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깃든 공포, 무더위를 식혀줄 으스스한 휴가지!

*이 글은 [악마의 씨], [엑소시스트], [오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by. 예하

 

 

올봄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괴기 장소’를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 [곤지암]이 예상외로 흥행하며, 덩달아 촬영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호러영화에서 소름 돋는 공포를 유발하는 공간은 [곤지암]만 해당하는 게 아닐 것이다. 숨 막히는 긴장을 조성하는 공포영화의 무대는 실제로는 들어갈 수 없는 사유지이거나 인공으로 만들어진 세트장인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가능한 촬영지도 있다. 장소마다 사연과 기운이 깃들기 마련인데, 그중에서도 더욱 무르익은 호러를 탄생시킨 영화 속 그곳은 어디였을까? 매일마다 올여름 최고 더위를 경신하는 것 같은 요즘 날씨에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공포영화 속 ‘그곳’을 소개한다. 공포영화 팬이라면 버킷리스트에 올려둬도 좋겠다.

 

 

 

50년 전, [악마의 씨]의 뉴욕 더 다코타 아파트먼트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처스, Wikipedia

 

1968년작 [악마의 씨(Rosemary’s Baby)]는 오컬트 영화의 효시로 불린다. 극중 로즈 마리 부부는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여러 불길한 사건과 마주하게 되는데, 악마의 아이를 낳게 되는 악마 숭배자들의 소굴은 세트가 아닌 실제 있는 공간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더 브램포드’는 ‘더 다코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현재도 그 모습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뉴욕의 한 건축물이다. 이곳은 영화 외적으로도 유명한데, 1980년 위대한 뮤지션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존 레논이 이곳에서 살해됐다. 또한 [악마의 씨]를 만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훗날 끔찍한 인간이었음이 밝혀졌으니, 범상치 않는 곳임이 분명하다.

 

 

 

45년 전, [엑소시스트]의 워싱턴 D.C. 계단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Wikipedia

 

공포영화 역사를 통틀어 [엑소시스트(The Exorcist)]만큼 유명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실제 워싱턴 D.C.의 조지타운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아직도 워싱턴 D.C.에 남아있다. 영화의 결말부, 10분이 넘는 구마 장면에서 카라스 신부는 어린 소녀 리건의 몸에 깃든 악마와 필사의 사투를 벌인다. 목이 돌아가고 침대가 날아다니는 와중에 선배 격인 메린 신부가 사망하자, 카라스 신부는 리건과 육탄전을 벌여 악마를 본인의 몸으로 옮기고 계단으로 몸을 던져 악마와 함께 목숨을 끊는다. 바로 그 계단이 조지타운의 M 스트리트 끄트머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에는 지금도 영화 팬들의 ‘성지순례’가 끊이지 않는다. 실제 촬영 당시 고무로 계단을 감싸서 두 번의 테이크에도 스턴트맨이 다치지 않게 했다는 비하인드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 이 영화가 사랑받긴 하는 모양이다.

 

 

 

58년 전부터 43년 전까지, 윈저 오클리 코트 호텔

 

이미지: 20세기 폭스

 

(아마도) 가장 많은 공포영화의 배경이 된 건물이 여기 있다. 1960년 [드라큘라의 신부들(The Brides Of Dracula)], 1966년 [좀비의 역병(The Plague Of The Zombies)], 1973년 [스크리밍 스타트(And Now The Screaming Starts!)], 마침내 1975년 전설의 명작 [록키 호러 픽쳐 쇼]까지. 이상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영화들이 윈저 교외의 이 조그마한 호텔에서 앞다투어 탄생했다. 1949년부터 해머 영화사가 애저녁에 이곳을 임대하여 1년에 5편씩 영화를 찍어내고 있었지만, 오클리 코트의 빅토리안 고딕 양식은 60년대부터 전성기를 맞은 기괴하고 화려한 ‘고딕 호러’에 가장 잘 들어맞았다. 이 화려한 영화적 역사는 호텔의 홈페이지에도 자랑스레 소개되어 있지만, 가끔 아무것도 모르는 현대 여행객들의 쾌적한 숙박 리뷰를 읽는 짓궂은 재미는 우리만의 비밀로 하자.

 

 

 

42년 전, [오멘]의 런던 올 세인츠 교회

 

이미지: 20세기 폭스, Wikipedia

 

악마 숭배와 휴거물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1976년작 [오멘(The Omen)]. 아직도 [유전] 못지않게 소름 끼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이른바 ‘피뢰침’ 장면이다. 아버지 로버트 쏜에게 아들이 악마임을 알린 브래넌 신부가 사탄의 바람을 피해 필사적으로 교회에 들어가려다 피뢰침을 맞는 모습은 지금 보기에도 충격적이다. 런던의 평화로운 템즈 강변에 신부가 기를 쓰고 들어가려 했지만, 결코 문이 열리지 않았던 그 교회가 있다. 비숍스파크 안에 자리한 올 세인츠 교회는 건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교회 중 하나다. 19세기 중반부터 자리를 지켜온 이 성스러운 건축물이 왜 브래넌 신부에겐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한 번 방문해 둘러볼 일이다.

 

 

 

24년 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루이지애나 오크 앨리 플랜테이션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Oak Alley Plantation

 

이토록 나른하고 아름다운 뱀파이어물이 있었던가. 베일 듯이 아름답던 당대의 청춘스타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 아직 어린 커스틴 던스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트와일라잇]의 치명적인 뱀파이어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톰 크루즈가 분한 레스타트가 처음으로 방문한 루이의 플랜테이션 농장이 뱀파이어처럼 사라지지도, 노후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맞이하며 남아 있다. 미시시피 강가의 ‘오크 앨리’는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장이었으나, 지금은 미국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어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다. 드넓고 아름다운 부지를 거닐며 미국 남부의 더위 아래 서늘한 영화를 되짚어 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리라.

 

 

 

19년 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서울 창덕여고

 

이미지: 씨네2000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창백한 하늘과 불그스름한 벽돌 건물을 기억하는지. 전작 [여고괴담]과 후속 영화만큼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섬세한 성장영화의 결로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멀리 보이는 교회의 십자가와 아이들이 아슬아슬하게 거닐던 학교 건물의 뾰족한 지붕이 장소를 추측하기 어렵게 만드나 했더니, 막상 배경이 된 창덕여자고등학교는 서울 시내 올림픽선수촌 안에 있다. 게다가 예쁜 구조와 건물 때문인지 다른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수차례 사용되었다. 하지만 역시 심상치는 않은 곳이다. 본관에 0.5층이 존재하는 복잡한 구조가 재학생들도 쉬이 길을 잃게 만든다고 한다. 학교 홈페이지의 개방시간을 참조하여 교내를 산책하듯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사랑과 비밀과 혼란의 파도를 겪던 소녀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주길.

 

 

 

바로 지금, 광주의 ‘곤지암’과 부산의 ‘곤지암’

 

이미지: ㈜쇼박스

 

CNN에서 선정한 ‘세계 7대 괴기 장소’라니. 그리고 그중 하나가 한국이었다니! 곤지암 정신병원은 올 3월 영화 [곤지암]이 개봉하기 이전에도 많은 호러팬들이 무단침입을 감행한 ‘심령 스팟’ 중 하나였다. 그러나 병원장이 자살했다는 둥 고문이 있었다는 둥 모든 흉흉한 이야기는 모두 괴담이다. 병원은 단순히 경영에 얽힌 가족 사정으로 문을 닫았을 뿐이다. 설립자의 자제들은 미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후문. 게다가 용지를 매각하며 지난 5월 30일, 결국 건물을 철거했다.

그러나 이제 난데없이 또 하나의 폐건물이 몸살을 앓고 있다. 바로 [곤지암]의 실제 촬영지인 부산 영도의 구 해사고등학교. 지난 2007년 폐교된 이곳은 지난 10년간 별별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고사 : 피의 중간고사], [1987], 심지어 [신과함께: 죄와 벌]의 토네이도 신에 등장했다. 그러나 [곤지암]만큼 주민들에게 손해를 끼친 작품은 없었다. 무단침입 공포체험이라는 영화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부지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도 으스스한 공간, 깨진 창문 틈으로 바람이 부는 곳이지만 딱 거기까지다.

두 곳의 공통점이 있다면 첫째, 허가 없이 들어가면 안 되는 사유지라는 것. 둘째, 공식적으로 ‘귀신 프리’인 곳이라는 점이다. 이곳만큼은 휴가지에서 제외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