 분노와 협박에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13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2017년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2015년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도 20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마찬가지로 2015년의 최고 흥행작이었다. 세대교체 이후로 스타워즈 골수팬들의 원성은 높아졌지만,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은 새로운 세대의 스타워즈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지적처럼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전달하는 팬들의 과격한 반발은 팬덤 전체의 의견이나 성향이 아닌 거대한 팬덤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비평과 논쟁의 수준을 넘어서 배우나 감독 개인을 공격하고 협박하는 정도와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 이와 같은 폭력적인 팬덤을 보여주는 사람들에 폴 레이 램지와 같은 백인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한 극우주의자들이 다수 포함되어있고, 그들이 주로 공격하는 대상이 여성, 흑인, 동양인과 같은 소수집단을 향해 있는 것이 트럼프 시대에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영화팬들은 소속 집단인 사회의 흐름과 달리하는 별개의 집단이 절대 아니다. 때문에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또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