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까말까] ‘물괴’ vs ‘더 프레데터’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어느덧 또 한 주가 마무리되었다. 9월 두 번째 주, 두 편의 ‘괴수영화’가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되었다. 내리막길을 걷던 국내 괴수영화에 최초로 사극을 더해 장르의 부활을 꿈꾸는 [물괴]와 전 세계에 수많은 팬덤을 보유한 우주 최강의 사냥꾼 ‘프레데터’의 이야기 [더 프레데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각기 다른 매력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두 작품 중, 주말 동안 어느 작품을 볼지 고민이라면 에그테일 에디터들의 의견을 참고해보자!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에디터 Jacinta: 조선을 위협하는 괴수의 출현은 흥미롭지만, 소재를 이어가는 스토리가 부실하다. 105분 안에 모든 걸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이도 저도 아닌 영화로 만들었다. 괴수물의 재미를 쫓자니 조정의 권력 내분이 발목을 잡고, 곁가지로 따라붙은 휴머니즘과 로맨스가 극을 산만하게 흩트린다. 일부 배우의 어설픈 연기와 배우의 이미지를 활용한 전형적인 캐릭터 설정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물괴의 무시무시한 위력이 공들인 CG에 미치지 못한 채 맹숭맹숭한 괴수물로 남게 했다.

 

에디터 겨울달: 영화 제목 그대로 ‘물괴’가 처음이자 끝이고, 이 영화의 유일한 목표다. 물괴의 완성도에 영화의 모든 힘을 집중한다는 말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끔찍한 비주얼 등 기술적 요소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탄생 설화까지 갖춰서 꽤 괜찮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대신 다른 부분엔 그만큼의 정성이 들어가 있지 않다. 가족의 소중함, 풋풋한 로맨스, 정쟁과 인간의 불신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건드리지만 그 조각이 잘 맞물려 들어가진 않는다. 캐릭터도 전형적이라 배우들의 열연도 부족한 점을 다 메우진 못한다. 괴수영화는 ‘괴수’가 아니라 ‘영화’가 중요하다는 것, 설사 괴수가 완벽해도 이야기의 단점을 가릴 수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에디터 띵양: [물괴]는 [괴물]로 시작해 [차우], [7광구]로 내리막길을 걷던 한국 괴수영화를 가까스로 살린 작품이다. CG는 물론이고, ‘물괴’가 등장했을 때의 공포감, 그리고 긴장감도 확실하다. 주로 밤에만 나타난다는 설정을 통해 그래픽의 부자연스러움도 잘 덮었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었다. 혜리의 연기도 ‘성덕선’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괜찮았다. 문제는 이야기와 연출이다. 이야기가 진부하니 캐릭터의 매력도 줄고, ‘물괴’가 나오지 않을 때의 전개는 초반부를 제외하면 지루하다. 액션도 신경을 쓴 티가 많이 나지만, 과도한 핸드헬드 기법은 두통을 야기시킬 정도로 어지러웠다. 아무리 고증이 중요치 않은 장르라 해도, 조선시대에 진돗개도 아니고 셰퍼드가 수색에 동원되다니, 이런 부분은 좀 신경 쓸 법도 하지 않을까? 국내 괴수영화의 불씨를 살린 작품은 맞지만, 단순히 그 정도로 [물괴]를 “좋다”라고 표현하기는 힘들다. 괜찮은 점도 있었지만, 분명 아쉬운 점도 많은 작품이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에디터 겨울달: 가공할 만한 힘을 소유한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오고, 일련의 지구인들이 힘을 합쳐 괴물을 물리친다. [더 프레데터]는 크리쳐 액션물의 모범답안에 약간의 베리에이션을 가한다. ‘프레데터’에 대적하는 인간들이 사회의 눈에는 ‘약간 비정상적’이다. 깜짝 놀랄 만큼 피가 튀고 잔인한 비주얼과 셰인 블랙 감독 특유의 유머도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하다. 하지만 자잘한 재미로 매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프레데터’라는 존재가 주는 공포감은 사라졌다. 괴수영화에서 괴수가 무섭지 않다면, 영화의 존재 의미 자체가 퇴색되는 것이 아닐까? 특히 오랜 사랑을 받은 캐릭터를 스크린으로 부활시키는 프로젝트는 “이 영화가 2018년 지금 나와야 하는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프레데터]는 그 점에서 아쉽다.

 

에디터 띵양: [더 프레데터]는 괜찮은 ‘팝콘 영화’다. [더 프레데터]의 가장 큰 특징은 오리지널의 잔혹함을 유지하고 거기에 화장실 유머를 더한 점이다. 전혀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둘을 합쳐 성공한 사례로는 당장 [데드풀] 시리즈가 있다. 셰인 블랙 감독은 제법 영리하게 둘을 버무렸는데, 이것이 영화의 강력한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다. 긴장감에 몸이 저릴 법한 시기에 유치한 농담 한 마디를 던지면 분위기를 환기하는 묘수가 될 수도 있지만, 장르적 쾌감을 빼앗아버리는 악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프레데터]는 그 경계를 정말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데, 필자는 둘의 조합을 좋아하기에 ‘호’ 쪽에 가깝다. 물론 영화의 개연성이나, 등장인물의 능력치 밸런스 붕괴, 그리고 엔딩에서의 말도 안 되는 ‘무언가’의 등장이 정말 뜬금없고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선뜻 누군가에게 보라고 권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에디터 Amy: 유구한 사랑을 받아 온 외계 빌런 ‘프레데터’ 시리즈가 완전한 팝콘 무비로 돌아왔다. [아이언맨 3]을 만들어낸 셰인 블랙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만큼,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오락성을 최대로 끌어냈다. 딱히 신선하다거나 새로운 내용은 없다. 셰인 블랙 감독식의 유머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걸맞게 피가 튀고 잔인한 살육 장면이 난무한다. 아쉬운 점은 잔인한 장면 대다수인 데 반해, 조여드는 긴장감이나 프레데터에 대한 공포심을 고조시키는 장면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맥케나’ 부자와 ‘케이시’ 박사가 활약의 주를 이루며 그에 걸맞은 연기를 보여 준다. 마지막에는 차기작을 예고하는 듯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감독이 [아이언맨 3]을 제작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차기작이 나올지도 의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