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 리뷰: ‘독전’ 다시 또 보고 싶은 매력적인 캐릭터 영화

 

by. Jacinta

 

 

때때로 어떤 영화는 보고 난 후에도 쉽게 잔상이 가시지 않는다.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던 인물들이 만들어낸 여러 장면이 머리 속에서 쉼 없이 재생되며 계속해서 곱씹게 된다. [독전]은 모처럼 그런 경험을 안긴 영화다. 최근 몇 편의 한국영화를 보는 동안 쌓인 실망과 피로도를 단숨에 날려버리며, 이미 한번 봤음에도 재차 관람하고 싶은 의지를 불태운다. 이는 어쩌면 범죄 누아르 장르를 애정하는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탓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선호도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미지: (주)NEW

 

[독전]은 마약 조직 검거에 매달려온 형사 ‘원호(조진웅)’가 마약 조직원 ‘락(류준열)’의 도움을 받아 실체 없는 거물 ‘이선생’을 뒤쫓는 이야기다. 범죄 조직과 마약이라는 여러 영화에서 반복해온 익숙한 설정은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이 영화를 인상 깊게 하는 지점은 태생부터 상투적인 틀에 갇힌 캐릭터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범죄 영화 속 인물의 전형성을 완전히 걷어내지는 않지만, 각각의 인물이 갖는 양면성을 보여주고자 하며, 한국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사족을 남발하지 않는다. 오직 그 상황에 처한 인물이 느끼는 감정과 행동에 집중하며 서사를 끌고 간다.

 

이 부분은 영화를 흥미롭게 한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불필요한 서사가 배제되어 과잉으로 흐를 수 있는 영화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잡아준다. 여러 인물이 각축을 벌이는 영화에서 어떤 특정 캐릭터가 아닌 등장인물 고루 기억에 남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영화는 분명 ‘원호’와 ‘락’ 두 사람이 중심이 되어 흘러가지만, 그들이 부딪히는 적들도 분량과 상관없이 쿨하고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예를 들면, 형사 ‘원호’는 지금껏 보아온 형사와 다른 태도를 취한다. 특정 사건에 매달리는 형사일수록 캐릭터를 쉽게 드러내고자 과장된 이미지로 처리하는데 반해, ‘원호’는 모호한 구석이 있다. 그는 필요한 순간에만 폭발하며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범죄 조직 검거에 집착하는 인물이면서도 과욕만 앞세우지 않는 침착한 면을 갖고 있다. 그런 상반된 성향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까닭은 수사에 매달리는 이유를 구구절절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상황에 던져 놓고 그가 가진 양면성을 끌어낸다. 이는 ‘원호’를 돕는 ‘락’도 마찬가지다. 그는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관하면서도 느닷없이 ‘원호’를 흔들리게 하는 말을 던지며 미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한 ‘원호’만큼이나 사족을 가질 수 있는 배경이 있음에도 압축해서 처리하며 캐릭터가 갖는 모호함을 공고히 한다. [독전]은 극의 중심축이 되는 두 사람뿐 아니라 각 등장인물이 갖는 다층적인 모습을 드러내어 캐릭터의 흡입력을 높인다.

 

 

이미지: (주)NEW

 

인물의 매력을 완성하는 것은 역시 배우들의 열연이다. 각 배우들의 노련한 완급 조절로 탄생한 캐릭터들은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김성령이 짧지만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것을 시작으로 적과의 동침을 택한 조진웅과 류준열부터 농아 남매를 연기한 김동영과 이주영까지 너 나 할 거 없이 자신만의 족적을 뚜렷하게 남긴다. 그중 단연 빛나는 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故김주혁이다. 그가 연기한 ‘진하림’은 광란의 카리스마로 압도하는, 악인보다 광인에 가까운 인물로 주어진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김주혁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캐릭터에 생생한 입체감을 부여하는 절정의 연기를 보여주며 인생 악역을 완성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게 아쉽기만 하다.

 

 

이미지: (주)NEW

 

사실 [독전]은 100% 만족하는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영화의 노림수는 뻔하고, 소재도 식상하다. 차가운 톤의 스타일리시한 미장센과 공들인 티가 분명한 촬영과 편집이 시선을 붙들어도(‘섹시하다’는 표현을 선호하지 않지만, 섹시하며 매력적이다) 여러 인물을 투입하느라 다소 산만해진 서사는 집중력을 흩뜨릴 때도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계속해서 떠오르고, 각각의 캐릭터에 더 빠져들고 싶다. 형사와 범죄자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인물이 차례로 공동의 적을 대면하며 독특한 관계성을 쌓아가는 중심 이야기와 더불어 범죄영화의 장르적 묘미를 유지하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차 없이 활용하는 방식과 열린 결말이 나를 사로잡은 모양이다. 22일 개봉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