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스럽거나 황당하거나, 촬영장에서 배우들의 요구사항

 

by. 예하

 

아무 이유 없이 현장에서 ‘깽판’을 치는 톱배우의 모습은 드라마에 지겹도록 등장하는 클리셰지만, 실제론 굉장히 디테일한 이유가 (몹시 이상한 내용일지라도) 있는 경우도 많다. 어떨 땐 놀랄 만큼 멋진 결과를 낳고, 어떨 땐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배우들의 요구사항.

 

 

 

나를 찾아줘 –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좀 심했다는 건 알지만 야구팬으로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섬뜩하고 천재적인 수작 [나를 찾아줘]의 원래 대본에서 벤 애플렉이 맡은 닉 던은 뉴욕 양키즈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감추려 한다. 문제는 그가 속수무책인 야구팬이었다는 점이다. 평생 보스턴 레드삭스를 응원해 온 애플렉에게 양키즈 모자를 쓰는 건 팀에 대한 배신이자 모욕과도 같았다. 애플렉은 놀랄 만큼 강경하게 저항했고, 심지어 촬영을 나흘이나 중단해버렸다. 미친 짓인 건 알지만 다시 한번 야구팬으로서 눈물을 흘리며 그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됐냐고? 감독 데이빗 핀처와 타협한 끝에 뉴욕 메츠 모자를 썼다. 정말이지 마음이 찢어지는 얘기다.

 

 

 

스네이크 온 어 플레인 – 제목 때문에 왔는데…!

이미지: 뉴 라인 시네마

 

본래도 좀 이상한 사람이지만, 현장에서 사무엘 L. 잭슨의 기행은 끝이 없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그의 특기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눈에 띄기 위해, 그리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이라서 보라색 광선 검을 달라는 주장을 관철시켜 팬들의 뭇매를 맞는 한편, [펄프픽션](1994)에서는 소품 담당이 잘못 사 온 가발에 꽂혀 그걸 그대로 쓰고 등장했다. 2006년에 나온 일종의 괴작 [스네이크 온 어 플레인]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건 오직 그 제목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수백 마리의 뱀들이 득실거리는 비행기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대단히 직접적으로 표현한 제목이다. 윗분들이 영화의 제목을 [퍼시픽 플라이트 121]로 바꾸려 했을 때 그가 격분한 것도 당연하다. “살면서 들은 것 중 최고로 멍청한 아이디어”라는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어벤져스 – 일 끝나고 밥 먹을래? 

이미지: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이번엔 태초의 영화 [어벤져스] 얘기다. 토니 스타크가 지구로 돌아와 마침내 눈을 썼을 때 제일 먼저 한 말은 “슈와마 먹어 봤어?”다. “한 두 블럭쯤 가면 슈와마 파는 데가 있어. 뭔진 모르겠는데 먹어보고 싶어.” (뭐냐 하면 케밥의 일종.) 이 어처구니없고 멋진 대사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코멘트에서 탄생했다. 본래 대본에는 단순히 “다음엔 뭐야?”라고 적혀 있었고, 로다주는 더 재치 있는 대답을 원했다. 이에 동의한 조스 웨던은 한 줄짜리 대사를 장장 3페이지나 적어 보냈고, 결국 이 명대사가 나오게 된 것이다.

더 유명한 얘기는 따로 있다. 국내판에선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끈 쿠키다. 봉두난발에 너덜너덜해진 어벤저들이 슈와마 가게에 모여 앉아서 말없이 식사를 하는 모습은 너무나 뻘쭘하고 웃겨 사랑스러울 지경이다. 이 장면은 이미 [어벤져스]가 할리우드 프리미어를 치른 이후에 촬영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자세히 장면을 돌아보시길. [설국열차] 촬영 때문에 기른 턱수염을 손으로 애써 가리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토르를 보게 될 테니.

 

 

 

마이애미 바이스 – 유혈과 배신

이미지: UIP코리아

 

[마이애미 바이스]의 촬영 현장은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촬영장에 난입하려는 괴한과 경호팀원 사이에 실제 총격전까지 벌어졌으니 더 이상 얹을 말이 없다. 하지만 가장 끔찍했던 건 주연 제이미 폭스의 강짜였다. 비록 [마이애미 바이스]를 먼저 계약하긴 했지만 [레이]로 오스카를 수상한 이후 폭스는 개인 제트기와 출연료 인상 및 촬영상의 각종 요구를 내놓았다. 슬슬 분위기가 험악해지던 무렵 문제의 총격전이 발생했고, 폭스는 짐을 싸서 떠난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거장 감독 마이클 만은 영화의 방향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했고, 1억 3,500만 달러를 제작비로 쓴 영화는 1억 6,400만 달러를 벌어들여 간신히 본전치기를 했다.

 

 

 

닥터 모로의 DNA – 선배님 왜 이러세요?

이미지: 대우시네마

 

[닥터 모로의 DNA]는 20년 전 국내 개봉 당시에 종교계 인사들을 초청해 특별 상영을 할 정도로 충격적이고 이상한 영화였다. 유엔 봉사단의 일원인 주인공이 열대의 외딴섬에 불시착해, 반인반수의 괴물을 만들고 있는 미친 천재 유전학자의 손아귀에 잡히는 내용이다. 이 미친 천재 유전학자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대부]의 돈 콜리오네 말론 브란도다. 문제는 이 대배우가 영화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캐릭터에게 햇빛 알레르기를 부여해 엄청난 두께의 하얀 메이크업을 하게 만들고, 머리에는 얼음통을 뒤집어썼으며, 언제나 난쟁이 배우가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고 따라다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요구는 모두 영화에 반영되었고, 플롯만으로도 기괴하던 영화에 이해할 수 없고 소름 끼치는 비주얼이 더해져 잊을 수 없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미이라 – 스타인 거 안다구요..

이미지: UPI 코리아

 

톰 크루즈가 영원히 우리 세대의 영웅일 거란 데는 의심이 없지만, 고집스럽게 모든 액션 씬을 직접 소화하는 50대 후반 액션 히어로의 고집이 멈출 때를 모르는 모양이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2017년 개봉한 리부트 영화 [미이라] 촬영 현장에서 온갖 세세한 디테일에 관여하고 대본 전체를 입맛에 맞게 뜯어고쳤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미이라와의 출연 분량 싸움이었다. 고대에서 간신히 깨어난 이 빌런보다 자신의 스크린 타임이 더 길거나 적어도 같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결국 [미이라]는 최악의 리부트 영화 중 한 편으로 꼽혔다. 글쎄, 풍문을 종합해보면 제목이 [미이라]가 아니라 [톰 크루즈]였길 바란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