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영화 속 사랑과 이별의 연대기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중경삼림]에서 경찰 223(금성무)은 만우절에 실연을 당하고 헤어진 연인이 좋아하던 과일 통조림을 병적으로 사모은다. 그것도 유통기한이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까지인 통조림만 구매한다. 통조림을 사모으는 30일 동안 연락이 오지 않으면 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는 두고두고 기억 남을 말을 남긴다. “세상에 유효기간이 없는 것은 없는 걸까? 기억에 통조림이 들어 있다면 기한이 영영 지나지 않기를. 만일 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년 후로 적고 싶다”. 어디 유효기간을 두고 싶은 게 기억뿐이겠는가.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 누구나 이 사랑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운명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영원하기를 바랐던 사랑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의 엔딩을 향할 때가 많다. 긴 시간에 걸쳐 만남과 헤어짐을 다룬 영화를 모아봤다.

 

 

 

500일의 썸머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우리는 누구나 톰이 될 수 있고, 썸머가 될 수 있다. 톰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상대방을 헤아리는데 서툴고, 썸머는 사랑에 구속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헷갈리고 애타게 한다. 썸머가 톰의 취향에 공감해주면서 시작한 두 사람의 만남은 사랑을 해봤을 누구나 공감할만한 설렘과 행복, 실망과 좌절, 고통의 순간이 교차한다. 마치 내 얘기 같은 톰과 썸머의 연애담은 톰이 썸머에게 첫눈에 반했던 1일째부터 실연 후 기나긴 절망의 시간을 거쳐 톰이 새로운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다시 1일이 시작되는 500일까지 이어진다.

 

 

 

블루 발렌타인

이미지: 영화사 진진

결혼 6년 차 딘과 신디는 매일매일이 지독한 전쟁터다. 한때 뜨겁게 불타올랐던 사랑의 흔적은 온 데 간데없고, 서로를 향한 실망과 원망이 뒤섞인 무력한 권태가 길게 자리한다. [블루 발렌타인]은 현재의 딘과 신디가 멀어질수록 처음 만난 6년 전 서로에게 점차 강하게 끌리는 두 사람의 과거를 교차하며, 현실의 무게 앞에서 흔들리는 사랑의 속살을 드러낸다. 딘은 변함없이 신디를 사랑하지만 미래가 없고, 신디는 현실에 안주하는 딘에게 실망하고 점차 지쳐간다. 한때 불꽃처럼 뜨겁게 타올랐던 두 사람의 사랑이 속절없이 식어가는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신디와 딘의 지독한 사랑을 보고 있으면 나의 사랑은 어떠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로렌스 애니웨이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세상에 이런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로렌스와 프레드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랑하지만,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 위기를 맞이한다. 로렌스가 자신의 생일에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여자로 살고 싶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로렌스는 프레드를 사랑하면서도 여자로 살아가고 싶은 욕망을 버릴 수 없고, 프레드는 난데없는 고백이 고통스럽지만 로렌스를 향한 마음을 끊어버릴 수 없다. 10여 년에 걸쳐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동화처럼 순애보적인 면도 있지만, 좀처럼 가까워지기 힘든 지독한 현실이 장벽처럼 드리워져 있다. 이 길고 긴 애증 어린 사랑은 단지 로렌스와 프레디의 독특한 사례에 국한하지 않고, 보편적인 사랑의 단면을 포착한다.

 

 

 

스톡홀름의 마지막 연인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젊은 기자 아비드와 화가의 딸 리디아는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현실의 벽이 두 사람을 가로막는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홀로 남게 된 리디아는 가난한 아비드 대신 돈 많은 중년 남성을 택하고, 버림받은 아비드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는 사업가의 딸과 결혼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다 한들 두 사람의 연은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10년 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던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하고 거부할 수 없는 격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갈망이 깊어질수록 관계는 위태위태하게 흔들린다. 처음의 애틋했던 감정은 점차 서로에게 독이 된다.

 

 

 

너의 결혼식

이미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우연은 전학생 승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때부터 다사다난한 첫사랑 연대기가 시작되지만, 짓궂은 운명은 우연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한결 같이 승희를 향해 있는 우연의 마음을 일부러 모른 채 하는 듯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다. 수년이 흘러 승희를 운명이라 생각했던 우연은 마침내 사랑을 얻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을 지키지 못한다. [너의 결혼식]은 2005년 우연과 승희가 처음 만난 고3 여름부터 사회 초년생이 된 현재까지, 설렘과 행복, 안타까움과 슬픔, 좌절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사랑의 순간을 보편적인 공감대로 담아낸다.

 

 

 

콜드 워

이미지: 찬란, 아이 엠

1949년 냉전시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폴란드에서 사랑과 음악만이 전부였던 운명 같은 여정이 시작된다. 도시 빈민가 출신의 줄라와 음악을 가르치는 빅토르는 민속음악단 마주르카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체제의 엄숙함이 그들의 사랑을 무겁게 짓누르지만, 단단하게 결속된 운명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다. 줄라와 빅토르는 폴란드, 프랑스, 유고슬라비아를 오가며, 15년의 긴 세월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가혹한 시대 분위기에 굴하지 않은 줄라와 빅토르의 사랑은 지금의 시대에 잊혀 가는 애틋한 정서를 드리운다.

 

 

 

‘브리짓 존스’ 시리즈

이미지: UIP코리아

브리짓 존스와 마크 다시의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다. 아니, 브리짓의 입장에서는 최악에 가깝다고 할까. 브리짓은 마크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험담하는 것을 듣고 모욕감을 느낀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브리짓은 술을 끊고 다이어트에 성공해 완벽한 남자를 만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브리짓과 마크는 자꾸만 마주치고, 그 사이에 브리짓의 직장 상사이자 마크와 철천지 원수 관계인 바람둥이 다니엘이 끼어든다. 브리짓과 마크가 사랑의 결실을 맺기까지 과정은 다사다난 그 자체다. 2001년 개봉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해피엔딩을 맞이했나 싶더니 2004년 개봉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열정과 애정]에서는 소소한 오해가 쌓여 위기를 맞고, 2016년 다시 돌아온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에서는 두 번의 해피엔딩이 무색하게 브리짓은 여전히 솔로로 남아있다.

 

 

 

‘비포’ 시리즈

이미지: THE픽쳐스

셀린느와 제시는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답게 우연히 만난다. 시끄러운 독일 부부를 피해 자리를 옮긴 셀린느는 건너편 좌석에 앉은 제시와 우연히 대화를 시작하고, 이내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제시의 깜짝 제안으로 비엔나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두 사람, 지금처럼 편리한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6개월 후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지는데, 다시 만나기까지 9년이 흐른다. 그간의 진심과 살아온 이야기를 주고받는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그때의 아련한 감정이 차오른다. 그 후 셀린느와 제시는 어떻게 됐을까? 다시 9년이 흘러 그때와 사뭇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이 반갑게 등장한다. 1995년 [비포 선라이즈]를 시작으로 2004년 [비포 선셋], 2013년 [비포 미드나잇]까지 18년 동안 3부작에 걸쳐 제시와 셀린느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다.

 

 

 

고스트 스토리

이미지: (주)리틀빅픽처스

이별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시작된다. 연인 M과 단란한 일상을 보내던 작곡가 C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별이었기 때문일까. C는 병원 영안실에서 깨어나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M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비록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같은 공간에 머무르며 사랑했던 기억을 추억한다. 시간이 흐르자 M은 상실의 슬픔을 딛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 두 사람의 추억이 서린 공간을 떠난다. 하지만 C는 떠날 수 없다. 무한한 고독과 처연한 슬픔이 홀로 남겨진 C의 곁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