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망했거나 알찬 성과를 거뒀거나

 

올해만 벌써 천만 영화 두 편이 나왔다. 연초에는 [극한직업]이 [신과함께-죄와 벌]을 넘고 16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섰고, 최근에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외화로는 [아바타] 이후 10년 만에 1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빛과 그림자는 동시에 공존한다. 두 작품이 승승장구할 때 대규모 자본이 투입됐거나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몇몇 작품은 관객의 외면 속에 초라하게 퇴장했다. 반면 숫자 이상의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둔 영화도 있다. 2019년 현재까지 망한 영화와 나름의 성과를 거둔 영화를 소개한다. (관객수 5/16일 기준)

 

 

박스오피스에서 쓸쓸하게 퇴장한 영화

 

이미지: (주)쇼박스

뺑반 – 누적관객 1,826,714명

[뺑반]은 개봉 전만 해도 기대를 모은 화제작이었다. 뺑소니 전담반이라는 참신한 소재에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과 연기력과 흥행성을 입증한 공효진, 류준열의 만남으로 주목받았다. 한 주 먼저 개봉한 [극한직업]이 폭발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두 작품이 서로 ‘윈윈’ 하는 쌍끌이 흥행에 대한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뺑반]의 질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개봉 첫 주말 [극한직업]에 이어 2위를 기록했지만, 일주일 만에 일일 관객수가 급락하면서 200만의 고지도 넘어서지 못했다. 제작비만 130억이 투입돼 손익분기점 400만 관객을 돌파해야 했지만, 관객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영화를 빠르게 외면했다. 소재와 배우들의 연기는 매력적이나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 갑작스러운 신파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받았다.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우상 – 누적관객 183,784명

이수진 감독의 [우상] 역시 [뺑반]처럼 소포모어 징크스를 피해 가지 못했다. [한공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이수진 감독과 천우희, 한석규, 설경구 쟁쟁한 배우들의 만남, 베를린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라는 타이틀은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욕망으로 충돌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는 대중과 교감하는데 실패했다. 첫날 박스오피스 4위로 출발해 개봉 9일 만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부진을 거듭했다. [우상]을 본 관객들은 공통적으로 듣기 평가를 하는 듯 잘 들리지 않는 대사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꼬아 놓은 불친절한 서사를 지적하며 실망감을 표했다. 100억에 가까운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흥행에 참패한 [우상]의 손익분기점은 260만 명이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글래스 – 누적 관객 466,575명

제임스 맥어보이, 브루스 윌리스, 사무엘 L. 잭슨, 그리고 M. 나이트 샤말란. 2000년 [언브레이커블]과 2017년 [23 아이덴티티]를 이을 [글래스]는 단연 눈에 띄는 기대작 중 하나였다.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된 샤말란식 슈퍼히어로 3부작은 기대 속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뜨거운 관심을 입증하듯 격렬한 호불호의 반응을 일으키며 박스오피스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이는 160만 관객을 동원했던 [23 아이덴티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6만이라는 성적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기존 히어로와 다르게 접근한 참신한 세계관을 옹호하는 입장과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뒷심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2000만 달러의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전 세계 2400달러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요란했던 화제성에 비해 국내 성적은 초라하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악질경찰 – 누적관객 262,235명

[악질경찰]은 상업영화 최초로 국민적인 트라우마를 남긴 세월호를 소재로 택했다. 예민한 소재인 만큼 개봉 전부터 시기상조라는 우려 섞인 반응이 흘러나왔다. 이정범 감독은 사고 이후 단원고를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상업영화의 한도 내에서 세월호를 다루고 싶었다고 연출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영화의 정보를 미처 알지 못했던 관객들은 범죄물에 녹아든 세월호 이야기에 당황스러워했다. 감독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했지만, 진부한 범죄 서사에 녹아든 세월호의 아픔을 통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손익분기점인 250만 명에 한참 못 미치는 26만 관객에 그쳤다. 이후 세월호를 정면으로 다룬 [생일]이 개봉했는데, 손익분기점(180만) 달성은 실패했지만 진정성만큼은 호평을 받았다. [악질경찰]이 외면받은 이유는 세월호란 소재의 문제가 아닌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있던 거였다.

 

 

 

이미지: (주)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자전차왕 엄복동 – 누적관객 172,212명

지난 2월 말 개봉한 [자전차왕 엄복동]은 ‘UBD’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지금까지도 조롱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다. 망작 혹은 괴작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클레멘타인], [리얼]을 가볍게 제치고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했다. 향후 몇 년간 [자전차왕 엄복동]을 넘어서는 또 다른 망작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이 영화, 대체 무엇이 어떻길래 두고두고 조롱의 대상으로 회자되고 있는 걸까.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국뽕에 기댄 유치하고 촌스러운 영화라고 말한다. 15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붓고도 조악한 완성도는 말할 것 없다. 게다가 개봉 전 [캡틴 마블]을 폄하한 출연 배우의 발언도 공분을 샀다. 결정적으로 대중은 술 취해 SNS에 남긴 비의 고백을 놓치지 않았다.

 

 

 

작지만 의미 있는 흥행

 

이미지: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항거: 유관순 이야기 – 누적관객 1,155,774명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자전차왕 엄복동]과 같은 날 개봉했다. 두 작품 모두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실존 인물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은 첨예하게 엇갈렸다. [엄복동]이 희대의 망작으로 거듭날 때, 순제작비 10억원이 들어간 저예산 영화 [항거]는 관객들의 호평 속에 박스오피스 3위로 데뷔, 이후 1위로 역주행하며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이 작은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던 건 진정성이다. 국민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중문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유관순과 8호실에 함께 수감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절제된 연출로 담아내 묵직한 감동을 전했다.

 

 

 

이미지: (주)NEW

뽀로로 극장판 보물섬 대모험 – 누적관객 726,365명

아이들의 영원한 히어로 ‘뽀통령’의 위력은 역시 대단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싹쓸이하다시피 극장가를 점령했을 때, [뽀로로 극장판 보물섬 대모험]는 한국영화 중 유일하게 같은 날 개봉하는 강수를 두고 국내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을 지켰다. 박스오피스 2위로 데뷔해 주말과 어린이날 연휴에 가족 관객들을 끌어모으며 현재까지 72만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압도적인 흥행에도 [뽀로로 극장판 보물섬 대모험]이 값진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이유는 자명하다. 애초에 주된 관객층이 다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가 마블의 위력에 눌려 있을 때 과감하게 도전한 것이 스크린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화제성도 얻을 수 있었다. 주변 여건에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뽀로로] 시리즈의 뚝심이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이미지: CJ CGV 스크린X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 – 누적관객 342,368명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화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은 단독 개봉임에도 34만 관객을 동원하는 깜짝 흥행에 성공했다. 사전 예매가 열리자마자 빠른 속도로 좌석을 점령하며 예매량만 17만을 돌파했다. 투어의 실제 스태프가 참여한 아미밤 상영회는 20분 만에 매진을 기록하는 열광적인 호응에 힘입어 앵콜 상영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같은 열기는 국내뿐 아니다.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은 전 세계 108개국, 4천6백여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해 해외에서도 162만 명의 팬들을 불러 모았다. 스크린이 270도 파노라마로 확장되어 실제 콘서트 현장에 온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스크린X 상영은 팬들에게 더욱 뜨거운 감동을 안겼다. 작년 11월 개봉한 방탄소년단의 첫 영화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도 전 세계 196만 관객을 동원하며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미지: 인디플러그 , 더 피플

칠곡 가시나들 – 누적관객 42,001명

[칠곡 가시나들]은 개봉 전 김재환 감독의 CGV 보이콧 선언으로 멀티플렉스의 횡포에 경종을 울렸다. 턱없이 작은 상영관과 퐁당퐁당 교차 상영이 문제였다. 이후 같은 이유로 메가박스에도 보이콧을 선언하고, 롯데시네마와 독립 예술영화관 100여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이처럼 불리한 여건에도 [칠곡 가시나들]은 4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관객들은 한글과 사랑에 빠진 칠곡군 80대 할머니들의 흥겹고 유쾌한 노년 라이프에 뜨겁게 반응했다. 4만이라는 숫자는 상업영화의 관객수와 비교했을 때 작을 수 있지만, 현재도 의견이 분분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그린 북 – 누적관객 432,607명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그린 북]은 폭발적인 흥행 파워는 없었지만, 꾸준한 입소문 속에 장기 상영을 이어가며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었다. 23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전 세계적으로 3억 달러가 넘는 성적을 기록했고, 국내에서도 1월 초 개봉해 한 달 넘게 상영하며 43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린 북]의 성공 요인은 현실적인 소재를 보편적인 정서로 담아낸 데 있다. 인종차별이란 무거운 소재임에도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두 남자의 여정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웃음과 감동으로 그려내 호응을 얻었다. 영화 외적인 논란이 옥의 티로 남지만, [그린 북]의 성공은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안을 제시한다.

 

 

 

이미지: 오드 , 씨나몬(주)홈초이스

장난스런 키스 – 누적관객 427,256명

일본과 한국, 대만에서 드라마로 제작된 인기 순정 만화를 새롭게 리메이크한 [장난스런 키스]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2016년 [나의 소녀시대]가 기록한 대만 영화 흥행 1위 타이틀을 가져가며 최종 관객수 42만 명을 기록했다.

흥행 일등공신은 단연 왕대륙이다. 사실 개봉 전 불미스러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나의 소녀시대]로 대만을 넘어 아시아 스타로 부상한 왕대륙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개봉 전 프랭키 첸 감독과 왕대륙이 3박 4일 일정으로 내한한 것도 주효했다. [장난스런 키스]의 성공은 대만 멜로 영화에 대한 수요가 꾸준함을 새삼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