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의 여운이 유난히도 남다른 영화

마지막으로 영화가 전하는 이미지를 좌우하는 결말. 완벽하게 짜인 해피엔딩은 당장은 좋지만 곱씹을 여운이 부족한 것 같고, 그렇다고 하염없이 열린 결말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야기를 어떻게 매듭짓느냐에 따라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진다. 비록 원작자 스티븐 킹의 마음은 싫어했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냉랭한 결말을 택하면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결말이란 작가적 의도를 전하는 창구인 셈이다. 한 해 개봉하는 수많은 영화 중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졌거나 혹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유난히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 결말을 살펴본다.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이미지: 판씨네마㈜

라라랜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 꿈을 위해 분투하던 두 사람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꿈과 사랑을 동시에 얻는 것은 동화 속에 나올법한 일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에도 끝끝내 함께하지 못한다. 그리피스 공원에서 서로의 꿈을 이야기 나누는 것을 마지막으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다. 영화는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의 5년 후를 비춘다. 배우로 성공한 미아는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렸고,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을 운영하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됐다. 재즈 클럽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또다시 운명처럼 마주치지만, 그들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대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미소를 보낸다. 어쩐지 조금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 시간이 있기에 지금의 행복이 있지 않을까.

이미지: 소니 픽쳐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뜨겁고 찬란하게 빛나던 여름이 지나고 흰 눈이 소복이 내리는 어느 겨울날, 엘리오에게 반갑지 않은 전화가 걸려온다. 언젠가 엘리오와 올리버, 두 사람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을 날이 올 거라 예감했으면서도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쩐지 불안하다. 순수하고 강렬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깨우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기어코 찾아온 이별의 순간,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후회와 그리움, 절망이 가득한 엘리오의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한없이 슬픈 표정으로 붉게 타오르는 장작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만큼 생생하고 저릿저릿하다.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주)더쿱

캐롤

테레즈가 레스토랑에 나타나고, 이윽고 손님들 사이로 벽 모퉁이 자리에 앉아 있는 캐롤의 모습이 보이자 벅찬 환희가 밀려온다. 아직 채 상처가 아물지 않은 테레즈가 두 사람이 함께하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밀어내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바로 전만 해도 테레즈는 함께 살자는 캐롤의 조심스러운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던 터였으니까. 영화는 동화처럼 완전한 해피엔딩을 제시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제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음을 암시한다. 캐롤과 테레즈의 눈빛에서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거란 확신에 찬 희망이 전해진다.

이미지: 오드 AUD, CGV아트하우스

문라이트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질의 몸, 다무진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금니, 외관상 전해지는 이미지만 놓고 봤을 때 블랙은 어둡고 거친 마초적인 남성의 전형 같다. 하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가난과 부족한 사랑에 고통받고 외로워했던 소년이다. 억눌린 내면은 그리움으로 사무치고, 사랑을 향한 필사적인 열망이 자리한다. 어느 날 문득 케빈의 전화를 받고 오래전 떠난 고향을 다시 찾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 이후 오랜만에 재회한 케빈에게 내밀한 욕망을 인정하고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말하기까지 조심스럽기만 하다. 어렵사리 한 사람만을 담아온 마음을 고백했을 때, 그 불안한 떨림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점차 케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고, 서로에게 어깨를 기대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을 지나 푸르른 달빛 아래의 해변에 서있는 소년의 모습에 이르면 형언하기 힘든 벅찬 감정이 차오른다.

이미지: (주)쇼박스, (주)에이든 컴퍼니

위플래쉬

데미안 셔젤의 첫 장편 영화 [위플래쉬]는 흔하디 흔한 음악+성장 영화와 다르다. 드럼에 미친 앤드류와 폭군이나 다름없는 교수 플렛처의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광기 어린 열정을 액션 영화 뺨치게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 내내 긴장감을 자아냈던 두 사람의 대결은 하이라이트인 후반부에 이르면 반전을 거듭하며 폭발한다. 앤드류는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플레처의 비열한 계획에 굴욕을 당하는데, 순순히 물러날 그가 아니다. 다시 무대를 올라와 그만의 연주를 시작하고, 당황하던 플레처 교수는 이내 앤드류의 압도적인 연주에 끌려든다. 그래서 두 사람이 아름다운 결말을 맺었을까.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영화가 주는 여운은 다른데, 미친 듯이 폭주하는 마지막 공연은 짜릿한 전율을 안기면서도 불안하고 섬뜩하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타노스의 핑거스냅이 모두를 초토화시켰다. 이제껏 마블 영화에 등장한 빌런 중 역대급 파괴력을 가졌고 누군가 희생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작부터 타노스의 보라색 주먹에 당한 로키와 헤임달은 예고에 불과했다.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을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타노스만의 신념에 따라 인류의 절반, 심지어 우리의 마블 히어로들까지 무력하게 먼지가 되어 사라질 줄 그 누구가 진지하게 상상했을까. 특히 피터 파커(스파이더맨)가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에게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렇게 1년을 히어로들의 부활을 바라며 오매불망 기다렸건만, 슬픈 이별의 순간은 다시 찾아왔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로건

휴 잭맨의 울버린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영화 [로건]은 한 시대를 이끌었던 영웅의 장엄하고 명예로운 퇴장을 그린다. 영화는 처음부터 비극의 기운이 감지된다. 강력했던 힐링팩터 능력을 점차 잃으면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만 늘어가는 쇠약해진 히어로. 그는 마지막으로 돌연변이 소녀 로라를 지키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며 가슴 아프고도 애틋한 결말을 향해간다. 결국 로건이 로라와 어린 뮤턴트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은 저절로 짠한 감동을 자아낸다. 생명이 꺼져가는 로건에게 “아빠”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로라와 그런 모습에서 생애 처음으로 가족의 정을 느끼는 로건, 늘 고독하고 쓸쓸하며 고단했던 삶의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아 위안이 된다. 영원한 작별은 아쉽지만 최고의 순간은 울버린/로건을 사랑했던 모든 이들의 마음에 깊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