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전주국제영화제 결산③ – 에디터 DY (포화 속의 텔아비브, 욕창 외)

5월 3일 오전 8시 50분,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올해 두 번째로 찾는 전주국제영화제, 과연 어떤 작품들을 만나게 될지 차에 타는 순간부터 설렜다(스타워즈 행사를 올해 전주에서 함께 하는 이유도 당연히 포함되어있다). 문제는 버스가 예정보다 한 시간 가량 늦게 도착하면서 에디터가 세웠던 일정에 조금이지만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오후 1시 가까이 되어서야 도착한 전주는 익숙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서둘러 영화제 현장으로 택시를 잡아서 갔고, 그곳에서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장 예매로 표를 구할 예정이었기에 원했던 작품을 전부 보기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올해도 총 여덟 편의 영화 중 두세 편은 2 지망, 3 지망 영화들이었다. 그러나 역시 영화제의 묘미는 우연히 숨겨진 보석 같은 작품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에디터가 올해 전주에서 만난 작품들을 부족한 솜씨지만 간략하게 소개해볼까 한다.

 

 

“예상치 못한 순간 다가온 최고의 영화”

1. 포화 속의 텔아비브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솔직히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슷한 시간대의 1순위 [악몽의 성]과 2순위 [서른]이 몽땅 매진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고른 작품이 바로 [포화 속의 텔아비브]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렇게 올해 전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나게 됐다. 이 영화, 세계적으로 민감한 이슈로 시종일관 예상치 못한 ‘빅 재미’를 선사했는데, 5분 간격으로 극장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포화 속의 텔아비브]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배경으로 한 블랙 코미디다. 드라마 제작 인턴인 살람은 출퇴근을 위해 매일같이 삼엄한 이스라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검문소 지휘관 아씨가 살람이 ‘포화 속의 텔아비브'(극중 드라마 제목) 스태프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드라마 열혈 시청자인 아내를 위해 –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 각본 수정을 요구하면서 벌어지는 각종 해프닝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의 묘미는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도 있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굉장히 민감한 사안인 중동 분쟁을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것에 있다. 영화는 어느 한쪽을 편들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드라마 제작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양국의 치열하면서도 어이없는 신경전을 통해, 관객에게 현실의 아이러니함을 일깨워준다. 

 

한마디: 올해 전주에서 찾아낸 보석 같은 블랙 코미디

 

 

“우리가 살아가는, 혹은 버티는 모습에 대하여”

1. 욕창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올해 전주에서 만난 첫 한국 경쟁 작품이다. [욕창]은 뇌출혈로 쓰러진 길순의 남편 창식, 함께 지내며 길순을 돌보는 불법체류 간병인 수옥, 그리고 창식과 길순의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였던 – 그러나 위태로웠던 – 이들의 이해관계는 길순이 욕창에 걸리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살이 썩어 들어가는 욕창이 부패한 욕망의 시발점이라, 흥미로운 전개다.

[욕창]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이 부패한 욕망을 가슴에 품고 있다. 수옥은 국외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불법적으로 한국에 남으려 한다. 평소 수옥에게 마음을 품었던 창식은 그녀가 비자를 받기 위해 다른 남자와 위장결혼을 하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럴 바에 자신과 위장결혼을 하자는 어이없는(?) 제안을 한다. 당연히 자식 입장에서는 어머니가 살아있음에도 저런 제안을 하는 아버지가 이해가 될 리 없다. 그러나 이들도 길순에 대한 효심 때문에 창식을 비난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들이 물려받아야 할 재산이 수옥에게 돌아가는 것이 못 마땅하다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우려도 포함된 비난이다.

[욕창]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이들이 창식의 집에 모여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헐뜯고 힐난하는데, 방에서 듣던 길순이 온 힘을 다해 침대에서 몸을 내던지며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그리고 ‘이들의 욕망이 얼마나 부패하고 때 이른 것인지’를 절규하듯 보여주는 장면은 관객의 입안 가득 쌉싸름한 맛을 남긴다. “살아있기에 부패한 욕망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럴 수 없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 이 작품은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한마디: 살아있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부패한 욕망에 대하여

 

 

2. 애틀란틱 시티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이 작품에 끌렸던 이유는 단순하다. 에디터 역시 해외 경험을 꽤 오래도록 했고, 혼자 지내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동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주인공에게 선사한 시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힘들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어디까지 괴롭히고 바닥을 보여줘야 만족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올해 만난 두 번째 한국 경쟁작, 바로 [애틀란틱 시티]에 대한 이야기다.

 

[애틀란틱 시티]는 타지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10대 청소년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가족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사업 실패로 엄마와 여동생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아버지는 자취를 감추면서 한인 가족의 삶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홀로 미국에 남겨진 채 한국인 보호소에서 머무는 민국의 일상은 말 그대로 시련 뒤에 시련이다. 돈 몇 푼이라도 벌기 위해 시작한 인형탈 아르바이트는 소득이 없고,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무료 강습소를 찾아가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보호소를 운영하는 목사에게 눈칫밥만 먹고살던 그때,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라주형 감독은 민국을 정말 벼랑 끝까지 몰고 간다. 도박 빚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사람들의 돈을 훔쳐 카지노로 달아난다. 민국은 그런 아버지 때문에 쫓겨나게 되고,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의 발걸음이 당도한 곳은 카지노, 그리고 민국은 먼발치에서 아버지가 피해자들에게 맞아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만다. 이 장면이 에디터를 너무나도 괴롭게 해서, 사실 결말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최근 국내 다양성/독립 영화의 트렌드가 각박한 삶을 버텨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려는 것은 잘 안다. 이는 연출자의 정치적 성향 때문일 수도 있고, 젊은 세대가 마주한 현실이 이토록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일 수도 있다. [소공녀], [이월], [박화영] 등 여러 작품이 뇌리를 스쳐간다. 이런 작품들이 보여주는 냉혹한 현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극적이기는 하나 얼마든지 있을법한 이야기고, 또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런 부류의 다양성 영화에 지쳤던 에디터에게 이 작품은 상당한 피로감이 느껴졌던 경험이었던 것 같다. 

 

한마디: 도대체 어디까지 괴롭혀야 만족할까?

 

 

3. 교환일기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의 임흥순 감독과 일본의 모모세 아야 감독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합작한 작품이다. 두 감독이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상대에게 보내면, 상대가 영상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내레이션으로 풀어내는 독특한 방식을 택한 작품이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르게 해석하는 두 감독의 시선, 그 과정에서 영상과 감독들의 음성이 미묘하게 틀어지는 어색함이 소통과 해석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할 수 있게끔 한다. 앞서 언급한 이질적인 다름이 묘하게 마음을 이끌었다.

 

한마디: 타인의 시선 속에 나의 생각을 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작품”

1. 어둠으로의 초대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아르헨티나 출신 가스통 솔니키 감독의 추억 되새기기. 그는 비엔나 국제영화제 출품을 계기로 가까이 지냈던 영화제 디렉터 한스 후스의 부고를 듣고 큰 상심에 빠진다. 친한 친구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가스통 솔니키는 한스가 머물렀던 공간, 즐겨 찾았던 카페와 음식점, 그리고 그와의 추억이 진하게 남은 비엔나의 풍경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보통 인물의 삶을 그릴 때에는 다큐멘터리나 전기 영화로 그릴 것이라 여겼던 에디터에게는 다소 실험적으로 느껴진 작품이다. 평소 둘을 잘 알던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작품일 수도 있겠으나, 둘을 잘 알지 못하고, 또 대사가 거의 없이 풍경과 인물의 표정, 한 사람의 추억이 담긴 도구들로 꽉 찼던 화면을 보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졌다.

 

한마디: 공감하지 못했던 다른 이의 추억 돌아보기

 

 

“스타워즈 시리즈”

에디터는 23년차 [스타워즈] 골수팬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스타워즈데이 행사와 함께 [스타워즈] 시리즈 전편을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월트 디즈니 코리아에게 무한한 감사를). 여건만 허락했다면 8편 모두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기에 프리퀄과 오리지널, 그리고 시퀄 삼부작에서 가장 좋아했던 작품을 한편씩 택해 보기로 했다.

 

1.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이미지: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는 프리퀄 삼부작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선택받은 자’였던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어둠의 길로 빠져 그 유명한 악당 다스 베이더가 되는 과정을 그리는데, 어릴 적 다스 베이더의 탄생 비화를 보며 눈물을 펑펑 흘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이 포인트에서는 울지 않는다.)

 

오랜만에 큰 화면으로 [시스의 복수]를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시리즈 전체에서 최고로 꼽히는 아나킨과 오비완의 광선검 대결은 보는 내내 가슴이 뛰었고, 파드메의 사망 소식을 접한 아나킨의 절규는 가슴을 후벼 팠다. 그러나 역시 최고의 명장면은 갓난 루크를 품에 안고 타투인에서 두 개의 태양을 바라보는 오웬과 베루의 모습이었다. 볼 때마다 울컥하는 장면이지만, 이 장면이 ‘스카이워커 사가’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었기에, 그리고 그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금은 알고 있기에 감동이 더 컸던 모양이다.

 

한마디: 그는 어떻게 전 세계가 사랑하는 악당이 되었을까?

 

 

2.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이미지: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이 작품을 대형 스크린으로, 그것도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만날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일이다. 영화 시작 전 코리아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30분간 [스타워즈] 시리즈 주제곡들을 연주한다는 소식에 두말 않고 바로 예매했다. 작년 ‘스타워즈 인 콘서트’를 가지 못한 나에겐 최고의 선물을 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은 다스 베이더의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 루크 스카이워커의 이야기다. 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며, 에디터 역시 아직까지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애정을 가진 작품이다. 풋풋한 루크 스카이워커와 레아 오르가나, 한 솔로의 모습을 큰 화면으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지금은 누구나 알지만 처음 봤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던 “내가 네 아버지다”와 “사랑해요” – “나도 알아”로 이어지는 명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입으로 대사를 따라서 읊었다(필자 옆 자리에 앉았던 외국인 관객은 아예 소리 내서 따라 읽고 박수 치더라).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아무래도 집에 가서 한 번 또 봐야 할 것만 같다.

 

한마디: 드디어 큰 화면으로 본 명작 중의 명작

 

 

3.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타워즈] 팬 사이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이지만, 뭐 어떤가? 필자도 이 작품이 저지른 설정 파괴나 분위기를 깨는 불필요한 러브라인 등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하지만, 사실 “영화가 나와주기만 해도 고맙다”라는 입장이 조금 더 강한 편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볼 때마다 – 상영 당시에는 극장에서 3차까지 밖에 찍지 못했다 – 처음에는 넘길 수 있었던 허점들이 점점 눈에 띈다. 그럼에도 에디터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볼 때마다 눈물을 펑펑 쏟는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루크 스카이워커가 두 개의 태양을 바라보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때의 모습 때문이다. 필자의 20년 넘는 영화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안녕을 고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그에게 찾아왔던 위기들 – 팬들 사이에서 ‘나의 루크는 이렇지 않아!’라며 거부하는 그 장면들 – 조차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으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아직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은 모양이다. ‘스카이워커 사가’의 마지막을 알리는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올해 말 보면서 또 얼마나 눈물을 쏟을지…

 

한마디: 논란의 그 작품, 그럼에도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