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범에 매료된 데이빗 핀처의 영화 제작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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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범에 매료된 데이빗 핀처의 영화 제작에 관하여

 

Written by. 케빈 링컨
Translated by. 겨울달

 

연쇄 살인범에 관한 영화는 많지만, 데이빗 핀처처럼 일관된 관심을 보이는 제작자는 드물다. 그를 할리우드 주류 감독이 되게 한 두 번째 장편 영화 <세븐(1995)>은 지금까지도 가장 충격적인 연쇄 살인범의 모습을 그렸다. 이후에도 핀처는 <조디악(2007)>, <밀레니엄: 남자를 증오한 여자들(2011)>를 통해 두 번이나 더 같은 주제를 다뤘다. 이제, 넷플릭스 시리즈 <마인드헌터>의 총괄 제작자 겸 4편의 연출을 맡은 그는 단순히 잘 하는 걸 또 하는 걸로 끝내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깊게 뛰어들었다.

 

존 E. 더글라스와 마크 올셰이커의 책을 바탕으로 존 펜헬이 집필한 <마인드헌터>는 FBI 요원 홀든 포드(조나단 그로프)와 빌 텐치(홀트 맥컬리니) 두 사람을 따라간다. 이들은 1970년대 초반 새롭게 등장한 범죄 유형, 일반적인 살해 동기나 심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낯선 이들을 살해하는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 포드와 텐치는 전국을 다니며 “연속 살인범(sequence killer)”들을 면담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묘사하고 설명한 것을 토대로 범죄 프로파일링을 구축한다. 당연히 그런 악행에 노출된 적 없는 그들과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마인드헌터>는 연쇄 살인범이라는 개념을 마치 포드와 텐치의 첫 인터뷰 대상인 에드먼드 캠퍼가 말한 ‘소명’처럼 다루고 있다.

 

설사 핀처가 이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해도, 연쇄 살인범의 삶을 천직이라 표현하는 개념 자체는 그가 연출자로 가장 적격임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현대 영화감독 중 데이빗 핀처만큼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성실하며, 연출을 소명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디테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모든 장면을 수십 번 찍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게 밖에서나 때로는 안에서 보기에 가학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다 이유가 있다. 핀처 작업 방식의 깊이는 그의 카메라워크, 블로킹, 미장센 등을 항목화하고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위 ‘핀처학’까지 만들어냈다. 핀처 영화에서 이러한 것들은 종종 놀랄 만큼 높은 수준에서 맞춰지는데, 그 정도로 정밀하게 하려면 제대로 해낼 때까지 계속 반복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또한 일부 소수의 감독만이 지닌, 특별한 감각으로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기술을 요구한다. 핀처 영화에서 이러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그가 하려는 이야기에서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건 어찌 보면 놀랍지도 않다. <나를 찾아줘>는 가장 좋은 예다. 시나리오를 구축하고 이를 눈 앞에서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이 어떻게 단계별로 세상을 속이는지 보여준다. 그의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다. <세븐>에서 살인의 바로크적 본성을 보여주는 장면, <파이트 클럽>에서 비누 제작의 반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조디악>에서 응답과 회신을 반복하는 추적, <하우스 오브 카드>의 뒷방에서 벌어지는 권력 중개, 그리고 무엇보다도 데이빗 핀처처럼 과정에 집착하는 감독이 아니었다면 영화로 옮기기도 참 어려웠을 <소셜 네트워크> 속 페이스북의 탄생이 있다. 핀처가 주제에 관심을 보이면, 그만큼 과정에도 관심을 보인다. 그에게 둘은 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마인드헌터’ <이미지: Netflix>

다시 연쇄 살인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세븐>은 훌륭한 퀄리티에도 살인자의 대담함이나 그러한 것을 상징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가장 큰 성과는 모든 것들이 일관성 있게 모이는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일 것이다. 킬러 존 도(무명씨)는 그 자신과 형사들을 그의 플롯 안 플롯에 집어넣었다. 존 도는 성경 속 7개의 원죄를 재현하는데 이들을 포함시켜, 경찰이 주위에 없었다면, 보호가 필요한 중산층 공동체가 없었다면,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암시한다. 그러한 반전을 보여주기 위해 핀처는 관객들을 영화 속 상황에 끌어들인다. <퍼니 게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깝다. 경찰은 관객의 아바타이며, 그들처럼 우리 또한 영화의 창작 과정에 필요한 존재다.  ‘악명 높은 박스’는 관객들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려 하지 않았다면 그곳에 없었을 것이다.

 

핀처는 연쇄 살인범이 아닌 다른 주제로 이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가능할 수도 있다. <세븐>의 폭력 묘사가 독특했던 것은 우리가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을 단절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끔찍한 것을 보면서도 그에 대한 흥미를 느낀다. 비판적 사고 분야에서 꽤 많이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다. 토마스 드 퀸시의 1827년 에세이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부터 최근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한 분석까지 다양하다. 연쇄 살인범을 다루는 핀처의 관심은 윤리적인 중요성에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 대부분이 억누르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심리학에 초점을 맞춰 거울을 숨긴 채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여준다. 연쇄 살인범에 순수하게 반응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집착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핀처는 우리를 더 가까이 끌어들여 마침내 그들과 구분되는 차이가 거의 없음을 보여준다.

 

<조디악>이 일종의 중간 지대로서 살인범의 실제 사건에 덜 집중하며 우리 문화에 미친 거대한 파급 효과를 다뤘다면, <마인드헌터>는 그 효과에 온전히 집중한다. FBI 포드와 텐치 요원이 지역 경찰이 가득한 방에 들어서면, 포드는 찰스 맨슨 같은 자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주장한다. 경찰들은 그들만의 기괴한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어떤 인간이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섬뜩한 사건에 질려 있다. 그들은 찰스 맨슨의 이름을 들으면 야유하고 거부한다. “나쁜 놈이에요.”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곧이어 포드가 악마의 현신이라 할 만한 에드 켐퍼와 대화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순간 포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대는 산산조각 난다. 우리는 더 이상 연쇄 살인범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이 핀처가 가장 잘 하는 것이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마인드헌터>는 단지 살인범의 심리를 다루지 않는다. 지켜보는 자로서 관객의 심리와 정상을 벗어난 것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끌리는 방식을 다룬다. 동시에 <마인드헌터>는 연쇄 살인범을 다루는 영화감독으로서 자의식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다. 특히 살인처럼 무언의 두려운 것에 적용되는 수사 과정과 방식은 괴이한 본성에 관한 코멘터리와 같다. 핀처의 살인자들은 예전 경찰이 수사해 왔던 감정에 휩쓸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상황을 주도하며, 이를 저지하려는 자들과 게임을 벌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핀처는 우리가 보는 것의 힘은 단순히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왜’를 알고 싶어 하는 음탕한 호기심이 끌어내는 우리의 관심과 호기심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마인드헌터>는 감독이 말했던 “나는 사람들이 변태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의 가장 예술적인 증명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자신의 영화를 제대로 통제하는 감독이 거의 없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What David Fincher’s Fascination With Serial Killers Tells Us About His Filmm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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