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 10년, 때로는 농담 같거나 놀라운 이스터 에그 6

 

by. 예하

 

 

MCU 10주년이었던 올해도 이제 끝을 바라본다. 10년간 이 새로운 우주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정교한 순서로 맹렬히 쏟아진 영화들은 단순히 하나의 프랜차이즈가 아닌 거대한 문화적 제국을 세웠다. 설사 이미 아는 이야기일지라도, 한 해의 끝에서 마치 졸업앨범을 넘겨 보듯 지난 10년을 돌아보자. 한 세계의 조밀한 구성과 장난스런 윙크를 오가는, 오직 MCU여서 가능한 이스터 에그.

 

 

 

여기서 농사가 왜 나와?!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수많은 우주를 거미줄처럼 엮기 위해서는 철저한 세공이 필요하다. 마블 히어로의 대부분은 코믹스에서 오지만, 코믹스의 내러티브 전체를 영화에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언제나, ‘원작’이라기엔 애매하지만 분명 기반을 둔 코믹스가 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역시 1991년에 발표된 마블 코믹스의 [인피니티 건틀렛] 시리즈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둘 간의 연결고리는 액션신 등에서 소소하고 즐겁게 나타나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바로 마지막이다. 타노스가 자신의 ‘업적’을 이룩하고 새로운 집에 앉아 뜨는 태양을 바라볼 때, 스크린 구석에 그가 사용한 갑옷으로 만든 허수아비가 등장한다. 코믹스 [인피니티 건틀렛]의 마지막에 타노스가 농사를 지으며 은둔하는 삶을 선택했음을 떠올리게 하는 도구다. 그래도 MCU의 타노스가 설마 농사라니, 이스터 에그겠지, 라고 넘긴 관객들이 있다면 긴장하시길. 지난 8일 공개된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예고편에 이 말도 안 되는 허수아비가 당당히 등장했으니.

 

 

 

당신이 없었다면 캡틴의 친구는…. –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이미지: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MCU에서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 앞에 실물을 드러낸 건 비단 얼마 전 고인이 된 스탠 리 뿐만이 아니다. [토르] 등의 작품에도 오리지널 코믹스 작가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장면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 등장한다. 할리우드의 원조 아메리칸 히어로 로버트 레드포드가 분한 알렉산더 피어스가 윈터 솔저를 심문할 때 방에 서 있던 심복 중 하나가 바로 코믹스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아이즈너 어워드’를 수상한 에드 브루베이커 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이스터 에그로 치부하지는 말자. 브루베이커는 코믹스에서 영영 죽어 있던 버키 반즈를 2005년 손수 되살린 ‘히어로’다. 그의 비전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사랑하는 MCU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앞으로도 그의 등장을 환영해야 할 이유다.

 

 

 

영화만큼 깨알 같은 – 스파이더맨: 홈커밍

 

이미지: 소니 픽처스

 

아마도 지금 마블의 우주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스파이더맨일지도 모른다. 에너지가 넘치는 이 틴에이저 슈퍼히어로는 단독 영화와 [어벤져스] 시리즈를 오가며 주로 우습고 때로 놀랍도록 감동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특히 단독 영화 [스파이더맨: 홈 커밍]에는 캐릭터와 영화만큼 깨알 같은 이스터 에그가 숨어 있다.

먼저 스파이디에게 훈계를 내리는, 무려 ‘아시안’ 교장인 모리타의 집무실에는 그의 조상 짐 모리타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다. 이게 왜 특별하냐고? 그가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에 등장한 군모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교장의 조상은 캡틴 아메리카와 나란히 싸우던 ‘하울링 커맨더스’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이미지로 드러나는 유니버스의 흔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워드 스타크와 에이브러햄 어스킨 박사가 벽화에 등장하는 건 물론이고, 실험실에 붙은 과학자들의 마지막 순서를 장식하는 건 바로 우리의 헐크, 브루스 배너 박사다. 이 정도면 유니버스의 연결도, 이스터 에그도 아닌 귀여운 농담 같다. 지나치게 잘 만든 농담이라고 부를 수 있을, 이 유쾌한 걸작처럼 말이다.

 

 

 

뮤턴트 비행기만큼 높이 – 아이언맨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엑스맨과 마블 세계관이 합쳐지는 얘기를, 그 상상을 대체 언제부터 해왔던가? 디즈니와 폭스의 ‘딜’이 체결된 지도 몇 년, 어벤져스 멤버들과 엑스맨 뮤턴트들은 완전히 분리된 세계에서 서로를 모른 채 살아왔다. 그러나 알고 보면 마치 가뭄의 단비처럼 이들끼리 주고받은 신호들이 있어왔다.

[아이언맨]에서 처음으로 슈트를 테스트하던 토니 스타크는 슈트를 입고 날 수 있는 최대 고도를 시험하기 위해 자비스에게 ‘SR-71 블랙버드’의 고도 기록을 묻는다. 왜 정확히 이 비행기를 언급했을까? 물론, 이 비행기는 실재하는 모델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 기종이 바로 엑스맨들이 임무를 위해 타고 다니던 ‘X-제트’, ‘더 블랙버드’라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전부터 이 두 세계가 천천히 합쳐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우주의 콜렉션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이미지: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그 인성에 대해서는 길고 엄중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감독 제임스 건이 얼마나 진성 마블 오타쿠였는지를 알아보는데 그리 긴 시간이 들지 않는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1편에서 깊은 인상(과 쿠키까지) 남긴 ‘콜렉터’의 콜렉션에 우리의 모든 친구들이 들어 있으니까. 베네치오 델 토로가 연기한 이 캐릭터는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우주의 각종 이상한 것들을 모은다. 무심하게 쓰윽 지나간 그의 컬렉션에는 [어벤져스]에 등장한 치타우리, [토르: 다크 월드]에 등장한 다크 엘프, 그리고 코스모 더 스페이스 도그와 하워드 더 덕까지 등장하니, 그가 그루트와 로켓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당연해 보인다.

 

 

 

우리 우주의 번호 – 토르: 다크 월드

 

이미지: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마블이 창조한 우주는 수백 가지가 넘고, 우리가 흔히 MCU라고 부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마블 유니버스 가운데 딱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지구-nnn’ 번으로 분류되는 이 수많은 우주에서는 나치가 승리하고, 스파이더맨이 살인마가 되며, 브루스 배너가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변형을 막는다.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읽고 쓰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도 마블의 수많은 우주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랑한 MCU의 번호는 ‘지구-199999’이며, 마블 세계관의 대부분의 사건이 발생하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은 우주는 ‘지구-616’이다. [토르: 다크 월드]에서 9차원을 설명하던 에릭 셀빅 박사가 칠판에 ‘616 우주’라고 휘갈겨 쓸 때, 이스터 에그를 찾았다는 작은 기쁨보다 더 큰, 어쩐지 감동 비슷한 것이 몰려드는 건 수천 년을 넘나드는 이 장대한 우주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