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뷰 |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극장 개봉작 및 스트리밍 신작 후기

어디갔어 버나뎃(Where’d You Go, Bernadette) – 밋밋한 이야기를 살리는 케이트 블란쳇의 힘
이미지: (주)엔케이컨텐츠, (주)디스테이션

에디터 홍선: ★★☆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선사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연대기. 이번엔 엄마가 주인공이다. [어디갔어, 버나뎃]은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과거엔 건축계 아이콘이었지만 지금은 문제적 이웃이 된 버나뎃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버나뎃 역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존재감이다. 캐릭터의 엉뚱하고 괴팍한 성격을 안정된 연기로 녹아내며 웃음과 함께 관객과 인물 사이의 거리를 좁혀간다. 이 같은 노력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하면서 버나뎃을 단순한 괴짜로 그리지 않고, 나름의 아픔과 고민을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로 완성한다. 엠마 넬슨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진한 사랑이 엿보이는 모녀 케미를 선사하며 작품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다만 배우들의 활약에 비해 이야기의 전개는 느리고 밋밋하다. 특히 버나뎃이 가진 고민을 밀도 있게 풀어내는 전반부에 비해 가족애로 두리뭉실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후반부는 이야기의 구성을 헐겁게 한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치명적인 결함은 없어 보이지만, [보이후드]와 [비포] 시리즈를 연출했던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이름값에 비하면 여러모로 평범한 작품에 그쳐 아쉽다.

애프터: 그 후(After We Collided) – 헤어지지 못하는 남자, 떠나가지 못하는 여자
이미지: 판씨네마㈜

에디터 원희: ★★ 북미 10대 팬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애프터]가 속편으로 찾아왔다. [애프터: 그 후]는 자신과의 연애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테사가 하딘과 헤어진 이후 인턴으로 일하는 출판사에서 트레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테사와 하딘의 베드신이 중심이 되어 서사가 진행된다. [애프터]가 캐서린 랭포드와 히어로 파인즈 티핀의 영상 화보였다면, [애프터: 그 후]는 두 사람의 아기자기하고 풋풋한 느낌 대신 만나고, 싸우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오랜 연인 같은 인상을 준다. 속편에서는 원작가가 각본을 맡은 덕에 전편보다 이음새가 매끄럽게 흘러가는 점이 눈에 띄지만, 여전히 개연성은 빈약하다. 딜런 스프로즈가 새롭게 등장해 삼각 구도의 흥미진진함을 기대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는 한참 모자란 채로 마지막까지 가볍게 소모된다.

보이즈 인 더 밴드(The Boys in the Band) – 달콤 쌉싸름한 생일 파티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현정: ★★★ 마트 크롤리가 1968년에 쓴 동명 연극이 뮤지컬에 이어 영화로 재탄생했다. 탄생 50주년을 맞아 라이언 머피가 리바이벌했던 뮤지컬에 출연한 배우들이 그대로 등장해 생일 파티를 위해 모인 동성애자들이 뜻밖의 손님을 맞이하고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이야기를 그린다. 원작이 토니상을 받은 작품인 만큼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빈틈없이 전개하는 탄탄한 각본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생일 파티가 진행되는 집안에서 진행되지만, 동성애를 혐오하고 터부시 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서사를 풍부하게 이끌어간다.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자기 연민과 혐오에 빠진 인물들의 불안과 아픔을 신랄하게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세심하게 그려내면서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인종에 따른 차별을 포착한다. 대사는 위트 있고, 실제 커밍아웃한 배우들이 연기한 캐릭터는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며, 세련된 분위기는 멋스럽다. 후반부에 감정적인 긴장감이 고조되고 폭발한 후에는 흥겹고 떠들썩한 파티가 끝나고 찾아오는 쓸쓸함으로 이어져 묘한 여운을 남긴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Dick Johnson Is Dead) –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혜란: ★★★☆ 다큐멘터리 감독 커스틴 존슨이 치매 판정을 받은 노년의 아버지와 함께 만든 죽음에 관한 반짝반짝한 이야기.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장성한 딸과 아버지가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다양한 ‘죽음의 상황’을 실행하며 아버지의 죽음, 나아가 ‘죽음’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을 담았다. 현실과 가상의 상황이 교차하는 실험적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죽을까’ 상상한 것들을 특수효과 장치와 스턴트 배우, 지인들까지 동원해 만드는 과정은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천국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감독의 어머니)을 만나 즐겁게 춤추는 장면은 분명히 즐거운데 코끝은 찡하다. 현실은 더 차분하고 슬프다.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아버지는 평생 살던 집을 정리하고 딸과 뉴욕으로 이주하고, 치매가 진행되면서 온전한 정신을 점점 잃어간다. 아버지의 삶의 불꽃이 천천히 꺼지는 걸 지켜보며, 감독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극복하기 힘든 이별과 상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그게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 – 눈은 즐거운데 마음은 찜찜하네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영준: ★★☆ 비주얼만 남았다. [섹스 앤 더 시티] 제작자 대런 스타의 신작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시카고의 광고 회사에 다니던 에밀리가 프랑스 파리에서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드라마의 ‘때깔’은 정말이지 끝내준다. 황홀한 파리의 모습과 통통 튀는 릴리 콜린스의 패션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반면 스토리나 캐릭터 등의 요소들은 전형적이고 유치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제나 긍정적인 미국인 주인공과 타국 문화를 무시하는 프랑스인의 이미지는 물론, 작품이 다루는 성장 서사는 모두 익히 봐온 것들이다. [섹스 앤 더 시티]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SNS라는 신문물(?)을 더했을 뿐 스토리는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아니 뒤처진 기분이다. 릴리 콜린스와 파리의 풍경 덕에 끝까지 즐겁게 보긴 했지만, 뒷맛은 썩 개운하지 못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