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람 후기

 

지난 7일(일) 11일간 펼쳐졌던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가 막을 내렸다. 장르 영화의 축제답게 전 세계 49개국에서 온 284편의 판타지, 호러 SF 등 다채로운 영화가 부천 곳곳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영화 마니아 에그테일 에디터들이 장르 영화 축제에 빠질 수 없다. 시간을 길게 두고 즐기고 싶었으나 빠듯한 일정상 단 하루 BIFAN의 매력을 만끽하기로 했다. 홍선, 현정, 원희, 혜란 네 에디터(안타깝게도 에디터 영준은 컨디션 난조로 이 즐거운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다)가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골라본 BIFAN 관람작을 소개한다. 참, BIFAN은 부산, 전주와 달리 생활공간에 영화제가 자리하고 있어 느낌이 색다르니 장르 영화를 사랑한다면, 내년에는 부천만의 매력에 빠져보길 권한다.

 

 

 

에디터 혜란: 가메라: 대괴수 공중결전/가메라 2 – 레기온 내습/가메라 3 – 사신 이리스의 각성

이미지: 동아수출공사

‘평소엔 정말 하기 어려운 것을 경험해 보자’라는 목표로, 에디터는 이번 BIFAN에서 ‘지구정복괴수전’ 프로그램의 [가메라(Gamera)] 1~3편을 감상했다. ‘가메라’라는 괴수 캐릭터는 1965년 처음 등장했지만, 국내엔 ‘고질라’만큼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상영분은 1995년에서 1999년까지 제작된 일명 ‘헤이세이 시대’ [가메라]다. 3편 모두 괴수영화 마니아들에게 크게 사랑받는다는데,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접하니 그 이유를 알겠다. [가메라] 세 편 모두 괴수 영화의 장르적 특성 안에서 최대한의 창작력을 발휘한 결과물이었다.

 

괴수 영화의 백미, 괴수들이 등장해 시가지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당연히 등장한다. 당시의 기술력을 감안해도 괴수의 거대한 규모와 위력 모두 설득력 있다. 하지만 영화는 괴수의 등장 전후로 인간의 활동과 인간 사회의 모습, 인간과 괴수의 상호 교감을 다룬 점에서 더 돋보인다. 인간은 괴수의 등장과 기원을 추적하고, 괴수의 존재를 현대 인간의 언어로 이해하고 설명한다. 괴수가 등장하며 인간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공포에 빠진 모습도 빼놓지 않는다. 매개물로 인간과 괴수가 교감하는 부분은 신화적 요소가 있으며, 괴수를 마치 ‘신의 사자’처럼 신비감 가득한 존재로 그리기도 한다. 최근의 할리우드 괴수 블록버스터에서 괴수의 위용과 카리스마는 확인했지만 뭔가 빠진 듯 아쉬웠는데, [가메라]를 통해 잊고 있었던 답을 발견한 것 같다.

 

 

 

에디터 원희: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예요/고비의 전설/잔시의 여왕

이미지: Lions Gate Films, Mongol Films Distribution, Zee Studios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예요(But I’m A Cheerleader) – 영화적 재미에 메시지까지 확실히 잡았다
오로지 나타샤 리온을 보고 고른 영화. 보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20년 전 영화인데 이런 작품이 나왔다고?’였다. 메건은 부모와 친구들에 의해 강제로 동성애 전환 치료 캠프로 보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그 점을 비틀어 유쾌한 블랙코미디로 승화한다. 나타샤 리온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연기도 매력적이고, 영화 속에서 아는 얼굴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다. 재미와 영상미, 메시지까지 더해져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던 영화다.

 

고비의 전설(The Legend of Gobi) – 몽골의 아름다운 복식과 드넓은 풍경만이 남은 영화
영화제 덕분에 처음으로 만나본 몽골 영화. 호금 악사들을 사랑하는 고대 왕국에서 침략자 알게르가 왕위에 오르며 악기를 파괴하고 악사를 몰살한다.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에게렐 공주를 납치하는데, 활을 잘 쏘는 에게렐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 일단 영화의 줄거리는 이러한데… 멋진 여성 영웅 서사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실망스러울 것이다. 결국은 폭군 알게르가 주인공으로, 인물 간의 개연성도 없고 결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몽골 사람들의 옛 복식을 보여주는 의상과 몽골의 드넓은 초원 등 지형을 활용한 영상미는 아쉬움을 덜어줄 만큼 인상 깊다.

 

잔시의 여왕(Manikarnika: The Queen of Jhansi) – 실존했던 인도의 강인한 여성 영웅 이야기
인도의 실존 인물로 잔시 왕국의 왕이자 독립 영웅 마니카르니카, 일명 락슈미 바이를 그린 전기 영화.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다루는 만큼 차분하고 장엄한 톤으로 진행되며, 판타지적인 요소는 적지만 여전히 발리우드 특유의 음악과 뮤지컬, 스펙터클하고 흥겨운 액션이 잘 살아있다. 억압의 역사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훨씬 쉽다. 영국군 배우들이 등장할 때마다 어색한 ‘서프라이즈’를 보는 것 같아 아쉽지만, 실존했던 인도의 여성 영웅을 알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에디터 홍선: 장화, 홍련/사다코/야간근무자

이미지: 청어람, Kadokawa International Sales, Canal Brasil

장화, 홍련 – 공포를 통해 눈물을 전하는 한국 호러 레전드
[장화, 홍련]은 이미 수십 번 본 영화지만, 확실히 대형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로 보는 맛이 있었다. 지금은 대한민국 대표 배우가 된 임수정, 문근영의 신인 때 모습을 보며 흐뭇한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도 좋다. [장화, 홍련]은 N차 때마다 다른 감성을 만날 수 있다. 처음 봤을 때는 무서웠지만, N차 횟수가 늘어갈 때마다 설득력이 더해지며 끝에는 눈물이 나왔다. 공포를 통해 감성을 자극하고, 비극을 막지 못한 관람자의 아픔을 건드린다. 탄생 15년이 넘은 영화지만, 아직도 한국 공포영화 대표작에 반드시 넣어야 할 필수이자 메인 코스. 부천에서 다시 만난 건 행운이었다.

 

사다코(Sadako) – ‘유튜브 시대’에 도전한 ‘비디오’ 호러
“더 이상 못 참겠습니다, 도전하겠습니다!” [사다코]는 [링] 탄생 20주년을 맞이해 점점 원동력이 떨어지는 시리즈의 부활을 위해 1편의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20년의 세월이 지난 만큼 시리즈도 진화했다. 비디오가 아닌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저주가 전파되며, 사다코 전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물과 세계관으로 도전한다. 유튜브 인기 콘텐츠 중 하나인 폐가 체험을 페이크 다큐 스타일로 만든 장면은 꽤 무섭다. 공포를 강조하기보다 가족의 실종을 거슬러 저주의 인과관계를 맞추는 추리도 흥미롭다. 다만 몇몇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와 후반으로 갈수록 산으로 가는 개연성은 아쉽다.

 

야간 근무자(The Nightshifter) – 기발한 컨셉과 돌직구 공포. 남미 호러의 발견
[야간 근무자]는 쉽게 만나기 힘든 남미(브라질)의 호러라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만 결론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망자와 대화가 가능한 주인공의 컨셉을 잘 이끌어와 금기를 어긴 그의 선택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 적절하게 보여준다.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하드고어(?), 감질 맛없이 화끈하게 들어가는 깜놀 효과는 시원할 정도다. 다만 후반부부터 주인공의 능력을 뒤로하고 귀신들린 집에서 원한과의 대결만 되풀이하는 모습은 옥에 티. 반복되는 효과에 내성이 생길 정도다. 그러나 후반부의 아쉬운 점만 뺀다면 의외로 인상적인 호러 영화를 만난, 영화제가 추구하는 ‘발견’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에디터 현정: 초의태인간/학교는 끝났다/야간근무자

이미지: 108Japan, Avenue B Productions, Canal Brasil

초의태인간(Mimicry Freaks) – 기괴함과 난잡함, 징그러움 사이
아마 이런 장르의 영화를 보는 까닭은 관객의 멘탈을 갖고 놀며 쥐락펴락해주길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에디터 절대 변태 아님;;;) 그런 점에서 [초의태인간]은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부조리한 인간 군상이 모인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벌어지는 난폭하고 잔인한 무차별 살상극은 한껏 B급 감성을 지향한다. 서사는 의도적으로 뚝뚝 끊기고, 기괴한 영상미는 그로테스크하며, 전반적으로 어둡고 불쾌한 환각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할리우드 슬래셔 무비를 끈적끈적하고 음침한 일본 호러 스타일로 변형해 관객을 불편하게 쥐어짜려 하지만, 단편적인 잔인함과 징그러움을 유발하는데 그친다. 마지막에 꽤나 직접적으로 전하는 아동학대, 폭력의 순환에 대한 메시지도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한다. 8~90년대 비디오 영화를 보는 기분.

 

학교는 끝났다(School’s Out) – 언젠가 세계는 멸망할 거야
뻔한 예측을 벗어나는 신선한 전개, 허를 찌르는 결말에 사로잡히게 될 영화! 이야기는 단순하다. 수업 중 창밖으로 투신한 교사를 대신해 대리교사로 부임한 남성이 비밀스러운 사모임을 하는 영재 학생들을 염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교사와 학생의 기묘한 심리전에는 인간 사회에 대한 불신과 비관이 가득하다. 미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은 왜 스스로 희망을 내려놓았을까. 학생들을 관찰하는 교사의 시선에 이입하게 하는 탄탄한 연출이 일품이다.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다.

 

야간근무자(The Nightshifter) – 브라질 버전 ‘전설의 고향’?
시체 검시소에서 일하면서 망자와 대화를 나눈다. 충분히 솔깃한 소재다. 하지만 소재의 매력이 교훈적인 주제에 묻혀버린 모양새다. 시체 검시소에서 일하는 남성이 사욕에 눈이 멀어 망자 세계의 규칙을 깼을 때 어떤 결과가 따를 거라는 게 충분히 짐작되지만, 그래도 노골적으로 인과응보의 메시지에 매달린다. 게다가 후반 들어 그리 효과적이지 않는 하우스 공포에 치중하는 전개도 지지부진하다. 신선하고 색다른 장르물을 기대했지만, 평이한 드라마에 그쳐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