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족에게 권하는 눈호강 대리만족 영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동선을 최대한 줄이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니 그에 따른 고충도 따르고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여행을 가자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데, 해외는 국내보다 사정이 훨씬 심각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갑갑함이 쌓여가는 이럴 때는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를 보는 것도 나름의 위안이 될 것이다.  

윤희에게(Moonlit Winter)

이미지: 리틀빅픽처스

추운 겨울 세상을 온통 하얗게 물들이는 눈은 어쩐지 낭만적인 정서를 환기한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노라면 일상의 시름도 잠시 내려놓게 된다. 그래서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윤희는 딸 새봄과 함께 가슴속에 묻어둔 첫사랑 쥰이 있는 오타루로 향해 아련한 기억을 꺼내 든다. [윤희에게]는 상실의 아픔과 고통으로 남은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치유의 힘을 얻는 마음의 여정을 차분하게 담아낸다. 서로를 보듬고 응원하며 한걸음 나아가는 윤희와 새봄은 눈의 포근함을 닮은 것 같다. 눈이 귀했던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나니 [윤희에게]에서 봤던 설원의 풍경이 더 생각난다.

콜럼버스(Columbus)

이미지: (주)영화사 오원

인디애나주 소도시 콜럼버스는 모더니즘 건축물로 가득하다. 영화 [콜럼버스]는 박물관을 옮겨 놓은 듯 에로 사리넨, I. M. 페이, 리처드 마이어 등 유명 건축가들이 완성한 건축물을 차례로 탐방한다. 그 중심엔 아버지가 쓰러져 콜럼버스를 찾은 진과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머뭇거리는 케이시가 있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공통 관심사인 건축물을 매개로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며 지친 일상에 위안을 얻는다. 영화에서 건축물은 단지 감탄의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케이시에게 건축은 사물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며, 진은 그런 케이시를 이해한다. 건축물 하면 차가운 거리감이 먼저 느껴지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파리의 딜릴리(Dilili in Paris)

이미지: 오드 AUD

평화롭고 풍요로운 벨 에포크 시대 파리, 연이어 아이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방인 소녀 딜릴리와 배달부 소년 오렐이 모험에 나선다. 피카소, 로댕, 모네, 드뷔시, 르누아르, 퀴리부인 등 당대의 유명 인사들을 만나 추적의 실마리를 얻고, 아이들을 납치하는 어두운 음모에 다가선다. [파리의 딜릴리]는 예술과 문화가 번창하고 거리에는 우아한 복장의 신사숙녀가 넘쳐흐르던 벨 에포크 시대를 황홀하고 생동감 넘치는 비주얼로 재현해 놀라움을 안긴다. 1920년대 파리의 낭만적인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했던 [미드나잇 인 파리] 못지않게 파리로 떠나고픈 충동이 든다.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All the Bright Places)

이미지: 넷플릭스

이른 아침, 헤드셋을 끼고 텅 빈 도로를 조깅하던 핀치는 다리 난간에 올라 위태롭게 서있는 바이올렛을 목격한다. 자신처럼 어두운 내면을 직감했기 때문일까. 그때부터 핀치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바이올렛을 환한 세상으로 끌어내고자 갖은 노력을 펼친다.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는 마음의 상처가 있는 바이올렛과 핀치가 조별 과제를 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특히 바이올렛은 핀치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는데, 인디애나의 명소를 찾는 과제를 위해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의외로 소박하다. 해발 383m에 불과한 인디애나의 가장 높은 곳부터 어느 작은 마을에 있는 세계 최초의 1인용 롤러코스터 등 평범한 일상에서 얻는 즐거움은 바이올렛을 점차 변화시킨다.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

이미지: Kino International

강하늘, 안재홍, 옹성우의 아르헨티나 여행기를 담은 [트래블러]는 세 사람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억의 영화를 기억에서 불러낸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보영과 아휘의 이야기를 그린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다. 애잔하고 쓸쓸한 정서와 달리 세 사람이 도착한 그곳은 여유와 활기가 흐르지만, 그 사뭇 다른 풍경이 더더욱 영화의 기억을 꺼내게 한다. 결국 함께 가지 못한 이구아수 폭포, 보영이 일하던 탱고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거리들이 홍콩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에 신비로운 매력을 더한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Ex Libris: New York Public Library)

이미지: 영화사 진진

예스러운 벽화가 있는 높은 천장, 책장마다 빼곡하게 꽂힌 장서, 테이블마다 놓인 (초록 갓을 쓴) 스탠드, 한쪽 옆엔 노트북을 켜고 헤드셋을 낀 채 두꺼운 책에 몰두한 사람들. 도서관에 로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지나칠 수 없다. 세계 5대 도서관으로 뉴욕 시민에게 사랑받는 뉴욕 공립도서관을 장장 206분의 긴 러닝타임에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고풍스럽고 웅장한 도서관의 위용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도서관의 역할과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언젠가 뉴욕을 방문한다면, 지성이 살아 숨 쉬는 뉴욕 공립도서관부터 찾아보자.

라라랜드(La La Land)

이미지: 판씨네마㈜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 로스앤젤레스만큼 꿈을 좇는 청춘의 열정과 사랑이 꽃 피우기 좋은 곳이 있을까.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에게 사랑은 지친 현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안식처이자 다시 더 한걸음 정진하게 하는 회복의 공간이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을 키워가고, 두 사람이 열정으로 분투하는 로스앤젤레스는 낭만적인 매력이 넘쳐흐른다. 세바스찬이 공연하던 재즈 클럽, 달콤한 키스를 나누던 앤젤스 플라이트, 보랏빛 석양으로 물든 허모사 비치, 사랑과 이별의 순간이 교차한 그리피스 천문대와 그리피스 공원 등 세바스찬과 미아가 거닐었던 로스앤젤레스의 곳곳에는 꿈꾸는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이 깃들어 있을 것 같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남편과 사별하고 생애 첫 홀로서기에 도전하는 에블린, 삶에 환멸을 느낀 고등법원 판사 그레이엄, 다툼이 끊이지 않는 더글라스와 진 부부, 사랑에 목숨을 건 노먼과 마지, 수술을 위해 인도를 찾은 뮤리엘까지, 황혼기에 접어든 일곱 명의 주인공이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인도 자이푸르를 찾는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웹사이트에서 봤던 비주얼과 달리 곳곳이 손 볼 곳 투성이인 낡고 오래된 호텔이고, 당황할 새도 없이 열혈 인도 청년 소니가 그들을 반긴다. 낯선 곳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은 생각했던 것처럼 흘러가진 않지만, 예상치 못한 일상에서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의미를 찾아간다.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

이미지: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혜원은 행동으로 옮기기보다 마음속에 묻기 십상인 이 말을 실천하기로 한다. 서울에서의 고달픈 일상을 내려놓고, 추운 겨울 도착한 고향 집은 사람이 살지 않은 휑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혜원은 꽁꽁 언 마당에서 배추를 찾아내고 된장국을 끓여 몸을 따뜻하게 녹인다. 그때부터 시작된 혜원의 자급자족 라이프는 인스턴트가 넘치는 도시의 일상과 전혀 다르다.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식사를 준비하고, 고향 친구 은숙, 재하와 교류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거기에 계절의 변화가 단번에 보이는 자연의 풍경은 보기만 해도 청량하다. 도시에서는 쉽사리 느끼기 힘든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만끽해보자.

초속 5센티미터(5 Centimeters per Second)

이미지: (주)에이원엔터테인먼트

[초속 5센티미터]는 어린 시절 전학 간 친구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아름다운 일상의 순간들로 담아낸다. 눈발이 흩날리는 지하철 플랫폼, 호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따사롭게 쏟아지는 햇살 등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가는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시간이 흘러도 아카리를 그리워하는 타카키의 마음을 애틋하게 전한다. 언젠가 함께 걷고 싶은 벚꽃길을 찾은 타카키가 철길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아카리를 알아봤을 때,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벚꽃잎은 아름답기만 하다. 그 아련한 기억 때문인지 봄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초속 5센티미터]. 올봄 벚꽃 나들이가 망설여진다면 추억에 빠져드는 것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