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셔커스 –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 오슨 웰스의 마지막 로즈버드

 

*내용 스포일러 포함

 

 

이미지: 넷플릭스

 

 

여기 ‘영화’라는 꿈을 꾼 두 사람이 있다. 당시 최고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대학생 샌디와 누구나 인정하는 거장 오슨 웰스가 그 주인공이다. 샌디는 지금껏 싱가포르에 없었던 독창적인 영화를 원했고, 할리우드의 주류에서 밀려난 오슨 웰스는 화려한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꿈의 시작은 있어도 끝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고, 그들의 꿈은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부딪혀 도둑 맞고 좌절됐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셔커스 –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Shirkers)]와 [오슨 웰스의 마지막 로즈버드(They’ll Love Me When I’m Dead)]는 이루지 못한 꿈에 관한 이야기다.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던 싱가포르는, 샌디의 표현에 따르면 껌 씹는 것조차 금지할 정도로 경직됐고 특이한 나라다. 샌디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부모가 헤어지는 바람에 바로 그런 사회만큼이나 딱딱하고 보수적인 조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십 대 무렵, 샌디는 개방적인 환경에서 자란 재스민과 단짝 친구가 되어 문화 취향을 공유했다. 샌디와 재스민은 언더그라운드 모임에서 영화와 음악을 즐기며, 독립 매거진을 발행하고 팬레터도 받았다. 1991년 두 사람은 영화 제작 수업을 듣게 되는데, 바로 거기서 문제적 남자를 만난다.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미처 짐작도 못한 채,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지면서도 온화하며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묘한 느낌의 남자 조지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 소피와 함께 세 사람은 조지의 측근이 되었고, 특히 샌디는 여태껏 봤던 어른과 전혀 다른 조지에게 열렬히 빠져들었다.

 

196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할리우드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잃어버린 전주곡], [이지 라이더]와 같은 모험적인 영화가 등장했고, 유럽으로 떠밀렸다시피했던 오슨 웰스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데뷔작 [시민 케인]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만들었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먼 데다 스튜디오와 잦은 트러블로 외면받았던 오슨 웰스에게 할리우드에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1970년이 되자 오슨 웰스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소재로 한 이중 구조의 영화 [바람의 저편]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이미지: 넷플릭스

 

샌디는 누벨바그를 비롯해 영화에 관해서라면 박식한 조지와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공유했다. 샌디는 그와 교류하며 영화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다.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생채기로 남은 영화 ‘셔커스’는두 사람의 우정에서 비롯됐다. 샌디는 조지와 단둘이 떠났던 미국 여행에서 돌아와 대본을 완성했고, 조지는 대단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감탄하며 제작을 부추겼다. 1992년 여름, 샌디와 친구들은 연출을 맡은 조지와 함께 S라 불리는 16살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영화 ‘셔커스’를 찍기 시작했다.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는 1992년 독특한 컬트 무비에 도전했던 샌디가 자신과 친구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은 영화에 관한 기억을 거슬러가는 여정을 그린다. 당시 열정적인 친구들에게 꿈을 이룰 것처럼 환심을 사고 함께 영화를 제작했던 조지가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잃어버린 꿈의 조각이 아날로그 감성 물씬한 진득한 색감의 영상과 몽환적인 사운드 속에 꿈결처럼 펼쳐진다.

 

 

이미지: 넷플릭스

 

[오슨 웰스의 마지막 로즈버드]는 오슨 웰스의 할리우드 복귀작 [바람의 저편] 제작 과정과 비화를 그린다.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간 1970년부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1985년까지, 무려 15년에 걸친 이야기다. 변화무쌍한 톤으로 이리저리 오갔던 [바람의 저편]처럼 다큐멘터리 역시 영화 속 장면과 생전 영상, 현재의 인터뷰가 쉼 없이, 그러면서도 해당 장면 혹은 발언과 기막히게 맞물리며 전개된다.

 

1970년, 재기는 물론 흥행에 대한 열망을 품은 채 [바람의 저편]은 닻을 올린다. 지금이야 흔해졌지만, 당시에는 실험적인 시도라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이용한 영화였다. 누가 봐도 그의 이야기 같은 복귀를 노리는 노장 감독(제이크 한나포드)의 이야기와 영화 제목과 같은 한나포드의 연출작 ‘바람의 저편’이 교차 전개된다. 그즈음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변화가 나타났지만, 그렇다고 오슨 웰스에게 단번에 길이 열린 건 아니었다. 스튜디오는 쉽사리 손을 내밀지 않았고, 웰스 자신이 이리저리 발로 뛰며 제작비 마련에 나서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캐스팅, 장소, 재촬영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촬영 일정도 상당히 지체되었다. 거기에는 감독의 완벽주의 성향도 한몫한 것 같지만. 어쨌든 포부는 대단했지만 할리우드 복귀는 울퉁불퉁 가시밭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복귀는 헛된 꿈은 아니었다. 촬영 도중 여러 잡음이 발생하고 우려 섞인 시선이 가득했어도 웰스만큼이나 영화가 완성되길 바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이미지: 넷플릭스

 

1992년 여름의 끝 무렵 마침내 영화가 완성됐다. 샌디와 친구들은 학업을 위해 영국과 미국으로 돌아가고, 싱가포르에 남은 조지가 영화를 완성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그날 이후 조지는 단 두 차례 연락을 끝으로 그들의 인생에서 영영 사라졌다. 샌디, 재스민, 소피의 꿈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난관에 부딪혀 깊은 절망과 상실감에 빠지고 말았다. 조지는 촬영한 필름만 들고 사라진 게 아니라 거기에 쏟아부은 열정과 에너지 모두를 앗아갔다. 조지가 사라진 후에야 촬영 도중 겪었던 이상한 일들이 생각났고, 어딘가 석연치 않으며 불분명했던 존재감이 선명해졌다. 수년이 흘러 몇몇 영화에서 ‘셔커스’와 유사한 장면을 봤을 때 샌디의 고통은 재난과 같았다.

 

그렇게 세 사람에게, 특히 그의 우정을 신뢰했던 샌디에게 악몽으로 남은 영화에 대한 기억은 뜻하지 않게 돌아온다. 2011년 조지의 전 부인이 부고 소식을 전하며 ‘셔커스’ 원본 필름을 발견했다고 알려준 것이다. 이제 샌디는 다시 돌아온 필름을 계기로 과거로 기억을 거슬러 오르며 조지의 수상쩍은 행적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꿈도 좌절시킨,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적을 말이다. 영화를 끔찍이 좋아하고 허세 부리듯 과시하면서도 다른 이의 재능을 시기하고 방해했던, 그리고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온갖 거짓으로 둘러싸인 조지의 실체가 한꺼풀씩 벗겨진다.

 

 

이미지: 넷플릭스

 

[바람의 저편]이 계속 지체되면서 누군가는 오슨 웰스가 의도적으로 작품을 완성하지 않는 거라고 수군거렸다. 사실 그의 미완성 영화가 [바람의 저편] 한 편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촬영했던 [돈키호테]를 비롯해 여러 영화가 빛을 보지 못했다. 더군다나 [바람의 저편]은 재기를 노리는 노장 감독의 인생 마지막 날을 그린 영화이니 의혹이 드는 게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반면, 그와 가깝게 작업했던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작품 완성을 위해 발로 뛰었음을 전한다. 단지 타이밍이 점점 나빠졌던 거라고. 촬영도 편집도 늦어지는 와중에 할리우드는 [죠스], [스타워즈]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등장했고, 번번이 발목을 잡던 제작비는 투자사에 문제가 생기면서 결정타를 입히고 말았다.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흘러가면서 수많은 필름은 프랑스의 한 금고에 갇히게 되었다.

 

오슨 웰스는 독단적이면서도 대단한 야심가였다. [바람의 저편]은 그의 모든 게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관능적인 에로티시즘을 비롯해 자신의 역량과 할리우드 및 유럽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한 작품에 모두 담아내고자 했다. 어찌 보면 그 모든 게 넘쳐 영화가 끝내 완성되지 못했고,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독이 되었는지 모른다.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자신이 존경하는 감독을 위해 많은 것을 배려했지만 영화 속 상황과 겹치는듯한 씁쓸한 배신을 겪었고, 촬영 감독 게리 그레이버는 작품 완성을 위해 크레딧에 결코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을 영화를 찍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바람의 저편]과 오슨 웰스는 그 자체로 영화사에 독특한 자취를 남긴 것 같다.

 

 

이미지: 넷플릭스

 

조지는 ‘셔커스’를 아꼈지만, 샌디와 친구들의 열정까지 배려하지 않은듯했다. 20년 만에 되돌아온 필름은 사운드가 없는 무성 영화였다. ‘셔커스’는 그 자체로 완벽한 유령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완전히 떨쳐낼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은 것처럼 말이다. 이제 1992년 싱가포르의 여름을 담은 ‘셔커스’는 다큐멘터리로 되살아났다. 샌디와 친구들의 기억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생생한 감정적 전이와 함께 묘하게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전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뒤로 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라고.

 

웰슨은 숱한 우여곡절에도 영화적 재능을 뽐내고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복귀하고 싶었지만, 죽을 때까지 할리우드의 이방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미완성의 시행착오와 좌절을 보여주는 게 아닌 [바람의 저편]이 후에라도 완성될 수밖에 없었던 완결의 여정을 담아내는 걸로도 볼 수 있다. 웰슨의 대단한 야심과 열정, 치열한 관계에도 그를 향한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던 사람들이 모여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끝에 마침내 빛을 보게 되는 과정의 의미를 직조하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