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버즈소’ 천박한 자본주의를 향한 사악한 풍자극

 

이미지: 넷플릭스

 

장편 데뷔작 [나이트 크롤러]로 호평을 받은 댄 길로이 감독과 제이크 질렌할, 르네 루소가 다시 만났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넷플릭스에 선보인 [벨벳 버즈소]는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댄 길로이 감독은 이번에도 연출은 물론 각본을 맡아 세 번째 장편 영화를 완성했다. [벨벳 버즈소]는 L.A. 미술계를 배경으로 무명 화가의 유작을 둘러싼 초현실적인 미스터리를 다룬다. 그의 영화답게 이번 작품에도 비호감 주인공이 등장하며, 예술의 진정성은 퇴색되고 자본과 탐욕에 따라 움직이는 미술계를 노골적인 시선으로 풍자한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갤러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하나 같이 저마다의 욕망에 충실하다.

 

[나이트 크롤러]에서 성공에 대한 야망에 휩싸여 섬뜩한 광기를 뿜어냈던 제이크 질렌할은 이번 작품에서는 이전보다 부드럽게 윤색된 캐릭터를 연기한다. 미술평론가 모프는 겉보기엔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예술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랄한 냉소를 쏟아붓기로 악명 높은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의 말 한마디에 작품의 생사가 걸렸으니 미술계에서 위치는 독보적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이야기는 모프(제이크 질렌할)가 L.A. 미술계의 거물급 인사 로도라(르네 루소)의 갤러리에서 일하는 조세피나(자위 애쉬턴)와 다시 가까워지면서 시작한다. 이미 유명 평론가로 군림하는 모프와 성공한 갤러리 운영자 로도라 사이에서 기회를 노리는 조세피나는 우연히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죽은 노인의 집에서 한번 보면 단번에 사로잡히는 기이한 마력의 유작을 발견한다.

 

이제 이 놀라운 유작은 고가의 미술품을 선뜻 구입하는 부유층 고객을 주무르는 로도라와 비평으로 작품을 죽이고 살리는 모프에 의해 더없이 매력적인 걸작으로 거듭난다. 조세피나는 마침내 그토록 갈망했던 성공의 기회를 낚아채고 승승장구한다.

 

댄 길로이 작품답게 부와 명예, 성공을 향한 욕망에 휘둘리는 미술계 사람들의 이야기는 쉬이 흘러가지 않는다. [나이트 크롤러], [로만 J 이스라엘, 에스콰이어]에서 보았듯 점차 파국으로 치닫으며 자멸하는 탐욕스러운 인간군상을 그려낸다. 이 과정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잔혹한 미스터리를 덧대어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본격적인 공포물로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심술궂고 사악한 풍자극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미지: 넷플릭스

 

다만 전작 [로만 J 이스라엘, 에스콰이어]에서도 느꼈지만 [나이트 크롤러]에서 보여준 허를 찌르는 긴장감이 부족하다.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비롯된 작품을 남긴 무명 화가는 유작을 탐내거나 이를 발판으로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기이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저주하지만, 처음부터 뻔히 예상되는 잔혹극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가식적인 관계와 탐욕으로 물든 사람들을 어떤 형태로 처벌하고, 그들을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보여주는데만 신경을 쓴 것 같아 보인다.

 

욕망의 발원지였던 조세피나는 어느새인가 주도적인 흐름에서 밀려나고, 악명 높은 평론가 모프는 사람들의 배신에 급격하게 후퇴하며 계속되는 죽음을 파고드는데 이 역시도 날카롭지 못하다. 두 사람의 애정 문제가 어정쩡하게 끼어들면서 좀 더 신랄하게 나아가야 할 풍자의 힘이 틀어져 버린다.

 

연이은 죽음과 의심스러운 그림의 배경에도 작품을 놓지 않는 로도라의 집착은 유달리 불분명하다. 미술계의 최상위층에 있는 로도라가 다른 좋은 기회가 있을 텐데도 포기하지 않는 것에 별다른 의혹을 부여하지 않는다. [벨벳 버즈소]의 추진력이 아쉽게 느껴진다면,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인물을 모호하게 그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무명 화가만큼이나 어둡고 신비로운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인물이 높게 고정된 자리에 머물러버린 것 같다.

 

후반 들면서 기괴한 유작은 저주의 속도를 끌어올리지만, 우스꽝스러운 종이 인형극처럼 밋밋해져 버린다. 심심하게 끝날 뻔한 풍자극은 마지막에 들어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멀어지고 예술적인 영감마저 잃어버린 노쇠한 예술가 피어스(존 말코비치)가 언제라도 파도에 휩쓸려나갈 모래밭에서 주체할 수 없는 창의적인 영감을 쏟아내는 장면이다. 피어스의 예술적인 움직임은 무명 화가의 저주보다 더 의미심장하게 자본과 탐욕에 휘둘리는 예술계의 공허하고 씁쓸한 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잔혹한 핏빛 저주에 미술계 안팎의 흥미로운 인물을 보다 끄집어냈다면,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냉소적인 풍자에 날카로운 힘이 실리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