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선택의 판단 기준? 예고편, 볼까 말까

 

설렘과 원망, 기대와 실망이 함께 뒤섞이는 예고편의 모든 것

 

 

by. 빈상자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17년 11월 공개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예고편은 하루 만에 2억 3천만 뷰를 넘어서는 최고 기록을 세웠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예고편은 그 자체가 커다란 문화 현상이었다. 예고편 공개와 거의 동시에 사람들의 반응을 담은 수많은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고, 2분 남짓의 예고편을 자잘하게 쪼개어 분석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여러 매체를 메웠다. 영화 개봉만큼이나 많은 관객이 기다려왔고, 또 반응한 2분짜리 콘텐츠였다.

 

의심할 여지 없이 예고편은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의 대표적인 광고 형태다. 인터넷과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의 성장으로 예고편을 둘러싼 환경은 지금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이나 TV에서 이따금 보던 예고편은 이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지속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유튜브에서 공개되는 예고편 조회수는 2016년만 해도 평균 2,500만 뷰였지만 2018년에 들어서는 3,800만 뷰를 넘어서면서 이 성장세가 언제쯤 꺾이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동영상에 익숙한 세대를 배경으로 예고편 시장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극장용, 플랫폼별, 등급별, TV 방영용, 제작 뒷이야기와 티저까지 길이도 용도도 다양한 예고편이 제작되고 활용된다. 프랜차이즈와 블록버스터의 영화의 비중이 높아지고 스트리밍 서비스에 빼앗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려는 간절함이 커지면서 예고편에 투자하는 예산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예고편에 또 속았다’고 하지만 최근 미국의 내셔널 리서치 그룹의 여론조사에서 로튼토마토 평점이나 친구의 영화평보다 예고편을 신뢰한다는 관객들이 제일 많았다. 다음에 볼 영화를 결정할 때 많은 사람이 여전히 배우나 감독보다 예고편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지표다.

 

 

이미지: MGM

 

하지만, 예고편 시장이 커지고 많아질수록 예고편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예고편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편리함은 반대로 극장 개봉 전에 예고편을 피하기가 어렵다는 뜻도 된다. 그런 상황에서 플롯 대공개를 넘어서 스포성 예고편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평균 150초 동안 120 프레임을 오가던 예고편은 이제 120초 동안 350 프레임을 넘는 빠른 편집을 보이며 쩌렁쩌렁한 사운드와 함께 관객들의 눈과 귀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굳어진 예고편만의 스타일이나 관객을 낚는 속임수와 같은 행태도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이에 아예 ‘예고편 블라인드’를 선포하며 관람 전에 예고편을 적극적으로 피하려는 관객들도 증가하고 있다. 극장에서 본 영화 상영 전 예고편을 보는 시간이 설렌다는 관객과 이때 아예 눈 감고 귀를 막는 관객들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예고편은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오히려 인터넷 시대가 무르익으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설렘과 원망, 기대와 실망이 함께 뒤섞이는 예고편이 더 궁금해졌다.

 

 

 

시작은 이랬다

최초의 예고편은 1913년 11월, 뉴욕 로우스 극장의 홍보 담당이었던 닐스 그랜룬드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플레저 시커스(The Pleasure Seekers)]를 홍보하기 위해 리허설 자료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것이었다. 본격적인 최초의 영화 예고편도 바로 한 달 후인 12월에 나왔다. 역사상 두 번째 시리즈 영화이자 처음으로 클리프행어를 보여주기도 한 영화인 [캐틀린의 모험(The Adventures of Kathlyn)]은 모두 13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이다. 영화는 한 편이 끝나고 나면 예고편을 보여주며, 이어지는 다음 편에도 관객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시리즈라는 특성이 자연스럽게 예고편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이미지: 셀릭 폴리스코프 컴패니

 

당시 영화들은 10~20여분 내외로 짧았고 극장에서는 영화에 짧은 영상, 뉴스, 애니메이션 등과 같이 묶어서 계속 반복해서 상영했다. 관객은 주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도 남아서 다른 영상들을 마저 다 보곤 했다. 상영하는 영화들 사이에 다른 영화의 홍보영상을 넣는 닐스 그랜룬드의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다. 곧 로우스 극장 체인 전체로 퍼졌고 다른 극장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캐틀린의 모험]처럼 예고편은 처음에는 영화가 끝나면 나왔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가장 일반적으로 영화 예고편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trailer’가 거기서 유래됐다. 그런데 차츰 영화가 점차 길어지고 단편 상영이 늘어나면서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면 바로 자리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영화가 끝나면 예고편이 있습니다’하고 공지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관객을 붙잡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1930년대 이르러서 대부분의 예고편은 영화 전에 상영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익숙한 방식대로.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는 영화 수만큼의 많은 예고편이 있다. 그런데 예고편의 스타일과 리듬은 영화만큼 다양하지 않다. 예고편은 영화 자체보다 영화가 속한 장르의 스타일과 리듬의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스릴러면 긴장감 있게, 로맨틱은 사랑스럽게, 액션에는 폭발 장면이 다 모이고, 코미디에는 웃음이 넘치며, 공포는 관객을 놀라게 하는데 충실하다. 실은 영화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경우에도 예고편만은 반드시 그렇다.

 

한때 예고편의 내레이션을 지배하던 목소리가 있었다. 1960년대부터 2008년 사망하기 전까지, 성우 돈 라폰테인은 [터미네이터 2]와 [슈렉], [에이리언 3] 등 5천여 편의 영화 예고편에서 ‘신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깊고 강렬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예고편하면 떠오르는 목소리가 되면서 그가 내레이션만 하던 광고에 나중에는 직접 등장할 정도로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아듣는 그의 목소리와 내레이션 스타일이 오히려 예고편의 클리셰가 되면서 그의 사망을 기점으로 내레이션에 의지하는 예고편이 줄어들었다.

 

 

라폰테인 이전에도 할리우드는 예고편에서 내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40~60년대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은 각 스튜디오별로 대표적인 목소리가 있어서 목소리에 따라 스튜디오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레이션의 목소리와 스타일이 같을수록 예고편들을 서로 구분하는 차별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된다.

 

 

 

지금 나 따라한 거야?

예고편에서 한번 효과를 본 방법은 다른 예고편으로 급속히 확산하기도 한다. 한스 짐머가 [인셉션]을 위해 만들고 예고편에서도 사용된 웅장하고 깊은 관악기 소리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이에 [월드워Z], [스타트렉 다크니스],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영화들도 예고편에서 ‘한스 짐머의 혼(Horn)’을 따라 했으며, 아직까지도 빈번하게 복제되고 있다.

 

 

최근 예고편의 또 다른 경향 중의 하나는 기존의 음악을 새롭게 편집해서 커버 녹음한 뒤에 예고편 전체를 지배하는 음악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예고편에서 사용된 음악 대부분은 막상 영화 안에서는 들을 수 없다. ‘trailerization’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2010년 [소셜 네트워크]가 라디오헤드의 ‘Creep’을 편곡해서 사용했을 때 만해도 신선해 보였지만 최근에는 너무 자주 사용되면서 이제는 영화팬과 음악팬 모두로부터 욕을 들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되었다. [샌 안드레아스]가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을, [지오스톰]이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오션스8]가 낸시 시나트라의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을 ‘trailerize’하면서 그 전철을 밟았다.

 

 

 

 

예고편을 영화사에서 만들지 않는다고?

 

예고편의 탄생이 보여주듯, 예고편은 처음부터 영화제작사에서 주도하지 않았다. 최초의 예고편이 탄생한 후 오래지 않은 1919년에 NSS(내셔널 스크린 서비스)라는 홍보대행사가 설립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팽창과 같이 성장한 NSS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최고 8개의 대형 스튜디오들과 계약을 맺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1980년대 들어 시장환경이 변하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전까지, NSS는 한때 90%에 이르는 할리우드 영화의 예고편과 포스터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미지: Golden Trailer Awards

 

특이한 것은 NSS는 처음에 영화사의 의뢰는 물론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 필름들을 무단으로 가져다 예고편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예고편을 들고 NSS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을 돌며 팔기 시작했는데, 영화사들은 NSS를 저작권 위반으로 고발하는 대신 계약을 맺고 예고편을 의뢰하게 되었다.

 

NSS 이후에도 예고편 제작환경의 큰 들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여전히 외부 대행사에 예고편 제작을 의뢰하고 있다. 한 편의 영화 예고편을 위해 다수의 에이전시가 경쟁하고 스튜디오는 그중에서 선택한다. 예고편 시장이 커지면서 2000년대 초기 12곳에 불과하던 에이전시는 이제는 100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NSS의 독점이 사라지고 다수의 회사가 예고편 제작을 위해 경쟁하면서 예고편도 그만큼 다양해질 것 같은데 앞서 짚어본 대로 실상은 그렇지 않다. 스튜디오의 눈에 들어야 하는 에이전시들은 광고주인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입맛을 잘 알고 있다. 이를 거스르는 모험은 잘 시도하지 않으며 이미 검증된 방식과 목소리를 선택하며 주로 안정적인 방법을 택한다.

 

 

 

예고편인가? 스포인가?

 

예고편 제작을 외주로 맡기는 오랜 할리우드 전통은 반복되는 문제를 낳았다. 예고편 제작 과정에 감독의 개입이 어렵거나 제한되면서 에이전시가 만든 예고편이 감독의 의도와 특징이 녹아든 영화와는 이질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에 감독이 나서서 자신이 만든 영화의 예고편에 아쉬움을 드러내거나 당황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앨런 테일러 감독은 존 코너의 정체에 대한 스포까지 포함한 예고편이 자신이 계획했던 것보다 너무 많이 보여주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쥬라기 월드]를 연출한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도 비슷한 심정을 고백한 적이 있다. 예고편의 선택이 할리우드의 전통이고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해는 한다면서도 예고편을 보고 당황스러웠던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최근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간절할수록 스포일러성 예고편들도 늘어나고 있어서 많은 감독과 팬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예고편들이 극적인 장면들을 점점 더 많이 보여주려고 하면서 관객이 그러한 요소들을 영화의 흐름 속에서 발견하길 바라는 감독들의 바람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예고편은 전체 플롯을 거의 ‘출발! 비디오 여행’ 수준으로 공개하면서 많은 팬의 원성을 샀다. 한 매체는 영화 마지막 5분 빼고는 다 보여줬다고 비난했고, 팬들 사이에는 예고편을 보지 말고 영화를 보라는 ‘경고’가 긴급재난문자처럼 퍼졌다.

 

 

감독이 직접 나섰다

 

감독의 바람과 달리 현재 예고편 제작에 관여하거나 직접 제작할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제임스 카메론, 크리스토퍼 놀란, 기예르모 델 토로와 같이 영향력이 있는 감독들이나 가능한 일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NSS의 독점이 견고하던 196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스탠리 큐브릭과 같은 소수의 작가주의 감독들 정도만 천편일률적인 예고편을 대신해 직접 예고편을 제작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1960년 [싸이코]의 6분 30초짜리 예고편에는 알프레드 히치콕이 직접 출연하여 영화의 배경이 되는 모텔과 집안을 마치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리우드의 가이드처럼 상세하게 소개해준다. 영화 클립 하나 없이 감독의 세트장 소개만으로 이루어진 예고편은 지금까지도 사례가 드문 독특한 예고편이다.

 

 

 

비슷한 시기의 또 다른 작가주의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도 비디오아트와 같은 예고편들을 남겼다. 1962년 사진 몽타주와 거의 이름만 반복하는 [로리타]의 예고편에 이어 1964년에 공개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예고편 또한 독창적이었다. 화면을 거의 메운 폰트 사이사이에 거의 스쳐가는 듯한 짧은 영상들과 단발적 대사들은 궁금증만 유발할 뿐 영화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단서를 주는 것도 거부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2017년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예고편이 관객들의 영화 관람을 방해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며 극장에서 발견하게 되는 재미를 누리고 싶다고 했다. 하다못해 예고편을 만드는 사람들조차 예고편이 영화를 망치고 있다는 고백을 곳곳에서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예고편을 보고 안 보고는 여전히 관객의 선택일 것이다. 일면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에 수많은 관객들과 함께 예고편을 보며 반응하는 과정은 영화 관람이라는 전체의 과정에 포함된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는 극장에 가기도 전에 웹을 통해 전 세계에 동시에 공개되는 예고편을 두고 많은 팬들이 비슷한 경험과 유대감을 공유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눈을 감아도 예고편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즐기는 관객들도 많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낚시금지, 그리고 제발 스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