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라이더, 한순간에 사라진 무언의 믿음

날짜: 2월 22, 2017 에디터: 현정

 

싱글라이더

한순간에 사라진 무언의 믿음

 

<싱글라이더> 주인공 강재훈 심리에 대한 내용 스포 없는 감상에 가까운 글 by. Jacinta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살아간다는 것은 불확실한 믿음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없어 보이는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는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인생을 가졌다. 젊은 나이에 증권회사 지점장을 맡고 아내와 아들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호주로 유학을 보냈다. 변함없이 돌아오는 매일매일을 보내던 남자는 어느 날 충격적인 광경을 맞이하고 그제야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하루가 얼마나 부질없던 것인지 깨닫는다. 어떤 행동도 어떤 말도 해야 할지 모른 채 주춤하는 남자에게 그의 상관은 이미 짐작했던 일이 아니었냐는 식으로 오히려 그를 나무란다. 비로소 마주하는 비극 앞에서야 설마설마하면서도 애써 모른척했던 사실을 깨달은 남자. 내일을 지탱하던 무언의 믿음은 속절 없이 무너지고 깊은 공허함과 상실감이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한다.
이주영 감독의 <싱글라이더>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을 지속시켰던 믿음이 단지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혹은 막연한 믿음 뒤에 숨어 있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런 순간들이 있다. 무언가 끊임없이 불편하고 신경 쓰이면서도 막상 그 실체에 다가서는 것은 직접 마주했을 때보다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남자는 처방약에 의지하며 하루를 견딘다. 휴지조각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고객에게 안정과 믿음을 약속하고, 시차는 1시간에 불과하지만 10시간에 가까운 비행을 해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곳에 있는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여긴다. 고객에게 상품의 불완전성을 말하고자 하면 말할 수 있음에도, 2년이나 떨어진 가족에게 먼저 안부를 전하며 다가설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다. 지금 당장 그를 괴롭히는 것들을 어떻게든 잠재우면 그가 느끼는 불안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미 불완전한 그의 믿음은 미묘한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번 터지면 되돌리기 힘든 파열음을 빚어내고 있지만 막연함 뒤에 숨어버린 남자는 깨닫지 못한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닥치고 껍데기에 불과했던 현실의 민낯이 드러나자 그 자신이 얼마나 멀리 돌아왔는지 깨닫는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는 왜 그토록 자신의 삶에서 자신을 밀쳐냈을까. 그는 분노한 고객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며 미안함에 제대로 말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하지만, 한편으로는 기계적인 업무에 업무에 능숙한 사람이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성공과 가족의 안위가 전부였다. 그가 미래를 위해 직접 내린 결정만 아니었어도 지금처럼 절망에 가까운 좌절감은 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은연중에 어떤 방식의 삶이 낫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빈틈 없이 조이고 한발 먼저 나서야 뒤처지지 않는 인생. 비록 고독하더라고 그렇게 택한 인생이 잘 흘러가길 바랐지만 오히려 그를 단절시키는 구실이 됐다. 자신이 주도했던 관계는 덩그러니 그 자신만 남겨놓은 채 자취를 감추고, 매일 찾아오는 외로움은 현실 감각을 무디게 한다. 그는 철저히 혼자가 되고 불안이 꽃 피기 시작하지만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고 계속해서 동떨어지게 만든다. 그가 만든 거리감은 막연한 믿음으로 대체되고 결국 터질 일만 남았다.
결국 그가 이루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진실에 부딪히기로 선택하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