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블록버스터

날짜: 8월 28, 2018 에디터: Jacinta

 

by. 예하

 

 

블록버스터와 멀티플렉스, 기획 영화의 시대가 오기도 전부터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영화들이 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기의 포문을 열었던, 그해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영화들.

 

 

 

1939년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미지: Loew’s Inc.

 

8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첫 번째 기대작은 스케일부터 다르다. 아이언맨이 쥬라기 공원에서 광선검을 들고 싸운다고 해도 그 개봉일을 한 주州 전체의 공휴일로 선포할 수는 없을 테니까. 1939년 개봉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얘기다. 마거릿 미첼의 원작 소설이 고전이 되리라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 남부 부농의 딸로 태어나 남북전쟁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다시 일어나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 스칼렛 오하라의 파란만장한 로맨스와 일생’을 담은 이 장대한 원고를 감당하려는 곳은 드물었고, 간신히 출판사를 찾아 책을 만들고, 출간 전 몇몇 할리우드 관계자에게 보내 판권 계약을 타진했으나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이 폭발적 반응을 얻고 퓰리처상까지 받으며 풍향이 바뀌었다. 판권을 구입한 거물급 제작자 셀즈닉이 수십 명의 최정상 배우들 가운데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를 발탁했고, 3년에 걸쳐 제작비와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즈음 미국의 분위기는 ‘기대’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1939년 12월, 작품의 배경이 된 조지아주의 주도이자 원작 작가의 고향인 애틀랜타에서 프리미어가 열렸다. 애틀랜타 시장은 오직 이 영화의 첫 상영만을 위해 3일짜리 축제를 열었고, 배우들이 차례로 도착해 리무진을 타고 시내를 돌며 손을 흔들었다. 조지아주가 임시공휴일로 선포한 축제의 마지막 날 저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공식 개봉했다. 믿기 어려운 건 알겠지만, 그날 극장 앞에 줄을 선 군중의 수는 30만 명이었다.

 

 

 

1978년 – 슈퍼맨

 

이미지: Warner Bros.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실사가 되어 스크린에 등장한다는 얘기만으로 설레던 시대가 있었다. 1940년대 배트맨 영화도, 1951년의 슈퍼맨 장편영화도 있었지만 지금 쏟아지는 코믹스 원작 블록버스터의 시발점이 된 작품은 1978년작 [슈퍼맨]일 테다.

이번에도 이야기의 시작은 거물급 제작자와 사랑받는 원작이다. 스타 제작자 솔킨드 부자가 엄청난 제작비로 판을 깔면서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각 분야 최고의 이름이 적힌 후보 리스트가 말 그대로 쏟아졌고, 대중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땅한 전례가 없는 터라 실시간으로 연재 중인 만화의 이야기를 영화로 추리는 것부터 문제였다. 그 유명한 [대부]를 쓴 마리오 푸조를 중심으로 총 네 명의 작가가 머리를 싸매 각본을 내놓았다. 캐스팅은 오히려 파격이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거론되던 자리에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신인을 앉혔다. 그가 21세기에도 프랜차이즈를 대표하는 ‘영원한 슈퍼맨’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테다.

화려한 볼거리 역시 예비 관객들을 모으는 마케팅 포인트였는데, 디지털 기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에 만든 특수효과는 지금 봐도 혀를 내두를만하다. 20미터짜리 금문교 미니어처를 만들고 실사 크기로 고독의 요새를 지었다는 얘기는 이제 오히려 낭만적으로 들린다. 1978년 최종 완성된 [슈퍼맨]은 총 5천5백만 달러가 들어 당시 영화 역사상 최고 제작비를 사용한 영화가 되었다. 날아다니는 사람을 보러 오라는 기념비적인 포스터에 관객들은 확실히 반응했다. 그해 12월에 개봉한 [슈퍼맨]은 크리스마스 시즌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만일 아직 이 고전을 보지 않았다면 로튼토마토에 한번 검색해볼 것. 94%, 당신의 기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2009년 – 아바타

 

이미지: ㈜해리슨앤컴퍼니

 

그 이야기를 전할 기술이 없어 10년 동안 유령처럼 할리우드를 떠돌던 프로젝트가 있다. 꼭 10년이 되는 2000년대 중반에 불분명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걸까? 추측성 보도와 어렴풋이 보이는 물밑작업은 호기심을 부르는 제1요소다. ‘그 영화’가 바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일 것임이 밝혀진 순간, 호기심은 열광적인 기대로 변했다.

제임스 카메론은 1997년부터 1위를 지키던 자신의 영화 [타이타닉]을 거의 7억 달러 차이로 젖히고, 그 자리에 [아바타]를 올려놓았다. 한국에서도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외화로 기록됐다. 전사를 알던 사람들의 기대보다도, 상영관을 나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은 사람들의 기대가 더 컸을 것이다. [아바타]는 본격적인 3D 시대를 광대하게 열어젖혔다. 아름답고 정교하게 설계된 외계행성을 배경으로 처음 보는 종족이 ‘이크란’을 타고 코앞으로 날아드는 모습에 관객들은 전율했다. 미국에서는 예매의 90%를 3D 상영이 차지했고, 블록버스터 개봉 때마다 우리나라 전국의 IMAX 상영관에 자리 하나 없어지는 전통이 시작된 영화이기도 하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크리스마스 캐롤] 등으로 IMAX 3D 상영이 막 시작되던 9년 전 그 겨울 이후로 영화는 전혀 새로운 미디어가 되었다.

[아바타]는 이제부터 기대할 속편 계획이 자그마치 다섯 편이나 나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허나 표류와 배회가 이 작품의 숙명인지, 2014년에 2편을 내놓겠다는 개봉 직후의 계획이 수차례 미뤄지다 마침내 작년 여름에야 촬영에 들어갔다. 지금 발표된 [아바타 2]의 개봉 예정일은 2020년 12월 18일, 꼭 11년 전 앞선 영화가 전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바로 그 날이다.

 

 

 

2018년 – 블랙 팬서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블랙 팬서]는 애초에 기대, 아니 어떤 바람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이제는 조금 이름이 바랜 액션 영웅 웨슬리 스나입스가 [블랙 팬서]를 영화화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건 1992년. 그가 성공가도에 오른 직후였다. 그간 할리우드 영화가 흑인을 다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전에 없던 흑인 캐릭터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장엄함을 알리겠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2005년 마블 스튜디오 출범과 함께 발표된 10편의 예정작에 [블랙 팬서]가 들어간 것도 그가 장장 10년 넘게 마블과 논의를 지속한 결과다.

일단 MCU 라인업에 오르고 나니, 성사만 된다면 이 우주의 첫 번째 비백인 히어로 단독 작품이 될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쏟아졌다. 기자들이 틈만 나면 진행 여부를 묻는 와중에 스튜디오는 와칸다를 구현할 방식을 오래도 고민했다. 가장 먼저 주인공 채드윅 보스만이 발탁된 것이 2014년, 2년 뒤 완전한 출연진이 꾸려지며 [블랙 팬서]는 흑인 배우의 비율이 가장 높은 최초의 마블 영화가 되었다.

다시 2년을 기다려 올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블랙 팬서]는 서사에 단단히 발 디딘 캐릭터들과 치기가 남은 듯 능숙한 리듬감으로 만들어진 훌륭한 오락영화였다. 또한 거대한 상징이 되기에도 마땅한 영화였다. 풍경, 음악, 의상, 억양까지, 스크린을 가득 채운 자긍심에 대한 전 세계 흑인 커뮤니티의 반응엔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다. 이 상징이 한 인종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룰은 부서졌고, 히어로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백인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다. 이제야말로, 무엇이든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