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굿 보장, 넷플릭스 홀리데이 로맨스 영화

로열 크리스마스: 세기의 결혼식 A Christmas Prince: The Royal Wedding

이미지: 넷플릭스

크리스마스 시즌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이 시기에 나오는 영화는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영화는 힘들고 절망적인 현실에서 아주 잠깐의 도피처를 제공한다. 모두가 연휴가 주는 기쁨에 들떠 있을 때 혼자 휴식을 취하고픈 자취생에겐 맥주 한 잔과 함께 밤을 보낼 즐거운 유흥거리다. 다른 날보다 특별한 이 밤도 ‘케빈’과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다. [나 홀로 집에]는 이때쯤 뭐가 날아오겠다 외울 만큼 너무 많이 봤어도 볼 때마다 재미있다. [나 홀로 집에]가 지겹다면 [러브 액츄얼리]나 [로맨틱 홀리데이] 같은 로맨틱 코미디도 있다. (둘 다 몇 년 동안 몇 번이나 봤다.) 곧 극장에서 개봉할 [그린치] 같은 애니메이션도 괜찮다. 홀리데이 감성은 21세기에도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 [크리스마스 연대기]는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모든 영화가 이만큼 퀄리티가 높지는 않다. 이맘때쯤 나오는 것들은 극장 상영용 A급 콘텐츠보다는 짧게 소비되고 잊힐 ‘양산형 크리스마스 TV 영화’가 더 많다.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인데 이미 정해진 캐릭터와 플롯을 아주 조금씩 바꾸고 배우와 배경만 달리해 찍어낸다. 너무나 예측 가능하지만 매번 먹혀드는 이야기는 이상하게 보기에 불편하지도 않고 매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모든 사람들의 기호에 들어맞게끔 만들어 솜사탕처럼 대책없이 달달한 ‘전체관람가’ 로맨스 영화, 그러다보니 문제도 당연히 속출한다. 일반 TV 드라마보다 못한 프로덕션 퀄리티와 ‘미국적 가치’를 강요하는 배경과 스토리, 백인 시스젠더 이성애자이기만 한 캐릭터는  ‘정치적 올바름’이란 어려운 단어 없이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이유로 홀리데이 로맨스 영화는 무시되기 쉽지만, 이를 조용히 즐기는 충성스러운 팬베이스 덕분에 은근히 큰 시장을 형성한다. 업계의 ‘개척자’라 할 만한 홀마크 채널과 라이프타임, 디즈니채널 등이 1년에 꽤 많은 영화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넷플릭스도 도전장을 던졌다. 이미 다수의 영화를 라이선스받았을 뿐 아니라 ‘오리지널’ 타이틀을 단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만들 수 있어!” 만들 수 있다. 게다가 홀마크보다 더 영화답게 재미있게 만든다.

 

홀리데이 로맨스 영화는 보기 전에 특별한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 다른 영화처럼 보면 이걸 절대 즐기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마인드가 필요하다. 첫째, 내용의 비현실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도 저렇게 빠르게 사랑에 빠지지 않아!”라는 현실적 접근은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된다. 둘째, 내용의 유치함을 평가하지 않는다. 홀리데이 로맨스 영화는 원래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게 매력이다. 셋째,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을 낮춘다. 넷플릭스는 그나마 캐릭터나 주연 배우의 인종, 민족적 재현을 신경 쓴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 아예 그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다른 곳과 비교해 노력을 한다는 것에 점수를 주도록 하자.

 

 

크리스마스 인 스노우 (The Christmas Inheritance)

크리스마스 인 스노우 The Christmas Inheritence

이미지: 넷플릭스

아버지의 장난감 회사를 이어받을 철없는 부잣집 아가씨 엘런은 자선 파티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아버지는 반성의 의미로 심부름을 보낸다. 장난감 회사가 시작된 마을, 스노우 폴스에 가서 아버지 친구 지크 아저씨에게 편지를 전하는 것. 1박 2일이면 끝날 심부름이라 생각하고 간 스노우 폴스에서 엘런은 마을에서 여는 자선 행사를 도우면서 착한 일을 한다는 것, 부지런한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해 배운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를 일깨워 준 마을의 여관 주인과 사랑에 빠진다.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데 가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라는 캐릭터 설명부터 말이 안 된다고 느낀다면 아직 항마력이 부족하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눈 위에서 슬랩스틱을 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 엘런은 마을 여관 주인 제이크와도 썸을 탄다. 하지만 엘런에겐 남자 친구도 있고 자신이 회사 상속자라는 비밀도 있다. 당연히 오해는 풀리고 엘런은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제이크와 맺어진다.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자선 행사의 마지막 장면까지 필굿의 극치를 달리는 영화는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래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남녀 주인공이 맺어지는 것보다는 엘런이 자선 행사를 위해 마을 사람들을 열심히 설득하고 행사를 준비하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깨닫는 과정이다. 미드 [원 헌드레드]에서 인류와 세계의 문명을 짊어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클락을 연기하던 엘리자 테일러가 착하고 발랄한 캐릭터에 도전했다.

 

 

크리스마스 스위치 (A Princess Switch)

크리스마스 스위치 A Princess Switch

이미지: 넷플릭스

시카고에 사는 제빵사 스테이시는 크리스마스 제빵 콘테스트가 열리는 유럽의 작은 나라 벨그라비아로 향한다. 그곳에서 왕자의 약혼녀인 여공작 마가렛과 마주치는데, 두 사람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모습이 똑같았다. 애정 없는 결혼 대신 자유롭고 평범한 삶을 꿈꾸는 마가렛은 스테이시를 설득해 콘테스트 전까지만 서로의 자리를 바꾼다. 어쩌다 귀족 행세를 하게 된 스테이시는 당초 계획과 달리 약혼자인 벨그라비아 왕자 에드워드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며칠간 스테이시가 된 마가렛은 스테이시의 동료인 싱글대디 케빈에게 빠져든다.

 

가상의 유럽 국가를 통치할 왕자와의 사랑 이야기와 바네사 허진스가 1인 2역을 연기한다는 것에 혹한다면,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마음을 조금 단단히 먹는 게 좋겠다.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제노비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속 소코비아 등등 그동안 에디터가 영화 속에서 봤던 가상 국가 중 가장 “그럴듯함”이 없는 나라였다. 평소 두문불출하는 여공작이 결혼을 앞두고서야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그것보다 더 심한 건 오랫동안 결혼을 약속한 사람을 딱 두 번, 그것도 겨우 얼굴만 봤다는 것이다. 순간 영화 배경이 21세기인지 19세기인지 헷갈린다면 본인만 그런 게 아니니 안심하자. 마가렛 여공작 스토리가 엉망이다 보니, 제빵 솜씨를 인정받아 유명 콘테스트에 출전한 스테이시의 스토리는 아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오픈 마인드를 가장 요구하는 건 총체적으로 암울한 프로덕션 퀄리티다. 돈을 안 쓴 티가 너무 나는 미술과 의상을 보고 있으면 바네사 허진스의 나름대로 정교한 1인 2역과 최선을 다한 영국 억양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매직 캘린더: 크리스마스를 부탁해 (The Holiday Calendar)

매직 캘린더: 크리스마스를 부탁해 A Holiday Calendar

이미지: 넷플릭스

사진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동네 사진관 직원인 애비는 할아버지에게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인 골동품 캘린더를 받는다. 평범해 보이는 캘린더는 12월 첫 날부터 장난감을 하나씩 선사하는데, 모두 그날 애비에게 일어날 일을 암시한다. 애비의 지루한 일상은 미래를 보여주는 캘린더와 함께 특별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소꿉친구 남사친과 매력적인 의사 사이에서 설레는 로맨스도 경험한다.

 

[매직 캘린더]는 크리스마스에 걸맞은 소박하고 예쁜 영화다. 특별한 마법 캘린더와 함께 삶에서 자신감을 찾아가고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은은한 감동을 준다. 애비가 자신의 앞에 놓은 기회를 처음엔 알지 못하고 지나치고, 먼 곳에서 사랑과 일을 찾으려다 실패한다. 캘린더가 주는 장난감 힌트를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애비가 삶의 고난을 홀로 힘들어하기보단 가족과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하고,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을 돌아보며 진정한 인연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연휴의 정신과 새로운 기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홀리데이 영화다운 분위기에 약간의 판타지 요소까지 얹어 가볍고 유치함이 가득해 보이지만, 캣 그레엄의 연기와 매력이 많이 커버해 준다. [크리스마스 연대기] 외에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크리스마스 영화를 찾는다면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로열 크리스마스  (A Christmas Prince)
로열 크리스마스: 세기의 결혼식 (A Christmas Prince: The Royal Wedding)

로열 크리스마스 A Christmas Prince

이미지: 넷플릭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 크게 히트해 속편까지 만들어진 [로열 크리스마스]는 미국인 기자와 유럽 왕국 왕자의 러브스토리다. 잡지 기자를 꿈꾸는 앰버는 크리스마스에 유럽의 소국 알도비아에서 새 왕 즉위식을 취재할 기회를 잡는다. 에밀리 공주의 개인교사로 위장해 왕궁에 잠입한 그녀는 리처드 왕자가 망나니에 난봉꾼이라는 소문과 달리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임을 알고 사랑에 빠진다. 왕위 계승 라이벌인 사촌 사이먼과 왕비를 꿈꾸는 리처드의 전 여자 친구 소피아는 리처드가 왕과 왕비의 입양아라 정당한 후계자가 아니라 폭로한다. 앰버는 서거한 선왕의 유언을 찾아 리처드가 왕위 계승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고, 잡지에서 싣기를 거절한 기사를 블로그에 올린다. 리처드는 앰버를 찾아와 청혼하고, 앰버는 승낙한다.

 

뉴욕과 알도비아를 오가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지 1년 후, 크리스마스에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앰버는 온다. 하지만 뉴요커로 자유롭게 살아왔던 그녀는 자신의 뜻이 완전히 배제된 채 준비되는 결혼식과 나랏일로 너무 바쁜 리처드 때문에 풀이 죽는다. 경제 개혁을 진행하는 알도비아에 막상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앰버는 추적에 나서고, 뉴욕에서 온 친구들, 에밀리 공주와 사이먼의 도움을 받아 국가 재산을 빼돌린 범인을 찾아낸다. 리처드는 앰버가 자신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함을 깨닫고 앰버에게 두 사람의 뜻에 따라 결혼식을 준비한다.

 

1편은 낯선 나라에서 왕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환상의 극치를 보여주며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를 수십 번이나 돌려본 사람이 전 세계에서 수십 명 이상이라고 넷플릭스가 직접 밝히기도 했다.) 너무 뻔하고 예측 가능하지만 그래서 심신 안정 수준의 편안함이 있고, 호감 가는 캐릭터도 많다. 앰버가 미스터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개연성은 널뛰지만 그 맛으로 지켜볼 만하고, 해피엔딩은 이걸 다 봤다는 뿌듯함마저 느끼게 한다.

 

2편은 결혼을 앞두고 앰버가 일과 사랑, 새로운 의무 사이에서 겪는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분명히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앰버가 왕비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더 많기 때문에, 1편만큼 대책 없는 달콤함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내용도 마찬가지다. 알도비아의 경제 상황 미스터리는 굉장히 말이 안 될 만큼 쉽게 해결되고, 서로 대화가 없어지는 왕과 왕비는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신뢰를 회복한다. 내용은 거창하고 갈등은 1편보다 좀더 복잡하지만, “저게 말이 돼?” 싶은 유치 찬란한 장면들로 ‘아, 내가 홀리데이 로맨스를 보고 있구나’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되니 안심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