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성인에 의한, 성인을 위한 달콤씁쓸함 ‘보잭 홀스맨’

날짜: 12월 16, 2018 에디터: 띵양

이미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전유물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디즈니 [미녀와 야수]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나고 심심할 때마다 [공각 기동대]를 꺼내보는 에디터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많은 애니메이션이 귀여운 그림체와 동화적인 교훈으로 동심을 사로잡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인을 위한 수준 높은 작품들이 예부터 지금까지 수두룩하다. 지금 소개할 애니메이션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라 평가받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잭 홀스맨]을 소개한다.

 

[보잭 홀스맨]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Horsin’ Around(말장난)’이라는 TV 쇼로 잘 나갔던 보잭 홀스맨이 한물간 스타가 된 이후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블랙 코미디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톤은 ‘딥 다크’ 그 자체다. [보잭 홀스맨]이 묘사한 ‘과장되었지만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이 나오게 하는 동시에 기분을 우울하고 씁쓸하게 만든다. [심슨 가족]나 [사우스 파크] 등의 코미디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보잭 홀스맨]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에피소드는 미국, 특히 할리우드의 어두운 면모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작중 세계관이 ‘의인화된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묘사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등장인물들이 서로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니 넘어가자. 특유의 우울한 정서에 더불어 작품이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라 보기도 전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꾹 참고 시즌 1까지만 봐”라 이야기하고 싶다. 다소 괴이한 그림체 때문에 이 작품을 모른 체하기에는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보잭 홀스맨]의 등장인물들은 전부 나사 하나가 빠진 것처럼 행동한다. 철이 들 법도 한 나이임에도 이들은 몸만 컸을 뿐 정신 상태는 아이나 다름없는 ‘애어른’에 가까우며, 과거 혹은 현재 사회적으로 성공했음에도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거나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작품 속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현실도 마찬가지지만, 작중 인물들은 서로에게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본인도 상처를 받는다. 이러한 인물들의 불완전함이 [보잭 홀스맨]의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다섯 명이 그렇다. 옛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막장 인생을 살아가는 보잭, 그의 집에서 백수처럼 지내는 토드(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보잭의 前 여자친구이자 現 에이전트 프린세스 캐롤린, 에너지 넘치는 슈퍼스타 미스터 피넛버터, 그리고 보잭과 많은 부분에서 닮았지만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다이앤까지 전부 자신의 흠 때문에 시리즈 내내 갖은 역경과 부딪힌다. 각자의 사정이 무엇인지 일일이 설명하기엔 양이 방대하고, 또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쯤 해두겠다. 아 참, 동물을 의인화한 캐릭터들이 자신의 동물적 특징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또한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미지: 넷플릭스

 

앞서 언급한 날카로운 풍자를 빼놓고 [보잭 홀스맨]을 논하기는 힘들다. 이 작품은 특히 가짜 뉴스나 자극적인 소재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아님 말고’ 식의 태도를 보이는 언론이나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은 문드러진 할리우드의 추악한 면모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처음에는 과장되어 보이는 작중 현실에 헛웃음을 짓다가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보잭 홀스맨]이 우리네 현실과 소름 돋을 정도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굉장한 허무함과 씁쓸함이 몰려온다. 이 부분이 기타 블랙 코미디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많은 블랙 코미디 시리즈들이 현실을 풍자하면서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겉으로 보긴 괜찮을지 몰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추하고 더럽다”라며 소리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앞뒤만 바꿨을 뿐인데 그 느낌은 전혀 다르고 아프게 다가온다.

 

[보잭 홀스맨]이 선뜻 다가가기 힘든 작품임은 분명하다. 이 작품이 그리는 암울하고 씁쓸한 현실이나 괴이해 보이는 그림체, 막장 스토리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적게는 세 개 에피소드, 혹은 한 시즌만 견딘다면 어느새 달콥씁쓸함을 즐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또 여태껏 가졌던 성인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뒤바꿀 작품이라 자신한다. [보잭 홀스맨]의 이야기는 비단 멀리 미국이나 할리우드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