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까말까] ‘서치’ vs ‘상류사회’

이미지: 소니 픽쳐스, 롯데엔터테인먼트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비까지 쏟아졌다.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의 연속이니, 날이 화창하더라도 우산 하나씩은 꼭 챙기고 다니길 바란다. 9월을 앞둔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수많은 영화들이 극장에 들어섰는데, 그 중 두 편이 유독 관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SNS로 실종된 딸을 찾는다는 내용과 독특한 연출로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스릴러 [서치]와 대한민국 상위 1%의 추악한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낼 뿐 아니라 파격적인 노출 장면으로도 화제가 된 [상류사회]가 그 주인공이다. 나란히 국내 박스오피스 3위와 2위를 차지한 두 작품 중, 주말 동안 어느 영화를 볼 지 고민이라면 에그테일 에디터들의 의견을 참고해보자.

 

이미지: 소니 픽쳐스

 

에디터 Jacinta: 처음부터 끝까지 스크린 라이프로 채운 [서치]는 파격적인 형식에도 낯설기보다 신기할 정도로 친밀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글, 화상 통화 등 친숙한 디지털 일상은 지루할 틈 없이 새로운 단서와 반전을 제시하며 흥미로운 긴장을 형성한다. 마치 21세기형 추리쇼를 보는 기분이 든다. 또한 디지털 일상은 형식에 머물지 않으며, 감정적인 몰입을 끌어내는데도 주력한다. 단적으로 마우스 커서와 타이핑 속도에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며, 보편화된 디지털 일상에 친숙한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제한된 화면 구성에도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는 긴장을 유지하며 깔끔한 스릴러를 완성한 아니시 샤간티 감독의 다음 작품이 무엇이 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에디터 겨울달: 아버지가 실종된 자녀를 찾는 이야기는 그동안 많았지만, [서치]는 놀랍고, 새롭고, 완전히 다른 스릴러다. 할리우드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한국계 가족이 중심 인물이라는 점이나 [콜럼버스]에 이어 또다시 극을 오롯이 이끌어가는 파워를 증명한 존 조의 맹활약은 영화팬으로서 정말 반갑다. 그러나 이 영화가 돋보이는 이유는 표현 방식에 있다. [서치]는 우리의 삶이 수많은 정보통신 기기의 프레임에 갇혀 있고, 우리의 자아가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에 공존한다는 점에 바탕한다. 간절히 고대한 일정을 삭제해야 하는 슬픔, 대문자로 휘갈긴 문자메시지에 담긴 분노, ‘…’ 점 세개가 주는 무한의 기다림과 떨림, 버퍼링이 주는 생생한 긴장감까지. [서치]는 친숙한 디지털 언어와 행위로 스토리를 엮을 수 있고, 재미있고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영화이자, 특별한 영화다.

 

에디터 Amy: 가히 천재적이다. 신선하면서도 장편 영화로 풀어내기 힘들 듯한 포맷을 사용했지만 뛰어난 연출력으로 멋지게 풀어냈다. 인트로 시퀀스부터 전율이 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만든다. 화면에서 보이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인터넷의 발전 과정을 보며 추억에 젖기도 하고, [업]의 인트로를 연상시키는 내용으로 감정을 흔들기도 한다. 배우들 간의 직접적인 대사와 연기 없이 마우스 커서와 키보드 텍스트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다시 봐도 엄청나다. 스릴러 장르지만 잔인하거나 무서운 장면은 전혀 없어 마음 편하게 조여드는 긴장감을 즐길 수 있었다. 이리저리 꼬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존 조와 데브라 메싱의 연기가 정말 압도적이다. 아니시 샤간티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고 앞으로의 작품도 계속 눈여겨보고 싶다.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에디터 Jacinta: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라고 해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감상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영화든 인물과 사건 사이를 채우는 서사의 설득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상류사회]는 처음부터 수없이 보아온 설정을 택했음에도 이것저것 보여주고자 하는 욕심만 잔뜩 부린 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빠졌다. 아니 너무 안일하게 접근했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 부부의 욕망을 피상적으로 비추기만 할 뿐 공감의 여지를 줄 수 있는 ‘왜’가 없다. 영화를 보면서 지나치게 정성을 들인 정사 장면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의 행동에 난감했다. 저렇게까지 행동할 정도로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은 인물의 욕망은 대체 무엇일까. 왜 욕망의 근원은 보여주지 않는 걸까.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거라 여기고 생략한 걸까. 두 시간의 영화에는 생략의 미학이 있기 마련이지만, 부부를 둘러싼 상류사회의 폐부를 전시하기만 할 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영화는 막장 요소를 적당히 뒤섞은 일일 드라마 수준에 머무른다.

 

에디터 띵양: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추악한 곳’, 영화가 표현한 상류사회다. 하지만 [상류사회]는 상위 1%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추악하게도 그려내지 못했다. [상류사회]가 드러내려는 민낯은 이미 닳고 닳은 이야기다. 심지어 우리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을 얼마 전 경험하기도 했다. 관객이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고 피로감을 느끼는 소재로 영화를 만들 작정이었다면, 이를 보완할 요소가 필요하다. 영화는 이 요소로 ‘선정성’을 택했는데, 여기까진 문제 되지 않는다. 이미 [내부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들이 선정적인 요소를 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류사회]에서의 선정성은 영화의 본질과 주제의식을 흐린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상류층들이 갑질 하는 모습이라도 보였나? 그것도 아니다. 단순히 돈이 많은 것으로 ‘아름다움’을, 변태적인 성적 취향을 가진 인물 하나로 그 사회의 ‘추악함’을 다 드러냈다고 생각하면 요즘 관객들을 단단히 잘못 본 것이다. 영화에 열과 성을 다한 배우들의 노력과 보는 내내 느꼈던 불쾌감만이 남는 작품이다.

 

에디터 Amy: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화려한 ‘상류’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오수연과 장태준의 욕망과, 어떻게든 발을 담그게 된 ‘상류’가 사실은 더럽고 추악한 곳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글쎄다. 일명 ‘상류’의 민낯을 드러내는 영화들은 이미 숱하게 나왔는데, 대체 이 영화는 2018년이 된 지금 왜 등장한 것일까. 스토리는 부차적이고 진짜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좋게 말해서) 성적 묘사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주객전도가 된 모습이다. 인지도가 낮은 신인 배우에게 과도한 카메라 앵글 사용과 심지어 뜬금없이 등장한 일본 배우와 윤제문의 쓸데없이 길게 늘어지는 정사 장면은 일반적인 불쾌함을 넘어선다. 보는 사람에게 최고 수준의 불쾌감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점은 성공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